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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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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이냐 협상이냐, 다섯 갈래 길

미얀마 앞으로 어떻게? 민주화 진영 승리하려면
국제사회 개입·군부 고립 등 고차방정식 필요해
등록 2021-06-12 20:07 수정 2021-06-15 18:52
2021년 6월5일 미얀마의 만달레이 시민들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깃발을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아세안이 미얀마 사태 중재에 미적거리며 군부 편을 들고 있다고 비난한다. REUTERS 연합뉴스

2021년 6월5일 미얀마의 만달레이 시민들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깃발을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아세안이 미얀마 사태 중재에 미적거리며 군부 편을 들고 있다고 비난한다. REUTERS 연합뉴스

미얀마 국민이 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다섯 달째 민주화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미얀마에선 6월 들어 우기가 시작됐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서너 달 이어질 테다. 저항과 폭압이 길어지면서 경제가 휘청이고 서민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힘겹다. 그러나 미얀마 국민에게 경제난과 바이러스보다 더 끔찍한 악몽은 군부통치라는 ‘앙시앵 레짐’(옛 체제)으로 되돌아가는 사태다.

미얀마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 향방은 결국 국민과 군부의 힘겨루기로 결판날 것이다. 2021년 3월 싱가포르의 국제안보 싱크탱크인 유솝이스학연구소는 미얀마 군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강경, 일부 양보, 전격 퇴진)과 민주화운동 세력의 태도(전면 저항, 부분 저항, 순응)를 조합해 9가지 경우의 수를 전망했다. 애초 군부는 1년간 비상통치와 총선 재실시 약속이 먹히는 ‘강경 대 순응’을 기대했으나 사태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군부와 민주화 진영 양자만을 행위자로 설정한 초기 시나리오가 지나치게 단순했던 탓이다. 미얀마는 공인된 소수민족만 135개다. 자치권 확대나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무장투쟁을 벌이는 민족도 10개가 넘는다. 미얀마가 회원국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중국, 유엔 등 국제사회의 중재와 개입도 주요 변수다.

2021년 4월 인도의 싱크탱크 델리정책그룹은 군부, 민주화 진영, 불교계, 소수민족 무장그룹 등 4개 행위자의 강세와 약세를 조합한 8가지 시나리오를 내놨다. 특히 가장 강력한 행위자인 군부가 사태를 장악하는 경우와 군부 내 강온파가 분열하는 경우를 나누고, 어느 쪽이든 불안정 요인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 점이 눈에 띈다. 같은 달, 미얀마 정치 전문가 장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워크숍에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로 군부의 진압 성공, 민주주의 회복, 연방군 창설에 따른 사태의 장기화, 군 내부의 분열과 모반, 국제사회 중재 등을 꼽았다. 여러 전문가의 분석과 주요 행위자들을 아우른 미얀마 사태의 향후 시나리오는 크게 다섯 가지로 예측할 수 있다. △민주화 진영 승리 △군부의 전면 장악 △협상을 통한 권력 분점 △내전의 본격화 △국제사회 개입이 그것이다.

1. 전화위복 민주화

광범위한 시민불복종과 저항시위의 지속, 시민방위군 무장투쟁의 실질적 효과, 국제사회의 민주화운동 지원과 군부 고립, 중국의 용인 등이 모두 충족돼야 하는 고차방정식이다. 소수민족이 대거 참여한 국민통합정부가 유일하고 명실상부한 합법적 민주정부로 출범할 수 있다. 연방의회 의석의 최소 25%와 내각의 안보 분야 장관직을 군부에 보장한 2008년 헌법은 폐기될 것이다. 대신, 군부의 정치 개입 금지와 민간 통제, 국민의 정치·경제적 권익과 소수민족 권리 확대를 명시한 연방 민주주의 헌법 개정을 국민투표로 채택하게 된다.

군사정부의 인권침해와 부패에 대한 진실 규명과 사법적 판단 등 과거사 청산, 군부가 장악한 기업과 돈줄의 국유화 혹은 민영화,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보상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군부의 인맥과 경제적 기반이 탄탄한데다, 아웅산 수치와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정치적 역량이 미숙한 것도 한계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다.

2. 군부의 전면 장악

군부가 폭력 진압을 지속하고 시민사회는 저항의 장기화에 따른 피로와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투쟁 동력을 잃어가는 경우다. 군부는 한동안 비상통치 체제를 이어가거나, 1~2년 안에 새 총선을 실시해 군부의 위성정당이 집권하는 형식적 민정 이양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미얀마 정치는 2003년 군부 내 개혁파가 점진적 민주화를 약속한 ‘민주화 7단계 로드맵’ 이전으로 퇴행할 가능성이 크다.

군부는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NLD의 해체와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민주화 진영의 무력화를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6월2일 미얀마 독립언론 <이라와디>는 연방선거위원회가 군사정부에 정당등록법 규정을 위반한 정당이 있는지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5월21일, 군 장성 출신인 테인 소 연방선거위원회 위원장은 “불법적으로 선거를 조작한 NLD를 해체하고 투표를 조작한 ‘반역자’들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미 가택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도 온갖 혐의를 씌워 재판에 넘겼다.

2021년 5월25일 미얀마의 어느 비공개 장소에서 국민통합정부(NUG)가 군부의 폭력에 맞서 창설한 시민방위군(PDF)의 첫 군사훈련 수료식이 열리고 있다. 국민통합정부가 외신에 공개했다. EPA 연합뉴스

2021년 5월25일 미얀마의 어느 비공개 장소에서 국민통합정부(NUG)가 군부의 폭력에 맞서 창설한 시민방위군(PDF)의 첫 군사훈련 수료식이 열리고 있다. 국민통합정부가 외신에 공개했다. EPA 연합뉴스

3. 협상으로 권력 분점

지금으로선 군부가 스스로 퇴진하거나 양보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민주화 진영도 무장투쟁 방침을 굳힌 상태다. 양쪽 모두 대결에서 밀리면 엄청난 역풍이 닥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군부가 국민의 지지 기반이 거의 없는 군정 체제를 무한정 끌고 갈 수도 없다. 적당한 시기에 체면과 실리를 잃지 않고 양보할 명분이 필요하다. 겉으론 우세해 보이는 군부의 딜레마다. 이런 교착 국면은 역설적으로 양쪽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5월20일, 군부의 최고 실력자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홍콩의 친중국 매체 <봉황TV> 인터뷰에서 “(미얀마 국민의) 저항이 이렇게 거셀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그들이 100% 통제된다고 말할 순 없다”고 털어놨다. 군부의 당혹감이 엿보인다. 군부와 국민통합정부의 권력 분점 협상이 실현되면 군부가 쿠데타의 명분을 살리고 기득권을 보장받으면서 형식적 민간정부를 인정하는 쿠데타 이전 상태로 원상복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서로 최대한의 지분을 요구할 게 분명한데다, 2020년 11월 총선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최대 난제가 될 것이다.

4. 내전 장기화, 제2의 시리아?

5월31일, 국민통합정부 대변인 사사 박사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미얀마 국민에게 다른 선택지는 남아 있지 않다”며 “마을에 단 한 명만 남더라도 살인자들에게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온 나라가 내전의 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5월29일 국민통합정부는 서부 친주에서 활동 중인 친국민전선(CNF)과 동맹 협정을 맺었다. 국민통합정부가 소수민족과 반군부 공동전선에 합의한 건 처음이다. 민주화 진영의 사기 진작과 다른 소수민족 그룹과의 연대 노력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내전은 대량 인명 피해와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에서 벌어진 내전과 대량 난민 사태가 미얀마에서 재현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시리아와 미얀마 사태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시리아 내전은 국내에 상당한 전투력을 갖춘 무장반군 세력이 많았다. 미국·영국·터키·러시아·이란 등 시리아와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나라가 알아사드 독재정부 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군의 편을 들어 개입했으며, 외국 군대가 전쟁에 직접 참여한 국제 대리전에 가까웠다. 시리아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미얀마는 이런 사례들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미얀마의 최대 소수민족 무장집단이자 다른 소수민족 무장집단의 무기 공급원인 친중국계 와주연합군(UWSA)이 국민통합정부에 협력하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5. 국제사회 개입… 중재와 수용이냐, 무력 개입이냐

내전 같은 무력 충돌과 학살 등 심각한 인권침해는 유엔의 평화유지군 파견이나 보호책임(R2P) 발동 등 ‘인도주의적 개입’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아직 미얀마 사태에선 우려와 경고 수준에 그친다. 5월17일 미국·영국·캐나다 3개국이 미얀마 군부 인사들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얀마는 중국과의 교역량이 전체의 30%가 넘고 싱가포르·타이·말레이시아 등 아세안 회원국과의 교역이 약 40%를 차지한다. 서방 중심의 경제 사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미얀마 군부에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외국 세력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다. 아세안은 아직 미얀마 사태 해결에 소극적인데, 4월24일 특별정상회의를 열어 △즉각 폭력 중단 △평화적 해결책 모색 △아세안의 대화 중재 △인도적 지원 △특사단 방문 등 5개 항에 합의했다. 하지만 실제 아세안 특사단이 미얀마를 찾은 건 그로부터 40여 일이나 지난 6월4일이었다. 그것도 미얀마 군부 수뇌부만 만나 일방적 주장을 듣고 왔을 뿐이다. 이날 국민통합정부는 “아세안의 노력을 더는 신뢰하지 않으며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앞서 5월18일 유엔 총회에선 미얀마에 대한 무기 금수와 함께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제출됐지만 아세안의 반대로 표결이 무산됐다. 유엔 총회 결의안은 원칙적으로 국제법상 구속력이 없는데도 그랬다. 국제사회의 합법적 개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상임이사 5개국 중 하나인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워 미얀마에 대한 정치·군사적 개입에 반대한다.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현재로선 ‘미얀마 위기’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아세안의 개입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미얀마 위기는 그동안 축적된 ‘아세안 연계성’, 특히 경제 영역의 가치사슬을 위태롭게 하는 만큼, 아세안이 사태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그러나 “만일 아세안이 군부가 의도하는 총선 재실시를 현실적 타협안으로 제시한다면 국민통합정부는 물론 미얀마 국민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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