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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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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향해 써내려간 빼곡한 기록

특권층의 부산저축은행 한밤 인출
선관위 디도스 공격 금전 거래 등 굵직한 비리 특종 보도했던 2011년의 <한겨레21>
등록 2014-01-29 17:03 수정 2020-05-03 04:27
10·26 재보선 당시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과 관련해 2011년 12월15일 한 검찰 관계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최구식 당시 한나라당 의원 사무실에서 압수수색한 물품을 옮기고 있다.한겨레 강창광

10·26 재보선 당시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과 관련해 2011년 12월15일 한 검찰 관계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최구식 당시 한나라당 의원 사무실에서 압수수색한 물품을 옮기고 있다.한겨레 강창광

그것은 분명 파국을 암시하는 전조였다. 이 기록한 2011년에는 ‘탐욕’이 만든 파열음이 가득했다. 임기 절반을 훌쩍 넘긴 이명박 정부의 사회 지도층들은 저축은행이 문을 닫기 전날 거액의 돈을 인출했다. 탐욕이 만든 파국은 한반도에만 머물지 않았다. 일본 동부를 뒤흔든 대지진은 체르노빌 이후 인류사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로 이어졌다. 미국 뉴욕에서는 자본의 탐욕에 항의하는 ‘점거하라’(Occupy) 시위가 일어나 전세계로 퍼졌다.

캄보디아 아동노동 고발한 기사에 기시감

은 새해 초부터 ‘2011 만인보’ 꼭지를 시작하며 희망과 연대라는 화두를 던지려 했다. “근사하고 잘난 사람이 아니면 뉴스에 얼굴도 내밀기 어려운 시대”에 이름 없는 모든 사람들의 생애사를 구성해보자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첫 주인공은 전북 전주의 국밥집 부부였다(제846호). ‘벼랑 끝 15명의 졸업 희망가’라는 제목이 달린 제846호 표지이야기는 제도 교육에서 벗어난 ‘경계의 아이들’인 10대들의 삶과 고민을 조명한 기획 연재의 시작이었다. 이전 해부터 이어져온 ‘생명 OTL’ 기획도 응급실 체험 르포와 건강 생애사 비교 조사 등 다양한 기법의 취재를 통해 거대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지면에 펼쳐진 사건들은 현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특히 2011년은 역사에서 굵직한 특종이 여러 차례 지면을 장식한 시기였다. 제858호 표지이야기(‘돈을 갖고 튀어라!’)가 그랬다. 영업정지를 앞둔 부산상호저축은행에서 사회 지도층인 VIP 고객 100명이 한밤에 돈을 인출해갔다는 보도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연이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후속 보도는 저축은행에서 정·관계 로비 자금을 건넸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직원을 칼로 찌르는 피죤 회장’(제872호 줌인)의 황당하지만 사실인 이야기와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에서 금전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한 제891호 표지이야기(‘청와대 지시로 경찰 수뇌부가 덮었다’)는 집요한 취재의 결과물이었다.

지금 이 순간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보도도 있었다.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벽돌을 사용해 건물을 올리고 있는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국 건설업체의 이야기(제854호 표지이야기 ‘아동노동 우리도 무죄는 아니다’)는 얼마 전 벌어진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시위 유혈 진압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기사의 주인공이던 캄보디아의 12살 포첸 토아의 누이들은 프놈펜에 있는 한국 업체의 봉제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이들은 어쩌면 얼마 전 취재를 위해 프놈펜을 찾았던 기자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국세청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걸다

다양한 취재를 위한 새로운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부활시켜 채권 추심업자 체험기를 생생하게 들려준 기사(제865호 표지이야기 ‘기자 빚 받는 해결사 되다’)가 그랬다. 유성기업의 밤샘 작업 문제가 불거지자, 편의점 야간노동을 직접 체험하며 그 실상을 좀더 현실적으로 그리려는 시도도 있었다. 사회적 논쟁에 화두를 던지기 위해 이 직접 뛰어들어 국세청을 상대로 종교인 소득세 납부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청구소송(제878호 표지이야기 ‘면세천국 납세지옥’)을 진행한 기획도 다른 매체에서는 보기 힘든 시도였다.

어수선했던 한 해의 끝에도 파열음은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가 낳은 종합편성채널이 문을 열었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돌연 사망했다. 의 숨 돌릴 틈 없던 한 해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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