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쯤 난 ‘라면 다이어트’를 했다. 두 달 동안 하루 세끼를 라면으로 때웠다. 당시 내 몸무게는 75kg 정도였다.
“다이어트는 운동을 하면서 해야 한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다. 다이어트는 안 먹어야 한다. 인풋이 작아야 아웃풋도 작다. 운동해서 절대 안 빠지는 게 살이다.
“그렇다고 하루 세끼를 어떻게 라면만 먹느냐? 안 질리니?”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물론 하루 세끼 라면만 먹으면 질린다. 위에서 치미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침은 안 먹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에야 비로소 라면을 먹었기 때문이다. 라면 다이어트로 난 두 달 만에 67kg까지 뺐다. 물론 지금은 요요현상으로 예전의 그 몸으로 돌아가고 있다. 흑흑.
라면 다이어트를 할 때에도 난 가끔 야식을 했다. 다이어트하면서 무슨 야식이냐고? 물론 야식도 라면이다. 어떤 날은 아침 안 먹고, 점심 건너뛰고, 저녁도 안 먹거나 못 먹는 때가 있었다(보통 목·금요일 마감이 겹쳤을 때다). 밤 12시, 집. 가족은 곤히 잠들어 있다. 이때부터 순례자의 의식과 같이 장엄한 나의 야식 성찬식이 진행된다. 양은냄비를 준비한다. 이건 라면에 대한 예의다.
양은냄비가 3컵의 물을 머금는다. 물이 ‘보글보글’ 끓기 전에 준비를 마쳐야 한다. 3분이다. 도마에 신 김치를 올려놓는다. ‘사각사각’(난 이 단어를 참 좋아한다. 어감이 무척 경쾌하기 때문이다) 신 김치를 썬다. 꿀꺽. 침샘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신맛이다.
물이 보글보글 끓을 때부터 슬슬 바빠진다. 봉지에서 ‘쏙’ 라면을 꺼내 반으로 ‘뚝’ 쪼갠다. 면과 스프를 ‘탁탁’ 털어 넣는다. ‘화’ 하니 스프의 특유한 냄새가 콧속 깊숙이 들어온다. 면발이 꼬불꼬불 야들야들하게 익는다. 마치 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는 듯 대견스럽다.
냉장고에서 파도 꺼낸다. 파를 송송 썬다. 물론 귀찮을 땐,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기도 한다. 파에겐 미안할 뿐이다. 텁텁한 라면에 개운한 맛을 불어넣으려면 새콤달콤 풋고추도 살짝 넣어줘야 한다.
‘넣느냐, 마느냐’ 첫 번째 고민이다. 햄릿의 독백처럼 번뇌에 휩싸인다. 80kcal의 날달걀. 넣기로 결정한다. 오늘 하루 종일 굶었으니, 달걀 하나쯤이야. 달걀을 ‘탁’ 풀어 넣는다. 달걀을 휘저으면 라면 국물을 무시하는 것이다. 국물과 달걀이 서로 몸을 허용하는 것은 끝까지 막아야 한다.
후루룩. 국물 한 모금을 마신다. 캬~. 소주가 생각난다. 후루룩 쩝쩝, 사각사각, 후루룩 쩝쩝, 사각사각. 라면과 신 김치와 내가 하나가 된다. 내가 라면이 되고, 라면이 내가 된다. 편가름이 없는 세상이다.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던 그 비싸디비싼 라면, 군대에서 고참 눈치 보며 먹었던 눈물의 라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라면은 역시 혼자 먹어야 맛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국물만 남았다. 마지막 고민이다. 그냥 버리느냐, 아니면 찬밥을 말아먹느냐. 역시 쉽지 않은 결정이다. 사람은 선택의 연속에서 살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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