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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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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주잔 최고의 파트너 ‘굴전’

등록 2009-12-30 11:38 수정 2020-05-03 04:25
굴전

굴전

한밤에 소주 생각이 날 때면 냉장실과 냉동실 문을 번갈아 열어 적당한 안줏거리를 찾는다. 냉장고마저 허기를 느낄 때는 요리를 하기보다 라면을 끓이거나 냉동 만두를 튀기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삼간다. 살찐다. 평소 실험정신이 투철하다 보니 별의별 것을 다 만들어봤다. 당근과 양파, 호박 등 채소를 기름에 볶다가 마지막에 소고기나 참치를 조금 넣고 마저 조리한 뒤 간을 맞춰 먹어도 괜찮은 야식 겸 안주가 된다. 후추도 살짝 뿌린다. 이름이 뭔지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언젠가는 황태와 콩나물을 냄비에 깔고 물을 자작하게 부은 뒤 졸인 이른바 ‘황태콩나물찜’을 시도했는데 통째로 버린 적도 있다. 간장을 너무 많이 넣어 사정없이 짠데다 콩나물 비린내만 났다. “식당에서 파는 것들은 분명 조미료를 넣었을 것”이라는 의심으로 부실한 내 요리 실력에 알리바이를 줬다.

소주에는 국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나. 국도 왕왕 끓인다. 제일 만만한 게 미역국이다. 물에 불린 미역을 그냥 끓이다가 다진 마늘과 국간장을 조금 넣고 먹으면 된다.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미역을 물에 충분히 불려야 한다는 원초적 사실이다. 마른 미역 한 숟가락이면 미역국 한 그릇이 충분히 나온다는 걸 자꾸 까먹는다. 급한 마음에 불지도 않은 미역을 끓이다간 실패하기 쉽다. 종종 끓는 동안 미역이 계속 불어나 국보다는 미역 줄기가 냄비 대부분을 장악한다. 이쯤되면 이건 미역국이 아니라 미역찜이다. 더 큰 냄비를 꺼내어 미역을 덜고 물을 더 붓는다. 심지어 그렇게 해서 냄비를 두 번이나 옮긴 적도 있다. 사흘 내리 미역국을 먹어야 했다.

먹기 쉽잖지만 굴전만 한 소주 안주도 없다. 3주 전 일요일이다. “대부도로 망둑어 낚시하러 가자”고 어머니를 꼬였다. 어머니 고향 전남 광양에서는 ‘문저리’라고 부르는 망둑어는 썩둑썩둑 썰어서 채소와 초장에 버무려 먹으면 꼬들꼬들한 맛이 일품이다. 고춧가루를 조금만 넣고 매운탕을 끓이면 국물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2년여 전 가족과 함께 갔던 대부도 염전을 어머니와 단둘이 찾아나섰다. 여름엔 소금을 만들고 겨울엔 놀리는 염전인데 이때 아무나 가서 망둑어 낚시를 할 수 있다. 미끼로 갯지렁이와 삼겹살을 사서 대부도를 서너 시간 돌아다녔으나 도무지 길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빈손으로 집에 오기 뭣해 껍질째인 굴을 샀다. 오는 길에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시화 방조제 한가운데 도로 옆의 인도 콘크리트 바닥에 텐트를 치고 둘이서 늦은 점심을 해먹었다. 집에 와서 어머니와 굴을 깠다. 싱싱하다. 거기에다 밀가루와 계란을 넣고 잘 젓는다. 쪽파도 잘게 썰어 넣는다. 낚시 다닐 때 쓰는 버너를 방 한가운데에 켠다. 프라이팬을 걸치고 기름을 두른다. 굴이 기름에 지글거리는 동안 소주 한 병을 깐다. 굴전은 반드시 뜨거울 때 먹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식으면 비린내가 난다. 소주 한 잔을 입에 턴 뒤 프라이팬에서 막 건진 굴전을 후후 불어 먹는다. 야들야들하고 특유의 향이 듬뿍 담긴 굴전은 어금니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린다. 기가 막히다. 음식도 사람도 사연이 깃들수록 맛과 멋이 더하는 법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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