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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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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OTL’의 원형이 여기 있다

<한겨레21>의 ‘전통’된 기자 체험 기사의 시작, ‘기자가 뛰어든 세상’
삶에 밀착된 기사로 21세기에 더 새로워지다
등록 2013-11-23 16:13 수정 2020-05-03 04:27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부딪힌 다음 폭발하고 있다. 9·11 테러로 약 3천 명이 숨졌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 전쟁을감행했다.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부딪힌 다음 폭발하고 있다. 9·11 테러로 약 3천 명이 숨졌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 전쟁을감행했다.

‘21’이라는 숫자는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2001년, 이젠 진짜 빼도 박도 못할 21세기였다. 과학자들은 ‘마음의 달력’ 2000년이 아니라, 2001년을 새 천년의 시작이라고 했다. ‘새로운 저널리즘’을 표방하며 21이란 숫자를 달고 나왔던 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잡지 이름은 낡아가고 있을지언정, 잡지는 새로워져야만 했다. 2001년은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5차례나 다룬 족벌언론 비판

“21세기 첫 전쟁의 먹구름이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9·11 테러 직후 표지이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역사상 첫 ‘초대형 특집호’(제377호)의 탄생이었다. 장장 50쪽이 ‘분노의 에스컬레이션’이 된 전쟁 이야기로 채워졌다.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 전문기자들이 오사마 빈라덴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보복’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웅숭깊은 시선으로 분석했다. 초대형 특집이라는 새로운 시도는,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박정희 특집 등으로 변주된다.

‘기자가 뛰어든 세상’이라는 연재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건의 현장에서 항상 관찰자이자 감시자”였던 기자들이 “참여자이며 직접 체험자”로서 나섰다. 김창석 기자는 부부의 인권 출산 체험기로 첫 번째 문(제342호)을 열고 그다음에는 두 달간의 육아휴직 경험담을 기사로 만들어냈다. 독립영화 배우,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 오징어잡이 배 타기, 보육교사, 지하철역 신문가판대 보조판매원, 대리운전 기사, 주차단속원, 롯데월드 공연팀의 ‘캔디맨’ 등 기자들의 좌충우돌 체험이 이어졌다.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이 지면에 ‘감초’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같은 기사 방식은 노동 OTL, 생명 OTL, 취업 OTL 등 어느새 의 전통이 됐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라는 걸출한 연재물이 첫선을 보인 것(제342호)도 2001년이었다. 하종강과 권은정이 격주로 인터뷰 기사를 쓴 ‘휴먼포엠’은, 요즘 이명수와 정연순이 격주로 연재 중인 인터뷰를 떠올리게 한다.

삶에 밀착된 표지 기사들이 주는 울림은 컸다. ‘당신의 아이는 누가 키워줍니까’(제345호), ‘장모시대-왜 사위들은 처가살이를 선택하는가’(제378호)는 달라진 세태를 생생하게 보여줬고, ‘주말 연휴를 디자인하라’(제380호·사진)는 주 5일제 시행을 앞둔 즐거운 훈수였다. ‘남자의 눈물’ ‘노년의 로맨스’ 등은 기존 시사주간지의 딱딱함과 무거움을 덜어냈다.

족벌언론 비판은 표지를 5차례나 장식했다. 독자편집위원회에서도 “너무 다뤘다” “더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을 정도다.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망하는 신문사 나온다’(제365호)고 예고했으나, 2013년 족벌언론은 종편으로 되레 흥했다. ‘사주로부터의 해방을!’(제366호), ‘조선과는 다른 그대, 동아일보여’(제369호)라며 족벌언론 내부의 각성을 촉구했지만, 뒤돌아보면 ‘순진한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12년 전 자신의 비판 부끄럽지 않나

정치·경제적으로도 ‘미래의 주역’들이 서서히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재용씨는 삼성전자 기획담당 임원(상무보)으로 삼성 왕국에 입성했다(제347호·제353호). 은 그해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을 두 차례나 인터뷰했다. 2월엔 언론개혁을 주제로, 7월엔 ‘노무현의 질주, 가능성과 한계’를 말했다. 2001년 마지막 호에선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를 인터뷰했다. “이회창 총재는 제왕적 총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자꾸 극한 대립을 해나가서 어떻게 되겠느냐. 화합과 화해의 리더십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반면교사는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년 전 자신의 비판이 낯부끄럽지 않을까.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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