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송열 감독의 네 번째 장편영화 ‘사랑의 지평선 너머로’의 한 장면. 박송열 제공
아이가 똥을 쌌다는 소식에, 돈을 받아내려던 일이 순식간에 무마된다.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배우의 제작사 ‘사랑하자’가 만든 네 번째 장편영화 ‘사랑의 지평선 너머로’의 한 장면이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나는 이 장면이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일까. 대체 똥을 싼 게 뭐라고?
박송열은 우연히 본 노인의 인터뷰를 들려줬다. 인생에서 가장 그리운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노인은 어린 자식이 왜 똥을 누지 않을까 걱정하던 시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저도 조금은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요.” 언젠가 그리워질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순간들. 박송열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영화라는 이름으로 붙잡아두고 있었다.
실제 부부인 박송열과 원향라는 카메라를 세워놓고 직접 연기하며 영화를 만들어왔다. 큰 자본 없이 둘이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찾아낸 방식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찍은 것도 영화가 될까 싶었지만, 제한된 조건 안에서 영화적 표현을 찾아냈다. 그렇게 네 편을 만들었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2021)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 기술로 살아가고 싶다는 박송열에게 노하우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욕망을 억제하는 데 집중하는 거예요.”
촬영감독도, 움직이는 카메라도 없으니 근사한 화면에 대한 욕심은 진즉에 내려놓았다. 대신 고정된 카메라 안에서 이야기에 어울리는 앵글을 찾았다. 촬영도 하루 한 신으로 제한했다. 둘이서 모든 일을 하다보면 싸우기 십상이다. 그래서 더 찍을 수 있어도 무리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영화를 더 잘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이 계속 영화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다. 박송열은 육아를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아이에게 내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시간도, 체력도, 돈도. 그 에너지는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고 오롯이 아이가 자라는 데 쓰인다. 이렇게 늙어가는 거구나.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지치고 불안해질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어렵게 얻은 아이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낮에는 육아하고 아이가 잠든 틈에 영화를 찍었다. 몸은 전보다 훨씬 힘들었는데, 이상하게도 부부는 덜 싸웠다.
“영화를 하는 이유는 결국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미용실에서 아주머니들이 파마하면서 떠드는 이야기도 삶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표현들이 있어야 삶에 윤기가 흐르죠. 다만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데 그치고 싶지는 않아요. 제 영화는 저와 아내가 주인공이라 주변에서 물어요. ‘너희 진짜 사채 썼어?’ 아니거든요. 현실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99%까지 보여주되 마지막 1%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요. 예를 들면 흉악해야 할 사채업자를 오히려 조금 선하고 우스꽝스럽게 그려서 지나가는 사람이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쳐다보게 하자. 그 미세한 간극에 극영화가 있다고 믿어요.”
이 소박하고도 단단한 영화는 202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케이비에스(KBS)독립영화상을 받았고, 원향라에게는 ‘올해의 배우상’을 안겼다. “삶의 조건과 영화의 형식이 가장 정직한 태도로 가장 정교하고 튼튼하게 만났다”는 평가도 따라왔다. 박송열은 지금도 영화 외에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극장 개봉도 장담할 수 없다. 그의 바람은 거창하지 않다. 사과농사를 짓는 아무개씨가 어느 지역에서든 보고 싶을 때 자신의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것. 그날이 올 때까지 박송열과 원향라는 프레임 안과 밖을 넘나들며 또 한 편의 영화를 만들지 싶다.

박송열 감독의 네 번째 장편영화 ‘사랑의 지평선 너머로’의 한 장면. 박송열 제공
■ 박송열 감독의 플레이리스트
1. 미야자키 하야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Yq5G8EEWGF8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라고 출처를 표기한 영상인데요. 현시대의 화두인 인공지능(AI)에 대한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단호한 입장이 담겨 있습니다.
2. 우유니사막 한가운데서 하룻밤을 보내면 생기는 일
https://www.youtube.com/watch?v=iQKL9OFt2JA
‘역마살 로드’ 채널에 올라온 우유니사막 탐험 영상입니다. 저도 촬영 현장을 여러 번 다녔지만 영상 속 촬영감독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오지에서 계획된 촬영을 다 마치면 숙소로 돌아가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텐데, 일출 장면을 찍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나가는 모습에 존경심이 듭니다.
3. 로베르 브레송 ‘돈’ 기자회견
https://www.youtube.com/watch?v=evaO6yoZ7ew
기자들의 다소 무례하고 공격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거장의 영화에 대한 철학이 굉장히 재밌습니다.
정성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치부노트’ 저자
*김수진 소셜저널링 ‘66데이즈’ 대표와 정성은 ‘치부노트’ 저자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정성호 전 법무장관 “조작기소 특검 숙의했어야…밝혀내기 쉽지 않아”

“100번 말했다” 장동혁 호위무사 김민수, 한동훈 복당 철벽치기

장동혁, 이 대통령 유튜브에 “북 치고 장구 치고…나보다 한 수 위”

선거 참패에도 트럼프 “관세 300%” “이란 남은 지역까지 파괴할 수도”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 주 사형수 548명 전원 종신형으로 감형 추진

국힘 김재원 “397억 반환하려면 모금운동…당사 담보 잡아야”

NYT, 뉴진스 전속계약서 공개 파장…“비밀계약으로 강력한 통제”

이원석 전 검찰총장 “대통령 재판 중단 상태서 조작기소 특검…사법 물구나무”

김길리 구하러 100달러 들고 달린 코치, 쇼트트랙 첫 여성감독 올랐다

진혜원 검사 정직 5개월 중징계…SNS 정치 편향 글, 품위유지의무 위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