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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으면 세상도 못 구해?

‘내돈내힘’ 히어로의 씁쓸한 체제 적응… ‘거악’ 만들어 구조 외면하는 드라마 ‘캐셔로’의 한계
등록 2026-01-01 20:37 수정 2026-01-08 14:24
소지한 현금만큼만 힘이 강해지고 힘을 쓰면 돈이 사라지는 한국형 히어로 강상웅. 넷플릭스 제공

소지한 현금만큼만 힘이 강해지고 힘을 쓰면 돈이 사라지는 한국형 히어로 강상웅. 넷플릭스 제공


*이 글은 드라마 ‘캐셔로’의 주요 장면과 전개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당신에게 초능력이 생겼다. 그런데 그 힘을 쓸 때마다 통장 잔액이 줄어든다면, 당신은 기꺼이 히어로가 되겠는가? 드라마 ‘캐셔로’(넷플릭스)는 이 곤란한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진다. 내 집 마련이 꿈인 평범한 공무원 강상웅(이준호)은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초능력을 상속받는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실직한 이후 책임감 없고 무능하게 산 줄만 알았던 아버지는 사실 초능력자였고 이제 그 능력을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그러나 조건이 치명적이다. 소지한 현금만큼만 힘이 강해지고 힘을 쓰면 돈이 사라진다. 느닷없이 초능력자가 되었지만, 상웅은 애써 그 능력을 무시하려 한다. 히어로의 삶보다는 오랜 연인 김민숙(김혜준)과의 안정적 일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회계팀장이자 현실주의자인 민숙은 아파트 계약금을 모으기 위해, “아무리 봐도 기계보다 비효율적이고 쓸데없어 보이는” 초능력을 쓰지 말라고 상웅을 단속한다.

느닷없이 초능력자가 된 ‘캐셔로’ 주인공 강상웅은 애써 그 능력을 무시하려 한다. 히어로의 삶보다는 오랜 연인 김민숙(김혜준)과의 안정적 일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제공

느닷없이 초능력자가 된 ‘캐셔로’ 주인공 강상웅은 애써 그 능력을 무시하려 한다. 히어로의 삶보다는 오랜 연인 김민숙(김혜준)과의 안정적 일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제공


“돈이 많았으면 나도 착하게 살았어”

그런 이유로 상웅은 무거운 물건을 들고 지하철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를 봐도 돕지 못하거나, 골목에서 양아치들에게 돈을 뺏기는 시민을 보고서도 돌아선다. 상웅의 마음에는 점점 죄책감이 쌓이고,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부작용으로 몸에 난 물집 때문에 가려움증이 생긴다. 마치 ‘양심의 가려움증’처럼.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아파트 계약금에 보태라며 준 곗돈 3천만원을 버스 추락 사고를 막느라 탕진해버린다. 돌이킬 수 없이 히어로의 길로 들어선 상웅은 그렇게 ‘내돈내힘(내 돈 내고 내가 힘쓰는) 히어로’가 된다.

어머니가 아파트 계약금에 보태라며 준 곗돈 3천만원을 버스 추락 사고를 막느라 탕진해버린 상웅은 돌이킬 수 없이 히어로의 길로 들어선다. 넷플릭스 제공

어머니가 아파트 계약금에 보태라며 준 곗돈 3천만원을 버스 추락 사고를 막느라 탕진해버린 상웅은 돌이킬 수 없이 히어로의 길로 들어선다. 넷플릭스 제공


동명의 웹툰 원작을 각색한 ‘캐셔로’는 “한국형 히어로”를 표방한다. 한국 드라마 속 히어로는 마블이나 디시코믹스의 영웅처럼 초월적이지 않다. 제약과 결핍투성이다. 힘을 쓸수록 몸이 아프거나 수명이 줄고, 상웅처럼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 또한 한국형 히어로는 세계나 인류 구원에 사명을 두기보다는 가족과 공동체의 일상을 지키는, 비교적 소박한 목표를 가진다. 고뇌하는 개인으로 존재하기보다는 혈연이나 유사 가족이 팀을 이뤄 활동하는 것도 특징이다. ‘캐셔로’에도 술을 마시면 벽을 뚫는 능력이 발동하는 변호인(김병철), 섭취한 칼로리만큼 염력을 쓸 수 있는 방은미(김향기)가 상웅과 함께 활동한다. 무려 ‘대한초능력자협회’도 있다. 그렇게 ‘캐셔로’는 초능력을 한국적 생활 조건 속에 배치한다.

섭취한 칼로리만큼 염력을 쓸 수 있는 방은미(김향기). 넷플릭스 제공

섭취한 칼로리만큼 염력을 쓸 수 있는 방은미(김향기). 넷플릭스 제공


‘현금=능력’이라는 핵심 설정은 자본주의 사회를 은유한다. 돈이 곧 능력인 세상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청약 당첨을 꿈꾸는 상웅과 민숙은 평균적인 시민의 얼굴이다. 그런 상웅에게 아버지가 물려준 건 초능력이 아니라 가난이다. 자본주의에서 가난은 곧 결함이며, 때로는 죄처럼 취급된다. 그래서 “히어로의 본질은 오지랖”이라는 빌런 조나단(이채민)의 비웃음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선량한 행위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상웅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치르는 비용은 추상적인 희생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존의 문제다. “돈이 많았으면 나도 겁나 착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상웅의 말처럼 드라마는 선의와 정의마저 자본에 예속된 현실을 드러낸다. 동시에 선의마저 ‘비용’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선해지는 일조차 비용 계산을 요구받는 세계에서 생존과 공존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곤란한 질문이 여기서 발생한다.

명확한 사인 ‘돈이 없어서’

드라마는 ‘생존과 공존’이 힘들다고 여기는 현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극대화하기 위해 원작에 없던 ‘범인회’라는 거대한 악을 추가한다. 원작 웹툰은 ‘흙수저’ 청년이 어쩌다 생긴 초능력으로 자신의 한계 안에서 누군가를 돕는 이야기였다면, 드라마는 판을 키워 명확한 적을 만들어낸다. 범인회는 초능력자의 능력을 추출해 앰풀로 만들어 대량화하려는 집단으로, 목적을 위해 살인과 건물 폭파도 서슴지 않는다.

‘범인회’라는 단순한 거악을 등장시키면서 드라마 ‘캐셔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구조적 질문을 폐기한다. 넷플릭스 제공

‘범인회’라는 단순한 거악을 등장시키면서 드라마 ‘캐셔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구조적 질문을 폐기한다. 넷플릭스 제공


소지한 현금만큼 쓸 수 있는 초능력이 개인의 윤리적 딜레마를 보여준다면, 범인회는 자본주의의 무한한 욕망을 의인화한 악이다. “거리에 피가 흐르면 우리 집 곳간이 찬다”라는 그들의 신념은 인간을 도구화해 이윤을 축적하는 기업 논리, 그리고 그런 구조를 방치한 사회시스템을 연상시킨다. 동시에 범인회는 자본주의 비판을 단순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구조적 문제는 인물의 악의로 환원되고, 체제는 처벌할 수 있는 적으로 의인화된다. 자본주의는 일상의 규범과 제도, 상식 속에 스며든 구조적 힘이지만, 드라마는 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악당’으로 치환한다. 그 결과 비판은 시스템이 아니라 제거할 수 있는 대상에 집중되고, 구조를 질문하기보다는 악당 처단의 길로 거침없이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원작이 보여주던 “허술한 댐을 작은 주먹으로 막는” 생활밀착형 히어로는 사라지고, 거대한 악과 맞서는 고독한 히어로만 남는다.

이런 설정 변화로 드라마는 소박한 서사에서 스펙터클한 액션이 압도하는 블록버스터로 바뀐다. 범인회라는 명확한 적이 생기면서 현실적 고민은 뭉개진다. 초반부에서 상웅은 매 순간 계산한다. 시민을 도울 것인가, 생활비를 지킬 것인가. 버스 사고를 막을지 말지, 주머니 속 돈을 떠올리며 망설인다. 그러나 범인회와의 대결이 본격화하면서 이런 계산은 사라진다. ‘생활비와 초능력 사이에서 흔들리는 내돈내힘 히어로’라는 설정은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당위 앞에서 밀려난다. 설정은 남아 있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던 현실성은 증발한다. 악을 극단적으로 구체화한 결과, 자본주의라는 구조적 문제는 오히려 흐려진다.

특이하게도 드라마는 중반 이후 상웅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히어로가 죽다니!) 상웅은 민숙과 시민을 지키기 위해 조나단과 함께 폭파되기를 선택한다. 사인은 명확하다. 돈이 없어서다. 잔액이 바닥나자 생명도 소진된 것이다. 댐에 난 작은 구멍을 주먹으로 힘껏 막아도 결국 구멍이 커지는 걸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상웅의 죽음은 자본을 가진 폭력 앞에서 개인의 윤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직설화법으로 보여준다. 결국 상웅은 죽고, 범인회는 초능력 앰풀을 팔아 부를 획득하고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는 데 성공한다.

소박한 ‘생활밀착형’ 히어로물에서 블록버스터로 바뀐 드라마 ‘캐셔로’. 넷플릭스 제공

소박한 ‘생활밀착형’ 히어로물에서 블록버스터로 바뀐 드라마 ‘캐셔로’. 넷플릭스 제공


연대를 ‘기부 이벤트’로 소비하는 불편함

그러나 히어로는 죽을 자유도 없다. 민숙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경찰 황현승(장현성)의 도움으로, 상웅이 죽기 1분 전으로 돌아가 이번 달 용돈을 그의 손에 쥐여준다. 그 돈이 상웅의 생명을 되돌린다. 부활한 상웅은 조나단과 최후의 대결을 펼치고, 또다시 현금이 바닥나 위기에 처하자, 이번에는 시민들이 나선다. 어린이가 던진 저금통을 시작으로 시민들은 “힘내세요”라며 돈을 던져 상웅을 응원한다. 그렇게 모인 돈은 다시 힘이 되고, 상웅은 조나단과의 최후의 싸움에서 승리해 세상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

이런 설정을 통해 드라마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내 힘은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내 힘은 돈보다 더 중요한 걸 지키기 위해 나온다”라는 상웅의 말대로 돈이 곧 능력인 세상이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한 선한 의지가 초능력처럼 힘을 발휘해 결국 모두를 살린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까? 혼자가 아니라 함께일 때 선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전하고 싶었을까? 이 장면은 감동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묘한 불편함을 남긴다.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지키는 힘이 끝내 ‘돈의 총합’으로만 표현되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없으면 죽고, 시민의 연대는 ‘돈 던지기’라는 일회적인 기부 이벤트처럼 소비된다. 범인회라는 거대 악을 만들어낸 순간, 드라마는 이미 이런 결말로 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상의 윤리적 고민은 액션으로 대체되고, 구조에 관한 질문은 악당 처단으로 봉합된다. 결국 범인회는 무너졌지만, 그들을 가능케 한 시스템은 그대로다. 돈 없는 사람은 선해지기조차 힘든 딜레마는 여전하다.

“이건 돈 싸움이 아니야. 사람들을 구한 건 초능력이 아니야, 너지. 우리 힘은 돈에서 나왔던 게 아니야”라는 말이 의미하듯, 드라마는 선한 의지와 마음이 세상을 구한다는 희망을 보여주려 한 것 같지만, 오히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그 마음의 힘은 자본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는 작동하기 힘들다는 걸 선명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여전히 돈과 개인의 헌신이고, 히어로인 상웅은 아파트 청약 당첨과 민숙의 임신이라는 해피엔딩에 도달한다. 아파트 청약 당첨, 결혼과 임신이라니! 지극히 ‘한국적’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드라마가 도달한 해답은 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적응이다. 자본주의의 한계와 모순을 드러내는 듯했다가, 그 한계와 모순을 감당하기보다는 소박한 보상으로 대체한 것이다.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여전히 돈과 개인의 희생에 의존하고, 사회적 실천은 감동적인 장면으로 대체된다.

왜 정의는 ‘선의’와 ‘감동’으로 대체되는가

우리는 왜 선해지기 위해서조차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가. 왜 정의는 늘 개인의 희생 위에서만 성립하는가. 그리고 왜 사회적 실천은 제도나 권리의 문제가 아닌, 감동적인 장면으로만 대체되는가. ‘캐셔로’는 이 질문을 무책임하게 봉합해버린다. 아니, 애초에 대답할 역량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 규모에 비해 통찰력은 ‘한도 초과’ 상태가 돼버린 탓이다.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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