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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수능생이었다. 매형이 처가에 놓고 간 를 통해 ‘의식화 세례’를 받던 중 한겨레신문사가 주간지를 창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궁리 끝에 제호 공모에도 응모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말도 안 되는 제호를 엽서에 적어 보냈다. 한겨레라는 이름에 맞게 순한글 제호였다. 결과는 꽝. 그게 나와 의 첫 인연이었다.
우연이었다, 매형의 대납으로 창간호(1994년 3월24일치)부터 을 정기구독하게 된 것은. 세상을 뒤흔든 창간호 특집 기사 ‘김현철은 새 정부 최후의 성역인가’를 펼쳤다. 김영삼 문민정부의 막후 실세로 ‘소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국정 개입을 비판한 기사였다. 당시 현철씨가 문민정부의 핵심 인사권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는 설들이 간간이 불거졌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취재·보도하는 언론은 없었다. ‘민자당 총재 자제분’ 또는 ‘현 정권 실세 김씨’. 다른 언론들이 그를 이렇게 부르던 때였다.
1994년 10월에 일어난 서울 성수대교 붕괴 사고.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한국형 개발독재의 상징이었다.옆은 창간호 표지.
창간호 이후에도 은 △제8호 ‘대통령 아들 김현철은 돈을 받았는가’(1994년 5월12일치) △제9호 ‘추적 김현철 인맥과 파워’(1994년 5월19일치) 등을 통해 ‘황태자’에 대한 성역 없는 비판을 이어갔다. 이에 김현철씨는 거액이 걸린 소송으로 대응했다. 3년 남짓 지난 1997년 3월, 마침내 김현철씨가 YTN 사장 인사에 개입한 물증이 드러났다. 그는 결국 ‘소통령’ 자리에서 ‘감옥’으로 걸어 내려왔다. 소송은 취하되었다.
성역 없는 보도의 펜끝은 노동계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노동자 위에 군림하는 한국의 노동귀족을 고발한 제7~8호는 민주노총 발족과 기존 한국노총 개혁선언의 계기가 됐다. 교육부 장관의 시정 약속을 끌어낸 ‘노예처럼 팔려가는 공고생들’(제29호)은 또 어떠한가. 이주노동자 인권유린을 다룬 제23호 ’히말라야 농부의 잘린 손 잘린 꿈’은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일깨웠다.
창간과 동시에 일으킨 의 이같은 파란이 비단 내용적 측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은 시사주간지 사상 처음으로 완전 컴퓨터 출판(DPT) 체제를 갖추었다. 또 뉴미디어 시대 독자들의 멀티미디어적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 과감한 컴퓨터그래픽과 순발력 있고 유연한 사진, 다양하고 상상력이 충만한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치해 ‘읽는 주간지’에서 ‘보는 주간지’로 변화를 선도했다. 그리고 이내 ‘기준’이 되었다. 당차고 혁신적인 새 언론에 독자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창간 1년도 안 돼 가판 판매부수 1위, 판매율 1위를 꿰찼다. 그해의 히트상품 목록에 오르내릴 만했다.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시작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와 가 히트를 쳤으며, 김광석 4집이 발매되고 최영미의 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1994년은, 한편으로 김일성 주석 사망,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유람선 화재, 지존파 사건 등으로 들끓은 사건·사고의 해였다. 그 문제적 해에 이 우리 곁으로 왔다. 하나의 사건으로.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우연과 필연으로 그 매체에서 밥을 벌고 있는 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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