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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의 기후 약자

사람보다 더위에 취약한 반려견, 산책조차 사치가 되는 계절
등록 2026-08-06 21:57 수정 2026-08-0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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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담 작가의 반려견 ‘무늬’가 산책 도중 쉬고 있다. 안담 제공

안담 작가의 반려견 ‘무늬’가 산책 도중 쉬고 있다. 안담 제공


날이 너무 더워서 개가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사료 담는 소리가 나면 귀를 움찔했다가, 듣자 하니 사료 말고 다른 건 하나도 섞어주지 않는 모양이면 불러도 오지 않고 도로 잔다. 그럴 때는 어느 인터넷카페에서 보고 2년째 잘 써먹는 팁을 쓴다. 사료에 물을 살짝 뿌리고 전자레인지에 20초만 데워 냄새를 강하게 하는 것이다. 열을 받은 사료에서는 짭짤하고 고릿한, 생선구이 같은 냄새가 확 피어오른다. 양말처럼 늘어져 있던 개의 몸은 전자레인지에서 그릇을 꺼내는 순간부터 조금씩 들썩인다. 너무 뜨거워 그대로는 줄 수 없으니 작은 선풍기를 켜고 사료를 뒤적여 식힌다. 식히는 김에 사료 냄새를 실은 바람이 개 쪽으로 가게 한다. 이러면 아직은 백발백중으로 개가 내 앞에 와서 앉는다.

 

개 입맛도 떨어뜨리는 극한 폭염

 

개밥을 식히는 사이에 내 밥도 해결한다. 입맛이 사라진 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무가당 두유에 소금을 좀 뿌려 몇 모금 들이켜고는 더 못 먹겠다고 생각한다. 개는 꼬리를 흔들고 앞발을 미세하게 들었다 내렸다 반복하며 그릇을 뒤적이는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높은 곳을 보려 코를 쳐드니 피부가 뒤로 당겨지고 눈이 동그랗다. 어린 강아지처럼 얼굴이 반짝인다. 알맞게 식은 밥그릇을 내려놓자 개는 특식이 나왔다는 듯이 밥을 해치운다. 무슨 개가 더운밥을 찾나 싶어 웃는다. 꼭 할아버지 같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약간 써진다. 내 개는 일곱 살 반이고 대형견에 속한다. 사람으로 치면 60대쯤 되었다. 아직 나무랄 데 없이 건강하지만 겨드랑이와 옆구리에 지방종이 있고 그런 혹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폭염이 벌써 며칠째, 더 어려지지 않는 개와 산책을 나서는 매일 근심스럽다.

나이 든 개와 함께하는 여름 산책은 걸음마다 위험이 도사린다. 집을 나서자마자 열풍이 몸을 덮친다. 에어컨 실외기가 다닥다닥 붙은 건물 앞을 지나는데, 거기서 쏟아진 바람이 특별히 더 뜨겁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실외기 바람의 온도가 곧 이 골목의 온도다. 그러면 곧바로 이해된다. 조금 전까지 실내에서 냉풍을 쐰 대가로 실외에서 열풍을 견디는 구조라는 게. 개의 오늘을 생각한다면 에어컨을 틀어야 하고 개의 내년을 생각한다면 에어컨을 꺼야 한다는 게. 나온 지 몇 분 만에 검은 털이 밀집한 개의 등이 빠르게 뜨거워진다. 그늘 없이 길게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차라리 뛰게 한다. 프라이팬처럼 달궈진 바닥을 최대한 짧게 밟아야 개의 발이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젖은 손수건을 넓게 덮어 몸을 식혀주고, 그늘이나 실내를 찾아 이동한다. 음수대를 찾으면 개가 질색을 하건 말건 물을 길어다 온몸 구석구석 부으며 털을 푹 적셔준다. 산으로 가면 확실히 덜 덥지만 경사 때문에 체력이 빨리 꺾이고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어려우므로 잘 생각해야 한다. 체온 조절을 미리미리 해주지 않으면 산책이 무장 길어진다. 개는 어지럽다고 말하는 대신 한순간에 퍼지니까.

지난해 여름보다 올해 여름이 힘든지 개가 길을 가다가 우뚝 멈춰 앉거나 엎드려버리는 일이 늘었다. 앞으로 몇백 걸음이면 바닥이 시원한 카페도 나오고 물을 보충할 편의점도 나오는데, 다른 방향으로 몇백m면 그렇게 좋아하는 산인데, 차라리 돌아가기로 결심하면 집에도 갈 수 있는데, 어디로든 더는 못 가겠다고 표현할 때가 있다. 영 곤란한 지점에서 개가 움직이지 않으면, 멈춰 선 개를 원의 중심 삼아 줄을 잡고 시계처럼 한 바퀴를 다 돌아본다. 그나마 갈 의지가 있는 방향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퍼진 개를 본 행인들은 대부분 웃음을 터뜨리지만, 이 정도로 심한 더위 속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화가 날지 예측할 수가 없으므로 책잡힐 일을 최대한 피하고 싶다.

매일 다른 갈등이 생긴다. 사납고 조그만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할머니는 우리더러 가까워지지 않게 천천히 걸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나는 드라마 촬영으로 길이 막혔음을 안내하는 앳된 얼굴의 스태프에게 발끈 화가 난다. 편의점 알바생과 헬멧을 쓴 배달원이 서로 삿대질을 한다. 천변에서는 웃통을 벗은 채로 체조하다가 별안간 상대의 멱살을 잡으려는 할아버지들을 본다. 어쩌면 이미 모두가 모두를 미워하고 있다. 재난 속에서 마주하는 이웃들의 얼굴은 험악하다. 기후 약자가 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표정을 수시로 노출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추하지 않을 기력이 없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폭염 산책에서 추해지지 않으려면

 

하루는 해가 저물어갈 무렵에도 여전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만큼 더웠다. 개는 모르는 건물의 그늘진 주차장으로 들어가 앉은 다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집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개를 어르고 달래다 나도 그냥 주차장 바닥에 앉아버렸다. 앉으니까 다시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도 어지러웠던 것이다. 개는 아예 눕더니 머리를 움직여 내 무릎을 베고 쉬었다. 이렇게 더운데도 잠이 오면 살을 붙이고 싶다는 게 신기하다. 목에 매준 손수건을 풀어 마실 물에 적신 다음 열이 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귀와 발을 닦아줬다. 그렇게 둘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떤 차도 들어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이 재난을 함께 통과하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했다.

여기저기 노인들이 보였다. 내 개와 나이가 비슷할 사람들이 느리고 느리게 걷다가 골목 군데군데 놓인 의자에, 반대편 건물 현관 계단에, 한 뼘 그늘이 있는 아무 턱에 앉아 쉬었다. 각자 찾은 피난처에 틀어박힌 우리는 서로가 다 보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겨드랑이 땀을 닦고, 바지를 가랑이까지 바짝 걷어 올리고, 목덜미에 물을 붓고, 허공에 욕을 했다. 걷다가 만났다면 싸웠을 수도 있는 사람들끼리 드문드문 앉아서 타인의 피로를 못 본 척해주기로 약속했다. 서로 다른 옷을 입어도 되는 찜질방에 온 것 같았다.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이 잠시 멈춘 오후, 그 찰나의 휴전 속에서 내 개가 여덟 살 반이 될 내년 여름을 생각했다. 그날 저녁에는 찬물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송풍 모드로 바꾸었다.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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