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고 나서 자주 돌아보는 문장이 있다. “저널리즘은 휴머니티에 기여할 때만 의미 있다.” 어느 저널리즘의 성인이 한 말은 아니고, 미국 드라마 속 앵커 역을 맡은 주인공이 던진 말이다. 바꿔 말해 어떤 특종도, 인류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품격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별 의미 없다는 뜻이다. 특종을 위한 특종, 매출을 위한 단독 기사가 난무하는 시대이고 보니 자주 곱씹게 된다.
장애인의 성 문제 처음으로 제기2010년 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무르익은 신자유주의와 간단없는 국가폭력에 희생당하는 개인의 얼굴들을 클로즈업했다. 권력자나 유식자의 말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힘없는 이들의 말이 기록돼 힘을 얻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너무 힘들다”(제803호 ‘대한민국 영구빈곤 보고서’)는 말은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가난’에 대한 수사였다. 영구임대아파트 121가구를 심층 방문조사하지 않았다면 “가난하게 태어났으며 여전히 가난하고 앞으로도 가난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의 절망이 그처럼 생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난이 중첩한 현장을 보태거나 꾸미지 않고, 그들 자신의 말을 빌려 담담하게 적었다.
희생양 또는 ‘개새끼’로 객체화됐던 20대 대학생들도 스스로 말할 권리를 얻었다. 전국 10개 대학 학생기자들과 공동으로 기획한 ‘대학생 1천명 생활·정치이념 조사’(제803호 표지이야기 ‘보통대학 경쟁학과 불행학번’)에서 학생기자들은 스스로 20대들의 이야기를 취재해 실었다. 은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숫자나 통계를 통해야만 어떤 불행이 전달되는 사회는 절망스럽다. …대학생 당사자가 제 눈과 귀로 사연을 캐고 직접 기사까지 쓰도록 한 까닭이다. 그들이 이 사회에 직접 붙이는 대자보다.”
이어 이명박 정부가 호들갑스럽게 홍보했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두고는 비정규직 노동자, 실직 가장, 키코(KIKO) 피해자, 이주노동자 등 ‘국가대표 서민’ 4명의 삶에 비춰 ‘단군 이래 최대 이벤트’의 허상을 살폈다(제833호 ‘웰컴 투 명박랜드’). 연말이면 늘 나오는 ‘날치기 예산’ 기사도 달랐다. 날치기 이후 벌어질 일상의 곤궁한 모습들을 결식아동·대학생·장애인 등의 삶을 통해 ‘국회 구태’의 피해자가 결국 시민임을 드러냈다(제841호 ‘메리배드크리스마스’).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던 이들의 뒷모습을 진지하게 응시한 시도들도 있었다. 지적장애·뇌성마비·척수손상 등 성적 소외가 큰 장애인 224명을 심층조사한 뒤 작성한 ‘장애인 킨제이보고서’(제829호)는 장애인의 성 문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파헤친 기사였다. 70m 높이의 타워크레인에 올라 시작한 ‘우리 곁에 오지’ 기획에서는 이후 청소노동자, 대리운전기사 등을 만나며 우리 사회의 뒷골목을 조명했다. 그리하여 그해 말미에는 죽음을 맞는 빈민들의 침상 곁에도 이 있었다(제840호 ‘생명 OTL-빈곤과 죽음의 이중나선’).
‘2차원 고밀도 바코드’ 도입시각장애인을 위한 ‘2차원 고밀도 바코드’를 도입한 것도 이때다. 2010년 4월12일 발행된 제806호부터 ‘인쇄물 음성변환 출력기’로 스캐닝하면 곧바로 해당 페이지의 제목과 본문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게 됐다. ‘휴머니티’를 일궈가려는 의 시도는 또한 실천적이었던 셈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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