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왜 예정에 없던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했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3월17일 이 병원 착공식 연설문에서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착공의 첫 삽을 뜨는 동무들을 전투적으로 고무 격려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모든 나라 최고지도자는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방문할지 신중하게 결정한다. 북한은 더욱 신중하게 결정한다.
하나, 위기관리 리더십 건재 과시먼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위기관리 리더십이 건재함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에서 40㎞ 떨어진 순천인비료공장 건설현장 현지지도(1월7일) 이후 두 달 넘게 사실상 평양에서 공식 활동을 하지 않았다.
1월 중하순 이후 코로나19가 세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은 국경을 닫고 1월28일 코로나19와 관련해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2월16일)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것을 빼면 평양에서 공식 활동이 없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주검이 있는 장소다.
김 위원장은 3월에는 약 보름 동안 함경도, 강원도 등 동해안 일대 군사 훈련을 지휘했다. 김 위원장이 코로나19를 피해 평양을 비웠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다 3월17일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가했다. 김 위원장은 착공식 연설을 통해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당 창건 75주년(10월10일)인 올해의 과업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보람 있는 투쟁과업”으로 규정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지난 연말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평양시에 현대적인 종합병원 건설을 결정하고,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이하여 선차적인 힘을 넣어야 할 건설로 규정’했다. 그는 착공식에서 주요 간부들과 함께 직접 삽을 들어 흙을 뜨고 화약 발파 단추를 눌렀다.
3월18일치 2면에 실린 5300자가 넘는 착공식 연설문 전문을 보면, “인민의 건강 증진이 최급선무” 등 ‘인민’이라는 단어가 모두 25번 나온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자기의 본성으로, 신성한 정치이념으로 하고 있는 우리 당에 있어서 인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것은 조건의 유리함과 불리함에 관계없이 반드시 걸머지고 실행하여야 할 최급선무이며 또한 가장 영예로운 혁명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설에서 평양종합병원을 우선 착공한 배경에는 ‘인민대중 제일주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 혼선을 빚어 리더십이 흔들리는 위기에 빠진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대중연설을 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착공식에서 노동당 간부들이 아닌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군인 등 평범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설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지지도를 자주 했지만, 대중연설은 하지 않고 간부들을 상대로 지시를 내리고 신문과 방송이 이를 간추려 보도했다. 왜냐하면 김일성·김정일 시대 최고지도자는 유일적 최고결정권을 지닌 무오류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대중과 직접 접촉을 꺼리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연설 정치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2012년 4월15일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가해 첫 공개연설을 하면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2017년 신년사)고도 밝혔다.
평양종합병원 연설에서도 김 위원장은 보건의료 현실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그는 “우리 당은 (지난해) 당 중앙전원회의에서 나라의 보건, 의료부문의 현 실태를 전면적이고도 과학적으로 허심하게(솔직하게) 분석 평가했다”며 “자기 나라 수도에마저 온전하게 꾸려진 현대적인 의료보건 시설이 없는 것을 가슴 아프게 비판했다”고 말했다.
둘, ‘인민의 운명’ 책임질 보건복지 상징김 위원장이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평양 보건의료 상황을 지적한 것은 북한 전체 보건체계를 비판한 것과 다름없다. 무상치료제, 의사담당구역제, 예방의학제 등 북한 보건의료제도는 외형상 탄탄하게 갖춰져 있다. 북한 보건의료 인력은 인구 1만 명당 약 32.9명으로, 세계 평균인 14.2명보다 많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경제위기 이후 보건의료 시스템이 무너졌다. 병원에 의료장비와 소독제, 마취제, 치료약이 부족해 환자들은 병원에 가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은 평양종합병원의 위치가 “평양시 안에서도 명당자리”라고 했다. 남한으로 치면 주요 기관이 몰린 서울 광화문과 번화한 강남을 합한 곳이다. 착공식이 열린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거리 옥류 3동 주변에는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탑, 김일성-김정일화(꽃) 전시관, 동평양 대극장, 주체사상탑이 있고, 50m 거리에 대동강이 있다. 노동당 창건기념탑 도로(6차선) 건너편 분수대 공간에 평양종합병원을 짓는다. 노동당 창건기념탑 모양은 당 마크인 노동자(망치), 농민(낫), 인텔리(붓)를 상징한다. 이 탑을 마주한 곳에 병원을 지어 김정은 위원장의 인민 사랑을 부각하려는 의도다. 노동당 창건 75주년에 ‘어머니 당’이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다는 메시지를 평양종합병원을 지어 강조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평양종합병원을 평양의 랜드마크로 삼으려 한다. 김 위원장은 “수도의 한복판에 솟아오르게 될 평양종합병원은 적대세력들의 더러운 제재와 봉쇄를 웃음으로 짓부시며 더 좋은 내일을 향하여 힘 있게 전진하는 우리 조국의 기상과 우리 혁명의 굴함 없는 형세를 그대로 과시하는 마당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착공식 연설을 마무리했다.
셋, 코로나19로 막힌 관광사업 타개김정은 위원장은 연설에서 “올해 계획되었던 많은 건설사업을 뒤로 미루고 (종합병원을) 착공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김 위원장은 3대 관광사업(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삼지연군관광단지, 양덕온천관광지구)에 큰 관심을 보였다. 관광으로 대북제재를 극복할 구상이었다. 코로나19로 북한이 국경을 닫고 외부 관광객이 끊어져 이 구상이 틀어졌다.
올해 10월10일은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이다. 북한은 5·10년 단위로 행사를 크게 연다. 올해 당 창건 75주년에도 눈에 띄는 성과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3대 관광사업 대안이 평양종합병원이다. 김 위원장은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통해 코로나19 국면에서 보건의료의 중요성 강조, 자력갱생을 통한 대북제재 극복, 당 창건 75주년의 성과물 마련이란 세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섰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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