
(도비라) 오세연 감독의 ‘어느 날, 영화가 죽었습니다’의 마지막 장면. 관 속에 들어 있는 영화가 ‘영화+관’을 표현한다. CJ ENM 제공
평론 활동을 하며 들었던 매우 놀라운 질문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하면 영화를 많이 볼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신선하기도 충격적이기도 한 질문이었는데, 10여 년 전만 해도 영화는 여전히 ‘오락인가? 예술인가?’라는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영화라면,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그 언어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듯 ‘어떻게 하면 예술영화를 많이 볼 수 있는가?’ 또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가?’ 또는 ‘좋아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덧 영화가 ‘많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은, 한때는 영화가 지금의 쇼츠 콘텐츠처럼 턱을 길게 늘어뜨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충격적인 관점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점점 더 쇼츠에 익숙해지고, 영화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런 점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3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2026, 이하 ‘30가지 이유’)에는 기이한 점이 많다. 영화관으로 최대한 많은 관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숙명을 등에 진 감독들이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영화에 관한 생각·애정·고백·애증·회고 등을 풀어냈다는 점에서도, 그런 그들이 유튜브 쇼츠처럼 3분 동안 그 모든 것을 쏟아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30명의 감독이 만들어낸 30편의 영화로 이루어진 ‘30가지 이유’ 전반에 영화의 죽음을 자신들의 죽음처럼 받아들이는 슬픈 정서가 흐르면서도, 흥미롭고 재치 있게 영화의 죽음을 보여주려는 흥분이 공존한다. 마치 아무도 울지 못하게 하려고 자신의 장례식에 신나는 비트의 음악을 틀 준비를 하는 사람들처럼.
‘30가지 이유’에서는 여러 감독이 영화의 죽음이라는 주제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오세연 감독의 ‘어느 날, 영화가 죽었습니다’에서는 ‘오영화’라는 인물의 장례식이 펼쳐지고, 이내 관 속에서 영화가 등장해 ‘영화+관’을 표현한다. 남궁선 감독은 ‘우리가 죽기 전에’에서 ‘좋은 영화’가 사라진 시대라며 영화 ‘실종신고’를 하고 마지막에는 급기야 ‘혹시 사망신고를 하시겠어요?’라고 묻는다. 강다연 감독의 ‘30번째 관객’은 ‘영화가 죽어버린 세계’에서 30번째 관객이 오는 날 영화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고 평생을 기도하다 백골이 되어버린 여성을 그린다.
영화가 죽어가는 이유에 대한 여러 분석을 바라보는 감독들의 생각도 드러난다. 전현지 감독의 ‘30초만 돌려봐’는 영화관을 벗어난 영화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배급될 때 일상의 시간과 섞여 계속해서 리와인드를 겪는 상황을 보여주고, 이요섭 감독의 ‘미래영화’는 챗지피티(ChatGPT)가 만들어주는 영상으로 영화가 대체돼갈 상황을 그린다. 영화가 ‘관’을 잃어버리고, 그 물질성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이미 닥친 미래를 최전선에서 경험하고 있는 감독들이 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드러난 것이다. 물론 이들은 모두 완전히 낙관하거나 비관하지는 않는다. 그저 계속해서 나름의 방식으로 소생술을 해나갈 뿐이다. 이 각각의 단편 역시 소생술의 일환이다.

전현지 감독의 ‘30초만 돌려봐’는 계속되는 리와인드로 시간의 왜곡을 겪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닿지 못하는 과정을 그렸다. CJ ENM 제공

남궁선 감독은 ‘우리가 죽기 전에’에서 ‘좋은 영화’가 사라진 시대라며 영화 ‘실종신고’를 하고, 마지막에는 급기야 ‘혹시 사망신고를 하시겠어요?’라고 묻는다. CJ ENM 제공

이요섭 감독의 ‘미래영화’는 챗지피티가 만들어주는 영상으로 영화가 대체되어갈 상황을 그린다. CJ ENM 제공
몇 년 전 마틴 스코세이지는 ‘펠리니와 함께 시네마의 마법이 사라지다’라는 글에서 이제 영화는 콘텐츠에 밀려나게 됐다고 썼다. 과거에는 ‘콘텐츠’라는 말에 내용과 형식 두 항만 있었다.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면서 영화를 분석할 때나 사용하던 콘텐츠라는 말이 이제는 저 홀로 살아남게 됐다. 스코세이지는 이러한 현상이 ‘예술 형식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심지어 알려고 하지도 않는 이들이 미디어 회사를 인수하면서’ 생겨난 변화라고 말한다. 이제 모든 것은 콘텐츠이고, 형식적 새로움이 시도되거나 이야기되는 일은 드물다. 나아가 모든 것이 콘텐츠라는 얘기는 그것이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쇼츠인지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을 뜻한다. 스코세이지의 표현에 따르면 콘텐츠는 이제 ‘모든 영상 매체에 적용되는 비즈니스 용어’다.
스코세이지는 영화가 ‘시네마’이자 마법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것이 길거리를 헤매며 낯선 인간들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존 카사베츠의 ‘그림자들’(1959), 클로드 샤브롤의 ‘사촌들’(1959),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1960), 잉마르 베리만의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1961), 프랑수아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와 같은 낯선 영화들을 마주하는 것이 진정한 영화의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화는 언제나 콘텐츠 이상이었다’고 말한다. 낯섦과 새로움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와 장면을 되풀이할 때는 결코 찾아올 수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정말로 새로운 ‘내용’이라는 것이 있을까? 다시 이항적인 구분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낯섦과 새로움은 형식에서 오는 것이다. ‘혁신은 내용보다 형식으로부터 온다’고 파올로 소렌티노가 말했던 것처럼.
이제 문제는 단지 영화라는 매체가 죽었는가, 죽지 않았는가, 또는 아직 살릴 수 있는가, 다시 살릴 수 있는가에 관한 점이 아니다. ‘어떤’ 영화가 진정으로 영화를 구원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아이리시맨’(2019)을 만들며 스코세이지가 마블 영화를 비판했을 때, 사람들은 스코세이지가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스코세이지가 염려하던 것은 새로움을 잃어버린 채 끝도 없이 다양화돼가는 콘텐츠의 범람이었다. 끝없는 다양화는 인간보다 챗지피티가 더 잘할 것 아닌가? 피로를 모를 테니 말이다.

(도비라) 김도영 감독의 ‘엎어질 조짐’ 스틸. CJ ENM 제공
‘30가지 이유’에는 피로를 너무 잘 아는 인간들의 고민이 있다. 김도영 감독의 ‘엎어질 조짐’, 정가영 감독의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임선애 감독의 ‘껌이지’에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고, 이종필 감독의 ‘꿩’, 이가희 감독의 ‘볼일이 있어’, 이경미 감독의 ‘바세린’에는 꽉 막혀 괴로운 변비나 터져나올 듯 고통스러운 설사처럼 영화를 한다는 것의 어려움이 묘사된다. 윤가은 감독의 ‘만감이 교차한다’에는 도망치고 싶은 배우의 마음을 통해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행위의 어려움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경미 감독의 ‘바세린’에는 꽉 막혀 괴로운 변비거나 터져 나올 듯 고통스러운 설사처럼 영화를 한다는 것의 어려움이 묘사된다. CJ ENM 제공

(도비라) 윤가은 감독의 ‘만감이 교차한다’에 드러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영화 만드는 일의 어려움. CJ ENM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사랑은 멈출 수가 없는데, 정가영 감독의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에는 ‘사랑하지 않!’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미처 다 외치기 전에 쇼츠가 끝나버린다. 김태엽 감독의 ‘30번 환생한 남자’는 30번을 환생하면서도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공룡-인간이 등장한다. 황슬기 감독의 ‘좋아!’에는 벌써 28번쯤 고백했고 기어코 30번을 채울 수밖에 없는 마음이 그려진다. 지겹고, 너무 일방적이고, 서툴러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고백이 영화에 대한 마음이다. 차성덕 감독의 ‘방문’에서는 뭐라 표현할 순 없지만 ‘여기가 좀 채워지는 기분’이 영화를 보는 기분이자 만드는 기분이라는 것, 그래서 아마도 영화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정가영 감독의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에서 영화를 계속하는 다종다양한 이유가 주고받는 대화에서 드러난다. CJ ENM 제공
영화를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만드는지, 인간이 만드는지는 결국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 것이다. AI가 예술가인지 아닌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렇게 피로를 아는 인간의 고민이 쌓여 영화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들이 만든다고 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흥행에 성공한 다른 사람의 작품을 되풀이하는 것이 가장 보장된 흥행의 길이라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태여 ‘피로하게’ 고민하기보다 AI를 활용하는 것이, 비슷비슷한 전개, 인물, 대사를 되풀이함으로써 더 익숙하고 친숙하게 우리를 공감으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우리는 알고리즘에 지배당하고 있고, 알고리즘은 내 취향에 더 맞게 더 큰 공감으로 데려가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예술의 본질은 공감에 있는가? 스코세이지의 말처럼 낯선 것을 마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AI 기술이 발전하고 쇼츠가 날이 갈수록 범람하는 이 흐름을 우리는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피로한 인간의 고민만이 영화라는 예술의 고유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정홍 감독의 ‘워크샵3’은 우연히 버려진 피아노를 주워와 저주에 걸릴지 모른다는 상상 속에서 하나의 워크숍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창작은 그토록 작은 우연에서 시작된다는 듯이.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우연들이 겹치고 겹쳐 하나의 이념이 되기도 한다. 정재은 감독의 ‘여름임장, 무성영화’처럼 기후에 대한 고민을 담아낼 수도 있고, 명소희 감독과 새훈 감독의 ‘너무 늦게 당신에게’처럼 추모와 기억을 담아낼 수도 있다. 어떤 내용이 담기고, 어떤 이념이 표현되는지가 ‘좋은 영화’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영화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고,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영화의 기준은 무엇인가?

기후위기에 대한 다른 고민을 담은 정재은 감독의 ‘여름임장, 무성영화’ 스틸컷. CJ ENM 제공
좋은 영화의 기준이라는 게 있다면, 더 나아가 좋은 예술의 기준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위로도 공감도 보편성도 아니다. 좋은 영화의 기준은 관객에게 창조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지에 있다. 물론 시간만 버렸다고 생각되는 나쁜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체로 그런 생각은 구체적인 창작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느낌이지 고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그것을 그대로 베껴서 흥행을 보장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덤불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는 것처럼 완전히 다른 길을 통해 그 영화가 들게 해줬던 기분을 자신도 전달하고 싶어지게 된다.
스코세이지처럼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막 입학했던 2007~2008년에 그런 기분을 주었던 영화를 열거해보자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 ‘색, 계’(2007), ‘다크 나이트’(2008) 등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형식적 실험을 하는 ‘예술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뿐만 아니라 상업영화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향한 새로운 고민이 쏟아져나온 때였고, 그것을 많은 관객이 지켜봐준 때였다. 그래서 빈번하게 새로운 이야기의 감동이 있었고, 그것이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의 창조로 이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좋은 시절이 가버렸다고 한탄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가 있다고 할 때,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당신’은 영화를 사랑하고, 그래서 고민하고, 그래서 언제든 낯선 것을 마주할 준비가 돼 있는 모두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적어도 30가지 이유가 있다.
강선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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