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안녕하지 못했을 뿐이다.
2012년, 고대 마야문명이 세상의 끝이라고 예언한 해가 별일 없이 지나고 2013년이 왔다. 다만 세상이 뜨거운 폐허가 됐을 뿐이다. 해를 넘기며 지속된 사건들은 대부분 끝날 줄 모르고 지면을 장식했다. 경남 밀양 송전탑 문제가 그랬고, 끝나지 않는 대선 의혹이 그랬으며, 결국 껍데기만 남은 채 증발해버린 대선 공약들이 그랬다. 2013년 첫 을 펴면 보이는 대선 인증 사진에다 붙인 연두색의 ‘힘내세요’라는 글자가 시큰거렸다. ‘힘내세요’라는 말은 늘 힘을 내야 할 상황을 전제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는 새해 첫 만리재에서의 인사가 무색한 한 해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허공에서 하염없이 나부낀 농성자들</font></font>연초부터 은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명과 함께했다(제943호). 그것은 하나의 전조였다. 2013년 한 해 동안 은 꼬리를 무는 약자들의 비명을 들었다. 3월14일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6명의 사망자와 11명의 중경상자를 낸 폭발 사고에 대한 기사를 시작으로(제956호) 효율성을 이유로 폐원된 진주의료원의 남겨진 환자들(제958호), 울산 현대자동차~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서울 혜화동성당 종탑까지 이어지는 6명의 고공농성자들까지 하늘이든 땅이든 비명은 가리지 않고 울려퍼졌다. 실은 새마저 하늘에서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하늘에 살아요, 새는 아니랍니다’라는 표지는 더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제960호). 하늘은 다만 사람이 붙인 허공의 다른 이름일 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허공에서 하염없이 나부껴야 했다. 2012년 이치우씨의 죽음으로 잠시 공사를 멈췄다가 기어코 두 달 만에 재개된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 주민들의 ‘오지 말라카이! 니들 오면 내 죽어삔다!’(제981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 이 밖에도 ‘배제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실으려 노력해왔다. 서울 마포의 성소수자들을 위한 보금자리, 용산 해방촌, 동자동 쪽방촌을 아우르는 ‘우리가 몰랐던 동네’ 기획은 자칫 눈에 띄지 않아 잊힐 권리조차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망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제980호) 역시 그랬다. 반대로 누군가가 사람들의 눈에서 배제시키려 했던 것들을 고발하는 기사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왜 세습에 분노하지 않는가’(제944호)와 4대강에 책임이 있는 170명을 인명사전식으로 꾸린 기사(제947호)가 그랬다.
2013년은 ‘안녕들 하십니까’(제992호)라는 인사말로 마무리됐다. ‘힘내세요’라는 말이 힘든 상황을 전제로 하듯 안녕치 못한 시대를 전제로 한 자조적 인사였다. “미치지 않는 것보다 지치지 않는 것이 더 힘들었다”던 김정아 인권중심 사람 사무처장(제983호)의 말을 곱씹게 된다. 안녕이라는 말 그대로 아무 탈 없이 편안한 상태가 여전히 우리에게 요원한 일이라면, 2014년 에도 그것을 보는 독자에게도 중요한 것은 안녕한 순간이 오는 그날까지 “미치지 않고 지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font size="3"><font color="#008ABD">누구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font></font>이렇게 20년 리뷰의 마지막 해는 저물었다. 1994년에서 2013년까지, 현실은 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여기에 우리는 여전히 살아야 하고, 누구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해는 시작됐다. 의 새로운 20년도 시작됐다.
김자현 인턴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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