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2005년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한 해였다. 우리는 2004년 12월 말 타이 푸껫 해안에 들이닥친 잔혹한 파도의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고, 그해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해 뉴올리언스가 물에 잠기는 걸 바라봐야만 했다. 10월 파키스탄 대지진으로 9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시민들이 성난 자연을 마주했던 한 해였다면, 한국에서 우리는 자연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한 과학자의 스캔들로 한 해를 매듭지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는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이었으나 결국 거짓말 파문으로 마무리됐다. 처절한 상처와 상념으로 시작되고 저물었던 2005년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정희로 통권을 만든 546호</font></font>2004년 12월26일 푸껫에 쓰나미가 닥쳤다. 안다만해를 낀 아시아 전역을 통틀어 무려 40만여 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지역사회가 붕괴됐다. 2005년 1월11일치 제542호는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가 전해온 쓰나미가 닥친 타이 푸껫 현장 르포를 다뤘다. 오랜 기간 동남아 전선을 누볐던 기자는 늘어선 주검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토록 흉측하게 일그러진 표정들은 지금까지 어디에서 본 적이 없다”고 썼다. 쓰나미에 관한 기록은 제550호 ‘쓰나미 그 뒤’, 제569호 ‘푸껫 귀신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에서도 이어진다. 재난의 공포를 잊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만났다.
현장성 있는 기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오래됐지만 여전한 과거로 돌아가는 기사도 있었다. 박정희에 관한 이야기다. 2월15일치 제546호는 박정희 시대를 재조명하는 내용으로 통권을 제작했다. 영화 , 한-일 협정 및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에 대한 정부 비밀문서 공개로 박정희의 이름이 다시 호명되던 중이었다. “박정희는 올바로 평가되지 않았고 그의 시대 또한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박정희를 정면으로 마주 봤다. 박정희 시대와 그 이후 소멸하거나 부활한 박정희의 ‘망령’,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와 김재규 쪽 변호사를 통해 바라본 ‘인간 박정희’, 혼분식 장려 정책, 의문사 사건, 베트남전 참전 등 한 인물로 대신 말해지는 엄혹했던 시절을 촘촘하게 불러왔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내가 누구의 딸인지 잊어달라”며 자신의 내력을 의식하지 말 것을 당부했는데 지금 우리는 ‘유신의 추억’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읽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종이매체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여전 </font></font>당시 창간 11돌을 맞아 동아시아 시사주간지를 살펴본 기사는 창간 20주년과 1000호 발간을 눈앞에 둔 지금 다시 눈에 띄는 기사다. 그때도 은 인터넷 환경 속에서 종이매체의 방향성을 고민했다. 이는 매주 잡지를 손에 쥐는 독자들의 고민이기도 했을 것이다. 일본 시사주간지 편집장 우루마 가즈모토와 중국 시사주간지 펑웨이샹 편집장은 잡지를 손에 쥐고서야 맛볼 수 있는 심층 정보와 분석력을 잡지의 장점으로 꼽았고, 그럼에도 독자에게 더 빠르고 깊이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5월21일치 제561호에서는 ‘종이잡지가 사랑스러운 이유’를 각계 인사 21명에게 물었는데, 2013년 다시 독자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다. 여전히 잡지가 매력적인지, 그때보다 더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인데도 왜 매주 한 권의 종이잡지가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지. 푸켓 쓰나미 기사처럼 가볼 수 없는 지역을 생생하게 다루는 현장성 때문인지, 박정희 통권처럼 지금, 이 순간 호출할 수밖에 없는 주제에 대한 두터운 정보의 가공과 분석 때문인지. 그리고 이 질문에 여전히 독자에게 깊숙이 다가가고픈 의 고민이 겹친다. 1000호쯤 되면 그 답을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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