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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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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방위원장 “말도 안 되는 방위비 요구, 미국도 알 것”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 인터뷰 “일 지소미아와 미 방위비 분담금은 별개”
등록 2019-11-23 15:42 수정 2020-05-03 04:29
11월20일 국회에서 만난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내년까지 갈 수 있다”며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박승화 기자

11월20일 국회에서 만난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내년까지 갈 수 있다”며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박승화 기자

“미국의 협상안대로라면 앞으로 미국에 있는 미군 월급까지 줘야 할 판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중단으로 11월18~19일 서울에서 열린 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3차 회의는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협상이 결렬된 다음 날인 11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미국이 10억달러에서 50억달러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는 것에, 안 위원장은 “혼란스러울수록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또 “미국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전방위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서둘러 협상에 나섰다가 지금껏 지켜온 비용 분담의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며 국회 비준을 고려한 듯 “국회의 승인을 받을 수 없는 협상안에 대해 정부가 서둘러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동시에 핵잠수함 보유나 미사일 사거리 제한(800㎞) 철폐 등을 요구하자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동북아의 연쇄적인 무력 증강으로 인한 긴장이 불보듯 뻔하다”며 반대했다.

트럼프가 내뱉은 50억달러에 끼워 맞춘 요구안

제임스 드하트 미국 방위비분담협상 대표가 제시한 50억달러의 얼개가 언론 보도로 나왔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협상단도 자신들의 요구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특히 미군 작전 지원과 관련된 항목은 지난 10차 협상 때 이미 증액을 요구했다. 그때 협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철회했다. 그걸 1년 만에 다시 들고 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던진 50억달러 요구를 사후에 항목을 집어넣어 맞추다보니 협상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 돼버린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 두드러진 대목은 미국이 요구하는 50억달러(약 6조원) 항목에 기존 방위비 분담금을 넘어서는 △주한미군 인건비 △군무원 및 가족 지원 비용 △미군의 한반도 배치 비용 △역외 훈련 비용 등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미군의 시설과 거주구역과 관련한 경비를 제외한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외적으로 1991년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에 따라 주한미군 고용원 인건비와 군수지원비, 군사건설비, 연합방위력 증강사업비 등을 한국 정부가 부담해왔다.

협상단도 자신들의 제안이 말이 안 된다는 걸 안다는 것인가.
미국 국방부가 3월 말에 미 의회에 보고한 자료만 봐도 주한미군의 전체 운영 유지비는 22억2천만여달러다. 원래 협정대로 주둔 비용을 분담한다면 우리는 11억달러(약 1조2875억원)만 내면 되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서 미군을 용병처럼 쓰고 우리가 다 낸다고 하자. 그래도 22억달러다. 그런데 50억달러라니, 민주당만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반발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드하트 대표는 한국 쪽에 재고할 시간을 주기 위해 협상을 일찍 끝냈다고 말할 정도로 강압적인 태도다.
사실 처음부터 판을 깨려는 액션플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작한 지 10분 만에 긴급 기자회견을 준비한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뭔가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미국 협상단의 태도는 무례하기도 하지만 뭔가 다급하고 절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는지.
미국 내 사정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내년 대선을 겨냥해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협상단은 이에 부응해야 했을 것이다.

‘경찰’ 예우 받으며 ‘용병’ 사용료 청구하는…

분담금 협정의 취지 등을 앞세운 우리 입장과 달리,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과 이를 위해 비용을 나누려는 트럼프의 전략은 미국 내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듯한데.
두 가지 전략은 양립할 수 없다. 경찰과 용병의 역할 모두를 할 수는 없지 않나. 미국이 추구하는 세계 전략은 인도-태평양을 바탕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동맹국의 참여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작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동맹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미국 스스로 미군을 용병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언하자면 자국의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세계 경찰의 ‘지위’와 상대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야 하는 용병의 ‘역할’을 동시에 가져가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논리적으로 그렇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얘기까지 나오니 불안감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때마다 그냥 쉽게 넘어간 적은 없었다. 협상 과정은 지난하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이 미국이 요구하면 다 받아주는 그런 관계는 아니지 않나. 협상에서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입장 차이에 따른 역동성 속에서 간극을 좁혀가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주한미군은 우리의 이해득실 차원을 넘어 미국의 세계 전략, 특히 중국을 고려하면 미국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더욱이 미국의 국방수권법을 보면 주한미군을 2만2천 명 이하로 줄일 수도 없다(현재 2만8천여 명 추산). 그 안에서는 (전략적 판단하에) 이동하는 게 현재 미군이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당장의 증감을 갖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가 판교 신도시의 1.6배로 전세계 미군 주둔 기지 중 가장 큰 규모(1467만7천㎡)다. 이를 미국이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의 도를 넘은 압박은 계속된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11월19일(현지시각) 필리핀 국방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한국을 “부자 나라”라고 부르며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추측하지 않겠다”고 했다.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오랜 불안심리를 이번 협상에 활용해, 협상 주체인 국무부를 측면 지원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가 보인다. 이는 11월15일 에스퍼 장관 스스로 공동성명에서 밝힌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공식 입장과도 상반된다.

11월18일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500% 인상(달러 기준)을 요구한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제3차 회의가 열린 서울 동대문구 한국국방연구원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위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11월18일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500% 인상(달러 기준)을 요구한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제3차 회의가 열린 서울 동대문구 한국국방연구원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위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주한미군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것”

합리적인 비용 부담의 방향이 있는 것인지.
지금껏 해오던 것처럼 종래 협정의 취지를 고려해 물가상승률이나 국방예산 가운데 방위비 분담금 비중을 고려해 산정하면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적극적으로 요구할 게 있다. 집행의 투명성이다. 현재 우리가 주둔 비용으로 지급한 뒤 미군이 다 쓰지 못하고 남은 돈이 1조2천여억원이다. 이번 기회에 현재의 분담금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안규백 위원장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담금 협정을 통해 직접 지급하는 비용에 무상으로 대여하는 토지를 포함해 도로, 항만, 철도 등 이용까지 포함하면 2015년 기준으로 우리가 이미 5조5천억원이 넘는 비용을 직간접적으로 부담하고 있다”며 “이는 GDP 대비 0.35%로 비율로 따지면 일본의 두 배(0.14%)를 넘는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협정을 1년 연장해서라도 상식적으로 납득할 만한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과정에서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사실 급한 것은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다. 어떻게 전망하는지.
지소미아는 미국보다는 일본과 관련된 문제다. 이런 맥락을 미국에 거듭 강조하고 (분담금 협상처럼) 원칙적으로 대응해가야 한다. 이 또한 급할 것 없다. 이해득실을 따지자면 (국방력 차원에서)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없다.

방위비 분담금과 마찬가지로 지소미아 또한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미국이 움직여주지 않는 거 같다. 두 가지가 사실상 연계된 듯하다.

우리 스스로 분명하게 두 사안은 별개라고 규정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지소미아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맥락에서 일본이 먼저 수출규제를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고, 방위비 분담금은 미국이 예상치 못한 인상안을 들고나오면서 발생한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보면 동북아 역내 안보 전략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전략 안에서 움직이고, 지소미아는 수출규제 등 일본의 도발로 시작돼 지금에 이르렀다. 일본의 변화 없이는 지소미아 종료는 돌이킬 수 없다. 다만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한 인터뷰에서 ‘한-일 간의 역사적 문제에서 야기된 경제문제를 한국이 안보 영역으로 확대했다’고 했던데 사안의 팩트를 완전히 왜곡한 이런 발언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부에서는 지소미아가 종료된 뒤 국방력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대북 (국방력) 차원에서만 따져보자면 우리에게 큰 손실은 없다. 지소미아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일본이 강점을 가진 정찰·위성 정보다. 하지만 이는 미군을 통해서도 충분히 제공받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5월 이후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고도나 방향을 두 차례 이상 탐지하지 못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서 보듯, 우리 군의 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소미아는 이후 상황을 봐가며 (우리의 필요에 따라) 재체결도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안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언론이) 이번 기회에 국민 불안을 부추겨 성급한 판단으로 방위비 협상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차례 “급할 것 없다”고 했다. 인터뷰 다음 날인 11월21일 는 미국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미군의 1개 여단(3천~4천 명 규모)을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안 위원장에게 주한미군 철수 부분을 다시 물었다.

“불안 부추겨 협상 그르쳐선 안 돼”

미군이 여단급 철수를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어떤 경로로도 그 얘기를 들은 바 없다. 해당 여단의 철수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군 운용 과정에서) 계획된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분담금 갈등을 이유로 주한미군이 움직일 상황이 아니다. 동맹이 유지된 역사가 있다. (해당 보도만 갖고) 감정적으로 판단해 우리가 먼저 판을 키우는 등 협상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

미국 국방부는 11월21일(현지시각) 성명을 내 “주한미군 1개 여단 철수 검토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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