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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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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짬뽕으로 집들이를

등록 2009-11-05 13:36 수정 2020-05-03 04:25
간짬뽕으로 집들이를. 사진 <한겨레21> 이순혁 기자

간짬뽕으로 집들이를. 사진 <한겨레21> 이순혁 기자

지난 10월26일 저녁 기자 몇몇이 서울 독립문 인근 우리 집을 찾았다. 결혼에 이사까지 했겠다, 겸사겸사 집 구경을 온 것이다. 그 다음 풍경은 안 봐도 비디오. 왁자지껄 웃고, 먹고, 마시고, 떠들고, 게임하고….

그런 분위기가 한참 달아오른 새벽 1시께, 새 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냄비에 물을 담아 끓였다. 그 사이 다른 쪽 프라이팬에 배추 조각들과 콩나물, 양파, 냉동새우를 한데 넣어 볶았다. 바로 옆 프라이팬에서는 만두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무려 세 개의 주방도구가 동원된 이날 야식 메뉴는 ‘간짬뽕’.

간짬뽕은 일종의 비빔면이다. 원래 조리법은 이렇다. ① 팔팔 끓는 물에 면과 건더기 스프를 넣고 조금 더 끓인다. ② 종이컵 3분의 2 정도 물을 남기고 고추장 스프를 넣는다. ③ 약한 불에 끓이면서 젓가락으로 면을 비빈다.

그런데 간짬뽕의 결정적 장점은 메뉴의 무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집에서는 ‘채소 간짬뽕’을 즐긴다. 배추 조각들과 콩나물(또는 숙주나물), 양파, 팽이버섯 등을 후라이팬에 볶다가 익은 면과 고추장 소스를 버무려 먹는 것이다. 가끔 새우와 조개, 만두 등을 더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이름이 바뀐다. ‘해물 간짬뽕’ ‘만두 간짬뽕’ ‘굴 간짬뽕’….

집들이 때 우리 집을 찾았던 이들은 옹기종기 테이블에 둘러앉아 ‘해물만두야채 간짬뽕’을 즐겼다. 아무런 대화 없이 모두들 먹는 것에 집중하던 모습이란…. 안수찬 사회팀장과 특별 게스트로 초대된 (얼마 전까지 심야생태보고서 ‘가무’ 편을 연재했던) 이정연 기자는 선 채로 앞접시에 담긴 면발을 후루룩~ 집어삼켰다.

사실 간짬뽕은 극렬 마니아팬을 거느린 유명한 ‘컬트 음식’이다. 2007년 7월 ‘국물 없는 짬뽕’ 개념으로 출시된 간짬뽕은 철저히 입소문과 누리꾼 사이의 정보 교류만을 통해 어느 날 혜성처럼 야식계에 등장했다. 간짬뽕이 뜨는 과정은 심지어 ‘집단지성’을 떠올리게 한다(실제 지난해 촛불시위를 거치며 ㅅ사 제품인 간짬뽕의 판매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처음엔 야행성 누리꾼이 결집하는 몇몇 사이트들에 ‘간짬뽕이 맛있다’는 글이 떴다. 다음엔 ‘채소를 넣으니 맛있다’는 글. 이어 양파, 콩나물, 숙주 등을 넣은 다양한 실험 결과들이 댓글로 달렸다. 이번엔 ‘해물을 넣으면 죽인다’는 글이 떴다. 온갖 교배 속에 진화는 계속됐고, 지금은 각자 취향별로 고춧가루나 김, 김치, 치즈, 심지어 다진 마늘을 곁들여 즐긴단다. 군대에서도 인기라나.

이렇듯 독특한 역사를 자랑하는 야식 메뉴이건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웬만한 슈퍼마켓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동네 슈퍼에는 거의 전무하고, 꽤 큰 마트도 두세 곳 가운데 한 곳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극렬 마니아들은 ‘득템’(아이템을 얻다), ‘레어템’(희귀한 아이템) 등 이름을 붙여가며 간짬뽕에 열광한다. 이들은 인터넷 구매로 활로를 찾았다는데, 나는 간짬뽕 파는 마트를 기억해뒀다가 일부러 찾아가 사는 편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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