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얼마 전 노동조합을 대표해 한 행사에 참석했다. 현장에서 찍힌 내 사진이 기사에 실렸다. 나는 자랑할 요량으로 아내에게 해당 기사를 공유했다. 아내는 기사를 보자마자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아뿔싸. 내 외모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사진 속 머리숱이 휑해 보인다고 했다.
최근 들어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는 말도 종종 듣던 참이었다. 어디 가서 외모를 내세울 정도는 아니어도 그렇다고 창피해할 정도의 얼굴도 아니라고 믿고 살아왔다. 그런데 아내의 탄성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타격을 주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 자신은 내 외모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타인, 특히나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평가를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한껏 움츠러들게 됐다. 기사를 더는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얼마 전 지인 여럿이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아이들도 함께였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자리였는데, 한 지인이 유독 외모를 거듭 언급했다. 아이들에게는 잘생긴 형아, 예쁜 언니 하는 식의 칭찬 위주였다. 한편 어른들의 달라진 외모를 두고는 짓궂은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그에게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전혀 없어 보였다. 다만 오랜만에 만난 기쁨을 나누는 데 꼭 외모 이야기가 이토록 큰 자리를 차지해야 할까 싶었다. 반가운 마음을 전할 이야기는 그 밖에도 많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은 채 외모 이야기를 일상 속에서 참 많이도 한다. 잘생겼다거나 예뻐졌다는 칭찬, 때로는 악의 없는 농담 속에서 외모는 곧잘 친근감을 드러내는 소재가 된다. 이건 내가 오래도록 우리 사회에서 관찰해온 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외모를 가볍게 소비하는 문화가 못마땅하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외모를 평가하고, 그 평가를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대화가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평소 이런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나조차도 어느새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는 사실이 최근의 깨달음이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이듦 앞에서 나도 무너지는가?
어쩌면 내가 앞을 볼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일찍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외모는 생물학적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압력에 취약한 인간 본성을 고려하면, 내가 그래도 막 마흔 줄에 들어가는 지금에야 외모에 대해 자각하게 된 것은 오히려 시각장애 덕분일지도 모른다. 거울 속 얼굴을 매일 확인하고 타인의 눈빛을 일일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삶 덕분에 외모의 압력을 덜 느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흔들린 자신감은 어찌 추슬러야 할까?
노동조합 관련 일이 있고 난 뒤 오랜만에 미용실을 예약했다. 늘 하던 대로 머리를 잘랐다. 빈 머리숱을 가리는 방법을 묻는 따위의 말은 소심해서 하지 못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다시 평정심을 되찾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소홀했던 내 머리에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다는 보상 심리 때문이었을까.
다음날 만난 사람들이 “이발하셨네요?” 하고 물었다. 그저 머리를 잘랐다는 걸 알아봐주는 말에도 자신감이 조금 살아났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아내의 탄성에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직접 볼 수도 없는 외모에 대한 내 마음은 그렇게 남의 말에 따라 오르내렸다. 외모 이야기를 서로 조금 덜 하면 그 말에 움츠러드는 마음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김헌용 신명중 교사·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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