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넉넉한 바다를 익명으로 떠돌 적에 아직 그것은 등이 푸른 자유였다. 벌써 십수 년 전이 된 공지영의 뒤표지 문구다. 고등어뿐이랴. 여기 한 마리 오징어가 있다. 한때 넉넉한 바다를 익명으로 떠돌 적에 아직 그것은 열 가닥 자유였다. 고등어 양식이 없듯이 오징어 양식도 없었다. 고등어는 손을 타면 죽어버려서고 오징어는 그물을 널면 수두룩하게 걸려들어서일 것이다(인터넷 검색 결과 2008년 여름 경남 수자원연구소가 고등어의 수정란 채란·양식에, 2009년 여름 전북 부안수산사무소가 오징어 인공종묘 생산에 성공했다. 어쨌든 당신 식탁의 오징어가 대부분 자유의 몸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맥줏집의 식탁, 여기 한 마리 오징어가 접시에 놓여 있다. 자유로운 온몸은 배배 꼬여 바싹해졌다. 말랑말랑한 질감의 MSG는 바싹해진 몸을 질끈 깨물 때에야 찾아온다. 오징어는 빠지기 섭섭하지만 사랑받지 못한다. 술자리가 아니어도 그렇다. 가장 흉악한 말로는 ‘심심풀이 오징어땅콩’이 있다. 오래전 과히 풍족하지는 못한 시절 나온 말이니 오징어에 대한 괄시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함을 알 수 있다. 남기는 데도 죄책감이 별로 없다. 맥줏집을 나서다 돌아보라. 자리마다 찢어발긴 오징어 발과 몸통이 난무한다.
나는 남겨진 오징어의 구원자다. 모두 술자리를 떠나기 시작하면 나는 오징어를 싼다. 얼마 전 송년회 회식의 3차 자리에서도 나는 한 마리를 낚았다. 찢은 몸을 붙인다면 거의 한 마리가 완성될 정도로 성한 몸이다. 그것을 낚는 어부의 몸은 비틀거리고 있을지언정.
오징어를 낚는 법은 식탁 어디에나 구비된 냅킨이면 족하다. 접힌 것을 펴면 오징어 한 마리를 수월하게 담을 수 있다. 문제는 배배 꼬인 오징어 다리가 연약한 냅킨을 자주 찢는다는 것. 나는 3장의 냅킨을 앞·뒤·앞으로 한 번씩 싼다. 비슷하게 쌀 수 있는 것으로 노가리·육포 등이 있지만 언제나 냅킨 속으로 낚인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오징어다.
집에서 그놈을 다시 접시에 부리기만 하면 따로 안주가 필요 없다. 간장에 마요네즈만 뿌리면 소스 완성이다. 참기름을 살짝 한 방울 떨어뜨리면 그만이다. 초고추장에 마요네즈도 적절하다. 간장, 초고추장 하나로도 괜찮다.
우리 집에 자주 오는 놈은 집 앞 맥줏집의 ‘마린 프렌즈’다. 오징어와 땅콩이 섞인 한 접시의 이름이다. 왜 프렌즈인가. 오징어가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다. ‘마린 프렌즈’의 또 다른 친구로 ‘반건조오징어땅콩’도 메뉴판에 나란하다. 마감 뒤 집 앞에서 마시는 술은 오징어를 다 먹지 못하고 취한다. 영업 시간이 다한다. 나는 언제나 친구를 챙겨들고 집으로 향한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날, 서둘러 출근한 날 가방에서 냄새가 소록소록 솟아난다. 심한 발 냄새를 오징어 냄새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그제야 난 취한 와중에도 한 영혼을 구하려 했음을 기억한다. 한 자유로운 영혼은 누추한 발 냄새로 남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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