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998년을 사는 걸까, 2013년을 사는 걸까.
1998년 기사는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1998년을 사는 우리들을 보여준다. 태초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가 있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부처님 손바닥, 다시는 넘지 못할 손금이 마구 그어지고 있었다. ‘더 무시무시해지는 고질라! 5대 재벌’(7월9일 발행 제215호)은 “국민경제 점유율 70%까지 육박”하며 위기를 틈타 몸집을 키웠고, 정리해고 칼바람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삭발 사진은 끊일 줄 몰랐다. 양극화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시절은 암울했지만, 문화는 풍요로워김대중의 시대였다. 1998년 첫 호는 ‘김대중의 시대!’로 시작한다. 반세기 만의 정권 교체, 그러나 1998년 내내 이어진 김대중 당시 대통령 얼굴의 표지는 갈수록 실망으로 변한다. 김대중 정부의 조각이 드러나자 ‘개혁이 의심스럽다’는 표지가 나오고, 김대중의 혁명은 ‘나홀로 개혁’이 되고, 취임 100일을 맞아 ‘DJT의 전쟁과 평화’가 시작됐다. 마침내 김대중·김영삼 얼굴을 합성한 표지의 ‘왜 YS처럼 하는가’가 나온다. 이렇게 DJ 정권에 실망하는 데 8개월이면 충분했다. 양심수 출신 대통령이 석방하지 않는 양심수 명단에는 백태웅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중앙위원도 있었다.
김대중의 시대였지만, 민주노총의 시대였다. 1998년 발행일로 나온 1997년 송년호는 ‘1997년을 만든 사람들’ 1위로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뽑았다. 한국의 ‘민주’가 역사적 효력을 다한 1997년 체제, ‘노동’이 이슈의 중심이 되었다. 은 노사정 위원회로 상징되는 사회적 타협에 관심을 가졌는데, ‘계급 대타협 이제부터 시작이다’로 시작해 ‘재벌, 노동자의 목을 노린다’ ‘끝내 붙고야 마는가, DJ vs 노동자’로 이어지는 흐름은 실패한 타협의 궤적을 보여준다.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정리해고 합의에 강하게 반대하는 이갑용씨가 당선됐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의 공세에 밀린 파국적 전성기에 가까웠다.
시절은 암울했지만, 문화는 풍요로웠다. 바야흐로 30년 늦게 도착한 68혁명의 시대였다. 성문화는 개방되고, 성소수자가 조명받았다. 페미니즘 기사를 써도 ‘레즈비언 페미니스트’가 소개됐다. ‘소수를 위한 이상한 영화’라는 제목을 달고 오래된 컬트영화 가 한반도에 도착했다. 오늘의 예술가들은 걸작을 쏟아내고 있었고, 어제의 걸작은 수입되고 있었다. 은 급진의 시대를 예민하게 담았다. 메이데이에는 ‘노동시간 단축’ 같은 주제를 다뤘고, 연말에는 ‘그런 21세기는 싫다’는 신세대의 반란을 담았다. ‘서울대에 돌을 던져라’는 학벌주의 비판은 이제는 말하지 않는 급진적 과거가 되었다.
1998년의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더구나 남북은 화해하고 있었다. 하반기를 여는 표지의 제목은 ‘금강산 프로젝트!’. 빨간색 콤플렉스, 성과 북한에 대한 금기가 깨지고 마침내 한반도의 시계추가 지구적 표준에 근접하고 있었다. 이제 지루한 도돌이표 시간의 시작이다. 역사가 15년을 주기로 반복된다, ‘비틀즈 코드’를 반복한다. 1998년에 전교조 합법화가 논란이었고, 허성욱의 죽음을 계기로 들국화가 재결성됐고, 강기훈의 유서대필 재심이 제기됐으며, ‘통진당 딱지’의 선배인 ‘한총련 딱지’가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1998년의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다. 다만, 그날의 강기훈은 오늘의 강기훈처럼 아프지 않았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개인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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