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벌겋다. 나무젓가락으로 허연 오징어회를 집어 눈처럼 뻘건 초장에 푹 찍는다. 새벽 3시. 내가 오징어회를 먹는 건지, 오징어회가 나를 먹는 건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면 원샷이다. 푸른 소주병이 쌓여간다.
아름다운 나의 20대는 이런 풍경으로 마무리됐다. 에 입사한 때가 27살. 편집팀 막내로 고스란히 20대를 보냈다. 편집팀 막내는 ‘차례’를 만든다. 무슨 말이냐 하면, 모든 기사가 완성돼 제목이 달린 뒤에야 ‘차례’가 완성되고, 그제야 내 일이 끝난다는 뜻이다. 마감일인 금요일, 거의 모든 기자들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퇴근한다. 새벽 2~3시는 가뿐하다. 긴 밤. 기댈 건, 야식뿐이다.
얼마나 많은 치킨과 감자튀김과 번데기와 계란말이를 먹었던가. 지난 몇 년간의 마감 풍경을 생각하니 어디선가 치킨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냄새를 따라 기억이 흐른다.
그날이 오면, 사무실 안엔 좀비들이 가득하다. 15시간이 넘도록 모니터에 붙어 있던 기자들은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니다. 눈이 가장 심하게 빨개지는 사람은 최성진 기자다. 이순혁 기자는 눈밑이 시커메진다. 초저녁부터 달린 전종휘 기자의 벌건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다. ‘만리재에서’ 마감을 앞둔 편집장은 창백하다. 그런 얼굴로 다들 힘없이 걸어다닌다. 무서운 풍경이다.
야식 타임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기본 3차다. 밤 9시, 1차 야식을 위해선 대개 누군가가 봉사한다. 회사 앞 치킨집에 가서 치킨과 맥주를 사온다. 기사가 안 써져 머리를 쥐어뜯던 이들이 좀비처럼 야식 테이블로 모여든다. 하나씩 집어들고 우물대다가 다시 좀비처럼 자리로 간다. 테이블엔 잔해만 남는다.
밤 11시, 마감을 먼저 끝낸 자들이 일명 ‘참새 스핑’을 시작한다. ‘참새가 스핑크스를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회사 앞 호프집인 ‘스핑크스’에 모인다. 마감이 끝나는 순으로 합류해 스핑크스의 낡은 의자에 앉는다. 정기구독자인 스핑 아줌마는 위로하듯 맥주 500cc를 건넨다. 배가 부른 자 노가리를, 배고픈 자 또 치킨을 뜯는다. ‘차례’를 끝낸 나와 ‘만리재에서’를 끝낸 편집장, ‘광고문안’을 다 쓴 편집팀장이 마지막으로 합류한다.
새벽 3시, 달뜬 얼굴로 그냥 갈까 뭘 먹고 갈까를 의논한다. 말하기가 귀찮으므로 오래 논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회사 밖으로 나와 찬바람이 볼을 스치는 순간, 마른 눈에 물이 돈다. 다들 갑자기 생기가 돈다. “뭐 먹을까.” 이 시간에도 기대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간혹이지만, 길 건너 동네 횟집으로 가는 날엔 각오를 해야 한다. 횟집 앞 노상 테이블에 앉아 아침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끈한 오징어회, 더 미끈한 미역국이 소주를 부른다. 새벽 5시, 첫차가 우리 옆을 지나갈 때면 이제 아침을 먹어야 하나, 최후의 생존자들은 쓰린 배를 잡고 고민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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