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코앞 전당대회, 입장도 없이 무슨 선명성 경쟁

등록 2026-07-23 21:29 수정 2026-07-29 07:16
google구글 선호 매체 등록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렇게 아까울 수가. 검찰개혁을 해낼 절호의 기회가 자꾸 멀어져간다.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로 지금까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이토록 많은 적이 또 있었던가. 다수 시민의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견제받지 않는 독점적 사법권력이 혹여 나를 부당하게 가해자로 몰지 않을지, 억울한 피해자로 남겨두지 않을지 우려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아웅다웅하는 것처럼 보완수사권 폐지냐 존속이냐로 양자택일할 문제가 아니다. 많은 이가 지적했듯 수사권이든 기소권이든 검찰과 경찰이 그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적법하게 발휘하도록 견제할 장치를 어떻게 만들지를 우선 논의해야 한다.

 

적통 논쟁이 집어삼킨 의제들

 

복잡한 맥락과 구조적 원인이 얽혀 있음에도 문제를 단순화하는 정치권의 타성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청년 문제를 젠더 갈등으로, 교육권 추락 문제를 교사와 학부모의 대립으로, 정규직 부족 문제를 세대 간 밥그릇 다툼으로, 기후위기를 친원전 아니면 탈원전의 양자택일로 환원하는 흑백논리는 문제 해결을 더 요원하게 한다. 당면한 사회문제 대다수가 현실의 넓은 스펙트럼 위에 걸쳐 있는데도 그 사이의 수많은 예외와 복잡성을 소거해버리니 백약을 들이대야 무용할 뿐이다.

당장 전당대회를 코앞에 둔 민주당을 보자. 검찰개혁은 고사하고 지역 균형발전, 내수 침체와 부동산 세제 개편, 인공지능(AI)과 전력 수급, 장기화한 청년 구직난, 차별금지법 제정 등 산적한 문제에 대해 어느 후보 하나 구체적인 대안과 전망을 제시한 적 없고 후보 간의 유의미한 논쟁도 전무하다. 친석(친김민석)이니 친청(친정청래)이니 누가 누구랑 얼마나 더 친한지만 계산하는 것도 모자라 적통이 누구인지 따져 묻는 계파 정치가 모든 의제를 집어삼키고 있다. 여기에 편승해 악성 댓글과 문자 폭탄으로 상대 후보에게 총공세를 일삼는 강성 당원들도 해당 행위에 가담 중이다. 소속 의원 간의 열띤 논쟁은커녕 최소한의 입장 개진조차 틀어막기 때문이다. 정치의 퇴보고, 정치인의 실종이다.

정치 이념을 실현하고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바로 정당인데 그 대표를 선출하는 내부 선거야 당연히 정파 간 대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에는 사람과 이익(주로 공천)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계파만 남고, 이념과 정책, 노선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는 정파는 사라졌다. 입장에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입장 자체가 없으니 후보 간 구분도 어렵고, 선거의 대의명분도 마땅치 않다. ‘문조털래유’로 묶이기 싫은 친문(친문재인)이 부랴부랴 고민정을 당대표 선거에 참전시켜봐야 별 소득이 없는 이유다.

 

당대표 하나 제대로 못 뽑으면서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구별 없이 쓰겠다”는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나섰다면 무슨 도리로 어떻게 정권을 재창출할지 집권여당의 수장다운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중도보수로 외연을 확장하겠다면 대체 어디까지 스펙트럼을 넓히겠다는 건지, 민주당의 핵심 가치를 지키겠다면 그 코어가 지지하는 바는 무엇인지 구체적인 사안에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한 초과 세수를 어떻게 쓸지, 노동자의 성과급과 주주의 이해관계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남아 있는 구조적 성차별은 어떻게 해결할지 등 자신의 지향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선명성’ 경쟁이다. 당대표 하나 제대로 못 뽑으면서 다짜고짜 집권여당에 힘을 실어달라거나 때 되면 꼬박꼬박 표나 달라는 건 무능하기도 하거니와 너무 오만한 자세 아닌가.

 

신성아 ‘탐욕스러운 돌봄’ 저자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