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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치기도 못 깬 술과의 인연

등록 2009-06-25 16:56 수정 2020-05-03 04:25
퍽치기도 못 깬 술과의 인연

퍽치기도 못 깬 술과의 인연

지금까지 이 지면에서 ‘담배간판 헤딩 사건’ ‘공장 지붕 추락 사건’ 등을 소개했지만, 술과 관련해 가장 충격적인 경험은 따로 있다. 바로 ‘퍽치기 사건’이다.

법조팀에서 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로 일하던 2006년 봄 어느 날 새벽, 말 그대로 퍽치기를 당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고 범인도 잡았지만, 내가 무서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가해자들에 대한 원망에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까지 겹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밤새 자학에 시달리던 나는 공개적인 자기비판을 하기로 했다. 사고 이튿날 사건의 전모를 글로 써서 사내 전산망에 올린 것이다. 누구랑 어떻게 술을 마셨고, 언제쯤 기억이 끊겼고, 정신을 차린 뒤 어떻게 범인을 잡았고, 어떤 느낌이었는지까지 시시콜콜 자세히 풀어썼다. “선후배 제현 여러분의 반면교사가 되길 바라며”라는 친절한 안내도 붙였다.

그런데 사내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지금까지 선배가 쓴 그 어떤 기사보다도 인상적이었어요”라는 문자 메시지며 “대단하다 이순혁, 자랑스럽다 이순혁” 등 전자우편이 쏟아졌다. 웃음은 웃음이되 비웃음이 녹아 있는 웃음들이었다. 에서도 전화가 왔다. “너무 웃기는데 회사 사람들만 읽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잖냐. ‘기자가 뛰어든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자포자기 심정이었던 나는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답했고, 결국 612호(2006년 5월23일치 ‘쓰라리다, 퍽치기의 추억’)에 사건의 전모가 실렸다.

비웃음은 사내 독자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출입처였던 검찰청 간부들은 상처 부위인 이마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내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았다. 고소하다는 듯이 “라고 만날 피의자 인권 보호만 강조하더니 피해자가 돼보니 어때?”라며 뼈 있는 농담을 던지는 이도 있었다.

결국 나 스스로 ‘칠칠치 못한 술꾼’임을 동네방네에 알린 셈인데, 그 배경에는 ‘이번 사건을 술을 멀리하는 계기로 삼아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자학에 남들의 비웃음까지 더하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술을 좀 멀리하지 않겠냐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보다시피 술과의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술을 마시더라도 정신줄 놓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다짐 또 다짐을 하건만,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간간이 폭음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그때마다 무탈함에 감사할 뿐이다.

이쯤 되면 내 삶에서 술이란 존재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지지난주 고향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유명한 점집에서 내 사주팔자를 봤다는 얘기였다. “네 이름을 넣으니까 ‘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팔자’라는 말부터 나오더라. 아이고~. 자칫하면 큰 사고도 날 수 있으니 공을 많이 들이라고 하는데…. 어찌됐건 제발이지 과음만은 마라, 휴~.”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766호를 마지막으로 ‘음주’편 연재를 마칩니다. 다음호부터는 임지선 기자의 ‘가무’편이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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