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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표현 엇갈린 해석, 기사회생 ‘어대명’

백현동 용도변경 등 발언, 집유에서 무죄로 뒤집혀… ‘허위사실’ 적용 어디까지?
등록 2025-03-29 15:01 수정 2025-03-30 17:5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5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항소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5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항소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이고, 재판장님 감사합니다!” “세상 일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2025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 각각 정문과 후문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과 반대파들 모두가 놀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2심이 1심의 유죄 판단(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은 판결 직후 “이재명”을 외치며 환호했고 반대파는 “법원이 썩었다”며 반발했다.

환호도 비난도 컸던 이유는 그만큼 이 대표에게 ‘결정적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무죄 판결은 조기 대선이 열릴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재명’에 따라붙던 단어 ‘사법 리스크’를 당분간 잦아들게 만들었다. 이 재판 외에도 이 대표는 4건의 재판을 더 받고 있지만 1심 무죄가 선고된 ‘위증교사 의혹’ 사건 외에 나머지 사건은 대선 전 1심 선고가 날 가능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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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 사건을 두고 1·2심의 판결이 이토록 달랐던 이유가 뭘까. 한겨레21이 판결 내용을 꼼꼼히 뜯어봤다.

선거 투명성 목표로 하나 악용 여지도 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는 표현의 자유를 일부 제한해서라도 선거 제도의 투명성을 유지하고자 만들어졌다. 선거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후보자 정보가 곡해 없이 투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후보자의 당선 혹은 낙선을 목적으로 후보자에게 유리 또는 불리하도록 허위의 사실을 공표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좋은 취지와 달리 선거 후보자의 허위 발언을 광범위하게 다루는 이 법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표적 기소에 활용되기 쉽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한국의 공직선거법 자체가 너무나 광범위하고 다양한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선택적 정의’가 발동될 가능성이 크다”며 “다음 정권에서는 가장 먼저 ‘이 정도 일로 기소하지 말고 정치로 해결하자, 검찰이 손 못 대게 하자’는 경계선을 정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처장 몰랐다” 발언은 1·2심 모두 무죄

이번 사건은 2021년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이재명 대표가 과거 성남시장 시절 행보에 관해 해명하는 발언에서 비롯했다. 대장동 개발 핵심 실무자인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2021년 12월 검찰 조사 중 목숨을 끊자 , 당시 대장동 사업 결재권자였던 이 대표로 책임론이 쏠렸다. 이에 이 대표는 2021년 12월22~29일 방송에서 ‘시장 재직 시절엔 김 전 처장을 몰랐다’고 4차례 해명했다. 또 이 대표는 자연녹지였던 백현동 부지를 성남시가 2015년 아파트 건설 가능 지역으로 바꿔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백현동 부지 용도변경 의혹)에 대해서도 경기도지사였던 2021년 10월 “(매각에 협조하라는) 국토부 압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용도변경한 것”이라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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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이 대표의 발언이 둘 다 허위라고 봤다.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발언의 경우 김 전 처장이 2015년 “시장님(이 대표)과 골프 쳤다”며 딸에게 자랑한 영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현동 부지 개발도 국토부 압박 때문이 아니라 성남시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봤다.

2025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자들이 모여있다. 신다은 기자

2025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자들이 모여있다. 신다은 기자


‘김 전 처장을 모른다’는 발언은 1심과 2심 모두 무죄 판결이 났다. 당시 이 대표는 김 전 처장에 대해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가 경기도지사 때 통화하며 알게 됐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2015년 시장 자격으로 간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출장에서 김 전 처장과 함께 골프를 친 사실이 있다.

이를 두고 2심 재판부는 이 대표 발언의 요지가 ‘김 전 처장을 시장 재직 시절에 몰랐다’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김씨와 골프를 안 쳤다고까지 허위 공표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라디오 진행자의 질문이나 이 대표의 답 어디에도 ‘교류행위’의 예시나 골프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는 얘기다. 1심 재판부의 경우 ‘몰랐다’는 발언 자체는 허위라고 봤지만, 그렇다 해도 행위가 아닌 인식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 역시 특정 인물을 알고 모르고는 행위가 아닌 인식의 영역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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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서 뒤집힌 ‘골프 발언’

2심에서 뒤집힌 건 나머지 쟁점이다. 재판부는 이른바 ‘골프 발언’도 무죄를 선고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와 김 전 처장 등 4명이 국외 출장 중 함께 찍은 사진을 2022 년 12월23일에 공개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4명 사진을 찍어가지고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단체 사진 중 일부를 떼내가지고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 라고 말했다.

1심에선 이 발언이 유죄였다. 박 의원이 사진을 잘라낸 건 맞지만 해당 발언은 김씨와 아예 골프를 친 사실이 없는 것처럼 유권자에게 전달될 여지가 크다고 봤다. 반면 2심은 그 발언이 ‘김 전 처장을 몰랐다’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여러 논거 중 하나이며, 독자적 의미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검찰 주장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패널이 질문에서 ‘(김 전 처장과) 골프 친 거냐’고 묻지 않았는데 ‘사진에서는 친 적 없고 다른 데선 친 적 있다’고 말하지 않은 걸 잘못이라고 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조작이죠”라는 말도 2심 재판부는 “사진 원본은 10명이 한꺼번에 포즈 잡고 찍은 것이므로 골프 쳤다는 자료로 볼 수 없”다며 “조작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국토부 협박’ 발언 무죄로

백현동 부지 관련 발언에 대해서도 2심 재판부는 이 대표의 발언이 ‘사실’이 아닌 ‘의견 표명’이라고 판단했다. 해당 발언은 2021년 10월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백현동 부지의 용도변경을 누가 요청했냐’는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가 답한 것이다. 이 대표는 “국토부가 요청해서 한 일이고, 공공기관이전특별법에 따라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답했다. 또 “공공기관이전특별법 43조 6항(에 따라) 국토부 장관이 도시관리계획 변경 요구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반영해야 된다. 의무조항을 만들어놨다. 이거를 가지고 ‘만약에 안 해주면 직무유기 문제 삼겠다’고 협박을 해서”라고 답했다.

1심은 두 발언 모두 유죄, 즉 허위사실이라고 봤다. 백현동 부지 건은 공공기관이전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국토부가 공문으로 보냈고, 구체적인 지역도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1심은 성남시가 여러 제안을 검토하며 스스로 용도변경을 결정했지 국토부 압박 때문이 아니라고 봤다. 

2025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반대하는 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2025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반대하는 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반면 2심은 성남시가 ‘어쩔 수 없이’ 국토부 요구에 응한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국토부가) 전체가 아닌 성남시를 특정해 3차례 보냈는데 모두 법률상 근거가 명시됐고 그 내용 역시 독촉하는 취지였다”며 “용도를 최종 변경하게 된 원인이 국토부 요구라고 봄이 타당하고, 법률상 요구와 상관없이 (성남시가) 임의적으로 검토 변경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1·2심이 확연히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협박’이란 표현도 1심은 국토부 공문이 ‘협박’이 아니라고 본 반면 2심 재판부는 국토부로부터 받은 상당한 정도의 압박을 과장한다고 볼 수 있으나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서 허위사실을 판단할 땐 “진실에 부합하지 않은 사항(허위)으로서 선거인으로 하여금 후보자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정도로 구체성을 가진 것이면 충분”하되, “단순한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 표현에 불과한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2018도10447 판결) 즉 허위사실 공표는 구체성을 띤 행위여야 하고, 그 행위도 단순 의견표현인지 사실주장인지는 사건마다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이처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사건은 치열한 법리 공방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정치인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라는 주장과 후보자 검증에 투명성을 담보하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말의 진위를 세세히 따져야 하는데다 벌금 100만원 이상이면 당선무효까지 되니 재판부도 신중해진다. 이 대표의 2018년 ‘형 강제 입원시키려 한 적 없다’는 발언도 1심 무죄, 2심 벌금 300만원(당선무효형), 3심 무죄로 뒤집혔다.

조기 대선 현실화 땐 ‘결정적 판결’

법조계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 사안은 유죄도, 무죄도 가능한 사안이었다. 이렇게 의견이 갈리면 애초에 검찰이 기소를 더 신중히 해야 했고 정적에 대한 탄압의 성격이 없다고 할 수 없다”(한상규 아주대 교수),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면 모를까 낙선한 사람에 대해, 후보 시절도 아니고 성남시장 시절 일을 부각해 공소제기하는 건 좀 무리했다고 본다”(양홍석 변호사) 등이다. “1심과 2심이 갈린 부분의 핵심은 어떠한 발언이 의견이냐 사실이냐 하는 것인데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법 적용 범위를 좁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홍성수 교수)는 지적도 있었다.

반면 “(이 대표의) ‘국토부 협박’ ‘직무유기’ 발언까지 의견 표명이라고 본 것은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차진아 고려대 교수), “후보자의 말이 허위사실로 인정되면 처벌하는 게 선거 공정성의 원칙인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냐’고 하다 보면 예외가 점점 늘 수 있다”(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반응도 있었다.

2025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경찰이 무력 충돌과 위험물 투척에 대비해 도구를 펼치고 있다. 신다은 기자

2025년 3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경찰이 무력 충돌과 위험물 투척에 대비해 도구를 펼치고 있다. 신다은 기자


당장의 사법 리스크를 덜어낸 이 대표와 민주당은 화색을 띠었다. 이 대표는 “진실과 정의에 기반해 제대로 된 판결을 해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조승래 민주당 대변인은 “윤석열 검찰의 정치보복 수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필귀정의 판결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반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법관이라면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며 반발했다.

이 대표는 현재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관련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밖에 성남에프시(FC) 불법 후원금 의혹과 대북 송금 의혹,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위증교사 혐의로도 기소된 상태다. 선고가 난 사건은 위증교사(1심 무죄)와 공직선거법 위반(1심 유죄, 2심 무죄)뿐이다. 나머지 사건은 선고일이 멀다. 이 때문에 이 대표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파면 결정이 날 경우 치러질 조기 대선에 유력한 대선 후보로 장애물 없이 임할 수 있게 됐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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