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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믿기 힘든 소식이 들려왔다. 대명천지에 쿠데타라니. 오늘은 석 달 전인 2020년 11월8일 총선으로 구성된 의회 개원일이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또다시 총선에서 압승해 문민정부 2기가 출범하려는 것을 군부가 총칼로 막아섰다.
터질 듯 뛰는 가슴을 붙잡고 부랴부랴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으나 먹통이다. 인터넷과 전화가 모두 차단됐다. 황망히 외투를 걸치고 집 앞으로 뛰어나갔다. 동네 사람 모두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상기된 얼굴로 서성였다. 수치 여사와 민주 진영 인사들이 일시에 체포됐다고 한다. 옆집 아저씨가 가슴을 치며 울분 어린 욕설을 뱉어낸다. 허망함과 들끓는 분노로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길모퉁이에선 아주머니 몇몇이 장바구니와 쌀자루를 바리바리 이고 지나간다. 벌써 사재기가 시작됐다. 그때 찻집에 앉아 있던 청년이 텔레비전 뉴스가 나온다고 외쳤다. 화면 속에서 녹색 군복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지긋지긋한 얼굴이 말한다. “부정선거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는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발령한다. 향후 1년 동안 군이 나라를 통치하고 이후 공정한 선거를 치러 정권을 이양하겠다.” 해묵은 레퍼토리가 죽지도 않고 또 찾아왔다. 2021년 2월1일, 미얀마는 다시 어둠 속에 잠겼다.
지난 사흘 시민들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봤다. 다만 곳곳에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잡귀를 쫓는 전통의식에 착안해 쿠데타 세력이 물러가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철제 기물을 두드린다. 대학교수와 의료진이 제일 먼저 출근을 거부하며 쿠데타 불복종을 천명했다. 묵은 응어리가 점점 터져 나오고 있었다.
마침내 오늘 만달레이에서 첫 집회가 열렸다. 젊은 지도자 테이자 산이 만달레이의과대학 앞에서 전국 최초로 쿠데타 반대를 외치며 신호탄을 쏘았다. 시민들은 경적을 울리고 냄비를 두드리며 호응했다. 군부는 국영방송을 통해 무리 지어 거리로 나서거나 사람들을 선동하면 엄벌에 처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가짜뉴스를 막겠다며 페이스북 접속마저 전면 차단했다.
2월9일(화) 흐림지난 주말 전국에서 시민 수십만 명이 쿠데타에 항의하는 집회를 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흐르는 강물 같은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더불어 각계각층이 시민불복종을 선언하며 총파업에 들어갔다. 군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민에게 물대포와 공포탄을 쏘며 진압을 이어갔다. 실탄이 발사되고 사람들이 끌려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지만 아직 군경은 폭력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오늘 기어이 일이 벌어졌다. 수도 네피도에서 19살 소녀가 무장경찰의 실탄사격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소녀는 의식을 잃은 채 실려갔고 현장에선 부상자와 체포자가 속출했다. 군부는 이제 선을 넘었다. 그들이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심히 우려된다.
시민들은 매일같이 거리에서 쓰러진다. 불법 체포된 사람이 부지기수다. 군부는 형법을 개정해 무고한 이들을 체포할 구실을 만들었다. 여러 민주 진영 인사에게 내란과 선동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수배령이 떨어졌다.
시민은 이에 굴복하지 않는다. 2021년 2월22일. 2가 다섯 번 들어가는 오늘을 22222혁명일로 명명하고 지난 8888항쟁 때처럼 전 국민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저항의 열기가 들불처럼 번진다. Z세대라고 부르는 청년들은 군부독재를 타도해 미얀마의 봄을 되찾자고 외치는 한편, 세계 각국에 미얀마 상황을 알리려 고군분투한다. 국제사회도 군부를 규탄하며 제재 조처를 발동했다. 엄혹한 나날이지만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저 악독한 자들도 이번만큼은 제 뜻을 이루지 못하리라.
상황이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사흘 전 군부는 1천 명 넘는 불한당을 고용해 양곤에서 관제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평화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칼부림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군부가 전국에서 흉악범 2만 명을 일시에 석방했다고 한다. 사회 혼란을 가중하기 위해 쓰이는 해묵은 꼼수다.
그럼에도 오늘 전국에서 군부독재 타도 2차 총궐기가 이어졌다.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군경은 이제 거리낌 없이 시민에게 총격을 가한다. 오늘 하루만 20명 넘는 사람이 실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페이스북에선 카친주 미치나에서 안 로사 누 타웅 수녀가 무장경찰 무리를 홀로 무릎 꿇고 막아서는 모습이 공유됐다. 눈물 어린 호소에 경찰은 총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빛과 같은 모습에 마음이 먹먹하다.
만달레이에서 비보가 들렸다. 집회를 이끌던 치알신이라는 19살 소녀가 군인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에브리싱 윌 비 오케이’(Everything will be okay·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위로와 격려가 무색하게 오늘 하루 전국에서 최소 34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체포됐다. 군부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시민들의 머리를 저격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의료진, 임산부, 미성년자까지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끔찍한 죽음이 이제는 일상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상황을 알리려 동분서주하는 기자도 표적이 됐다.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법이 지난달 개정돼, 뉴스를 전하기만 해도 징역 3년에 처해진다. 미얀마는 점차 고립되고 있다.
어제는 사망자가 38명 나왔다. 한 달 반 동안 무려 100명 가까이 희생됐다. 쿠데타 세력은 전략무기를 총동원해 군사작전을 하듯 자국민을 조직적으로 학살하고 있다.
쿠데타 세력에 맞서기 위해 민주 진영 인사들은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를 구성했다. 그리고 오늘 소수민족 출신 만 윈 카잉 탄 임시정부 부통령 권한대행은 “군부를 뒤집을 혁명을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 대표들과 회담해 군부에 대항할 무장세력을 만든다는 것이다.
매일 규탄과 우려만 표명하는 유엔과 국제사회에 시민들은 R2P(보호책임)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개입은 요원하고, 그사이 군부는 끊임없이 시민을 학살한다.
미얀마 국군의 날인 오늘은 역사상 최악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쿠데타 반대를 외치는 비무장 시민에게 군경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무려 120여 명이 살해됐다. 사망자에는 겨우 5살인 어린이도 포함됐다.
군경이 학살을 자행하는 동안 네피도에선 국군의 날 축하 열병식이 열렸다. 쿠데타 세력의 수괴 민 아웅 흘라잉은 열병식에서 국가 안정을 해치는 폭력적 행위에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어용언론 MRTV는 나긋나긋한 내레이션으로 “여러분도 머리와 등에 총 맞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라며 국민을 협박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결국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들고일어났다. 카렌민족연합(KNU)과 카친독립군(KIA)은 군부를 강력하게 비난하며 학살을 멈추지 않으면 무력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말로만 떠들지 않았다. 국경에서 교전이 벌어졌고 군부 병력 10명이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사살됐다. 군부는 보복하려 전투기를 동원해 국경 지역에 공습을 퍼부었다. 미얀마는 더욱 깊은 혼돈 속에 빠져들고 있다.
군경, 아니 테러리스트들은 이제 시민들에게 로켓추진탄(RPG)과 박격포까지 발사하고 있다. 벌써 50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군부는 “세계가 미얀마 상황을 잘못 알고 있다. 그걸 바로잡고 싶다”는 요설을 떠들며 미국 방송 CNN의 특파원 클래리사 워드와 취재팀을 초청했다.
신기하게도 CNN 기자들이 가는 곳마다 화재와 파괴가 일어났고, 군부는 그 책임을 모두 시민에게 떠넘겼다. 하지만 노련한 분쟁지역 전문기자인 워드는 군부의 감시를 따돌리며 시민들과 즉석 인터뷰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장한 사복 군경이 나타나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을 모조리 연행해버렸다. 이 모든 과정은 시민들이 낱낱이 촬영한 페이스북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다. 군부는 그간의 만행을 스스로 까발리는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어제 시민과 함께 거리로 나서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던 모델 파잉 타콘이 잡혀갔다. 모두가 그의 체포 소식에 충격받았다. 충격과 두려움. 군부가 시민들 마음에 심으려는 감정이 바로 그것이리라. 충격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오늘 바고주에선 학살의 광풍이 불었다. 군부는 박격포와 수류탄까지 사용해 아무런 이유 없이 비무장 시민 80여 명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대체 국제사회는 무엇을 하는가? 허울뿐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매번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한 미얀마 시민의 반감은 극에 달했다. 청년들은 거리에서 오성홍기를 짓밟고 불태웠다. 중국이 말하길 미얀마 상황은 내정 문제란다. 중국에서는 고문과 학살이 내정의 일환인가보다.
몽유와에서 시위를 이끌던 젊은 지도자 웨이 모 나잉이 체포됐다. 민간인으로 위장한 첩자가 군경에 집회 일정을 밀고하는 바람에 손쓸 새도 없었다고 한다. 사방에 군부가 심어놓은 첩자가 있다.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우리는 더 불안하고 두렵다.
그래도 오늘은 희망적인 소식이 들렸다. 소수민족을 요직에 대거 포진시킨 민족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가 마침내 구성됐다. 버마족과 소수민족이 오랜 반목을 뒤로하고 연방정부 구성과 연방군 창설을 위해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이어 민족통합정부와 손잡은 카친독립군이 군사요충지 알로범 고지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지만 이런 승리 뒤엔 늘 쿠데타 세력의 치졸한 보복이 뒤따른다. 국경에 사는 주민들이 또 얼마나 고된 나날을 보내게 될지 걱정이다.
쿠데타 세력의 수괴 민 아웅 흘라잉은 오늘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갔다. 국제사회는 내내 입바른 규탄만을 쏟아내더니 결국 허울뿐인 아세안에 미얀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떠넘겨버렸다. 시민들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저녁 무렵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아세안 정상들이 국민에 대한 폭력을 즉각 중단하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대화해보자는 등 5개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아세안 회의가 열리는 중에도 거리에선 총성이 멎지 않았고, 각 도시에선 사상자와 체포자가 속출했다. 미얀마 국민은 이제 서로 말고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5월5일(수) 맑음오늘 민족통합정부가 시민방위군(People’s Defence Force) 창설을 공식 발표했다. 쿠데타 세력에서 시민을 지키고 연방군을 창설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겠다는 취지다. 시민은 평화를 외쳤지만 쿠데타 세력은 총탄으로 화답했다. 결국 그들이 시민을 무장하게 했다.
매일 교전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국경 쪽에선 3월 말부터 어림잡아 400번 이상 교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쿠데타 세력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투기와 미사일을 동원한들 전투 경험이 많고 지형에 익숙한 소수민족에게 상대가 안 된다. 군경의 사기가 점점 떨어지며 곳곳에서 이탈자가 나오고 있다니 이 또한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치열한 교전으로 각지에서 실향민이 생기고 있다. 그 수가 35만 명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한낮 기온이 40도를 육박하는 미얀마의 5월. 식량, 식수, 변변한 천막 하나 없이 내쳐진 그들이 이 상황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곳곳에서 시민군 결성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 지역 청년들도 지역을 지키겠다며 속속 거리로 나서는 분위기다. 변변한 무기 하나 없지만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결기가 드러난다. 그 모습이 늠름하면서도 한편으론 처연하다.
오늘 서부 친주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5만 명도 살지 않는 소읍 민닷시를 쿠데타 세력이 정예병력 1500명과 전투용 헬리콥터를 투입해 점령했다. 그들은 민간인을 교전 중 인간방패로 삼고 마약에 취한 채 여성을 성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도시로 들어가는 수도, 전기, 통신을 모두 차단해 많은 주민이 밀림으로 숨어든 상황이다.
미얀마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석 달 넘게 경제활동이 멈추다보니 물가는 폭등했고, 화폐가 유통되지 않아 돈을 뽑으려 밤새워 현금인출기 앞에 줄을 서는 일이 일상이 됐다. 저소득층은 끼니마저 거르고 있다.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공무원들도 더는 버틸 자신이 없다고 한다. 혁명에서 시간은 시민의 편이 아니다.
5월24일(월) 천둥을 동반한 폭우최근 쿠데타 세력은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교사를 모두 정직시키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교사로 고용하면서 학생들의 등교를 강요한다. 이에 시민들은 군의 노예 교육을 거부한다며, 전국에서 90% 이상 자녀의 학생 등록을 보이콧하고 있다. 옳은 일이지만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카야주에선 연일 비보가 날아든다. 시민방위군과 쿠데타 병력의 교전이 격화하며 사상자 수십 명과 실향민 수만 명이 생겼다. 쿠데타 세력은 가톨릭 성당에까지 포격을 가해 4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원통함을 세상이 멸망한들 어찌 잊으리.
오늘 에야와디주 쫑뼈 지역에서 주민 20여 명을 쿠데타 세력 병력이 무차별 학살했다. 저항할 무기조차 없는 이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희생자에는 4살 아이도 포함됐다. 바고 학살 이후 최악의 참사다. 이토록 중대한 범죄가 매일 벌어지는데도 국제사회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그들이 움직이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주검이 필요한가?
6월10일(목) 흐림카야주 디머소에서 어제부터 대규모 교전이 벌어졌다. 쿠데타 세력 증원병력 수백 명이 투입돼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비단 디머소뿐인가? 지금 미얀마는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설령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죽여 지낸다고 해도 체포와 죽음이 곳곳에서 복병처럼 우리를 노리고 있다. 국경으로 가자. 운 좋게 무사히 살아 도착한다면 나는 조국 미얀마의 해방을 위해 삶을 바치겠다.
나는 두렵다. 내 이야기가 오늘 마지막이 될까봐 두렵다. 그럼에도 가야만 한다. 부디 우리 미얀마가 연방 민주주의를 꽃피울 그날이 오길, 고뇌하던 오늘의 나를 추억할 수 있는 그날이 반드시 오기를. 우리의 혁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미얀마 민주주의 만세.
최진배 <미얀마 투데이> 대표
■ #Stand with Myanmar 미얀마 연대 메시지 모음
https://h21.hani.co.kr/arti/SERIES/2593/
■ 제1367호 표지이야기 더보기
내전이냐 협상이냐, 다섯 갈래 길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0489.html
무늬만 민주화, 예고된 군부 쿠데타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04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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