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생태보고서’ 코너를 만든 취지는 말 그대로 기자들의 밤 생활을 독자에게 살짝 엿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이순혁 기자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들로 시작해 음주와 가무 편을 지나 각 기자들의 달콤쌉싸래한 야식의 추억으로 이어진 이 코너는 꽤 인기를 끌었다. 반면 음주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시선을 탓하는 독자도 있었다. 그런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애초 취지에 따라 마감날마다 반복되는 편집국의 밤 풍경을 살짝 보여드리는 것으로 심야생태보고서 마지막회를 갈음하려 한다.
2010년 3월11일 밤 편집국. 밤 12시를 넘기자 편집장 P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기자들은 컴퓨터 자판을 더 열심히 두드린다. 그날 출고된 기사들에 대한 데스킹이 마무리되면 P는 더 이상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몇몇 기자에게 ‘맥주 한잔’을 유혹한다. 다음날 기사를 출고해야 하는 바쁜 기자들은 제외다. 그래서 다들 바쁜 척하는 것이다.
이날은 A와 Z와 I가 걸려든다. 단골로 걸리던 S는 밤 12시도 되기 전에 사라졌다. 아마도 집에서 부인과 함께 굴전을 부쳐먹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단골 낙점자 H도 이날 밤 12시를 넘겨 새벽 일찍(?) 귀가했다. 전날 과도한 음주를 한 탓이다. 집에서 만삭의 아내와 함께 간짬뽕으로 속풀이를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P와 A와 Z와 I는 회사 앞 호프집에 자리를 잡는다. “딱 30분만!”을 외친 뒤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P는 말을 많이 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으로, 술을 매개로 해야만 소통이 원만해지는 괴벽을 갖고 있다. 취기가 돌면 말문이 좀 트이기도 하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주고받는 수작(酬酌)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고 믿는 부류다. 또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눈과 귀가 밝아지고 생각이 자유분방해져, 대화 속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길어올리기도 한단다. 실제 의 표지를 장식했던 기사 가운데는 그렇게 태어난 것도 꽤 있다. 이날도 P는 술자리 대화를 통해 몇 가지 아이디어를 건졌다고 즐거워한다. 사무실에서는 짜증을 내며 기사 마감을 닦달하고 술집에 데려와서는 기사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P와 더불어 수작하기 즐기는 기자는 별로 없다.
그래서 Z가 솔직히 말한다. 밤 12시를 넘어 P의 어슬렁거리는 발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왜 자판을 더 두드리게 되는지, 그리고 P에게 낚인 몇몇이 자리를 뜨고 나면 남은 기자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심야생태보고서에 이런 걸 쓰란 말이에요.” P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심야생태보고서 마지막회에 쓸 이야기가 마땅히 없었던 차다.
집이 먼 A는 “집에 가서 영어 자료를 읽을 게 있다”며 먼저 가방을 챙긴다(평소에 보이지 않던 행동이다). 요즘 부쩍 외로움을 타는 듯한 Z와 I는 마구 ‘달릴’ 태세다. P는 그만 일어서고 싶은데, 좀처럼 그런 일이 없는 I가 이날따라 더 있으라고 붙잡는다. 어느덧 새벽 2시께. P를 구해준 건 그때까지 기사를 쓰다가 귀갓길에 잠시 들른 B. 그에게 바통을 넘긴 P는 뒤통수에 ‘술 마시자고 꼬드길 때는 언제고 먼저 가기냐?’라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사무실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밤을 탈고한다.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김건희 부부 21억원 영치금…“무기징역이니 천억대 부자 되겠다”

‘한국 헤비메탈 1세대’ 블랙신드롬 보컬 박영철 별세…향년 61

노벨평화상 필라이, 나치 전범재판 법정서 “법 아닌 힘의 시대 막아야”

교수님 눈물로 준비한 ‘동성혼’ 축사…“극히 평범한 결혼, 사랑의 본질은 같아”

“박수 더 받으면 트럼프와 노벨평화상 나눠야”…필라이의 ‘웃픈’ 수상소감
![[단독] ‘4천원짜리 라면’조차 없는 민자휴게소…꼴찌 수준 서비스, 대책도 없어 [단독] ‘4천원짜리 라면’조차 없는 민자휴게소…꼴찌 수준 서비스, 대책도 없어](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1007/53_17913529393551_20261007502324.jpg)
[단독] ‘4천원짜리 라면’조차 없는 민자휴게소…꼴찌 수준 서비스, 대책도 없어
![[단독] 한동훈 딸 수사 ‘국제 공조 요청’, 검찰서 자체 중단 [단독] 한동훈 딸 수사 ‘국제 공조 요청’, 검찰서 자체 중단](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1008/53_17914280735763_20261008501403.jpg)
[단독] 한동훈 딸 수사 ‘국제 공조 요청’, 검찰서 자체 중단

직계 아니면 사망진단서도 못 뗀다…‘무연고사’ 장례 절차 간소화해야

한미 정보공유 갈등 속…미 고위 “한국, 정보·방첩 분야 동맹 기준 준수해야”
![[영상] 인간 때려눕힌 183㎝ 로봇 ‘발차기’ 퍽…격투기 중단 명령 [영상] 인간 때려눕힌 183㎝ 로봇 ‘발차기’ 퍽…격투기 중단 명령](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1009/53_17915281199404_20261009501240.jpg)
[영상] 인간 때려눕힌 183㎝ 로봇 ‘발차기’ 퍽…격투기 중단 명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