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무서운 이야기

등록 2026-07-09 20:51 수정 2026-07-13 14:22
google구글 선호 매체 등록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나는 무섭다. 처음 그렇게 말한 사람은 나의 첫 번째 사수였다. 첫 방송 일은 매일 낮 송출되는 라디오 생방송이었는데, 출근한 지 일주일 만에 선배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그를 대신해 디제이(DJ)들이 보는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진행 멘트를 써야 했다. 못 미더운 눈빛들보다 무서운 것은 방송 펑크였기에 꾸역꾸역 앉아 자판을 두드렸다. 이틀 뒤 출근한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영희씨, 그런 줄은 알았지만 정말 무서운 사람이네.

 

방송사에선 귀신이 무섭지 않다

 

방송사 일은 괴담의 연속. 녹화장에서 귀신을 보면 프로그램이 대박 난다는 오래된 속설은 어쩌면 이곳 사람들이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서운 것은 늘 귀신보다 사람이다. 들었어? 그 작가님 회의하다 쓰러져서 구급차 왔었잖아. 신발이 항상 새것처럼 반짝반짝하다더라. 밖에 나가 걸을 일이 없어서. 진짜 무섭지 않냐?

나는 쓰러진 적도 없고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는 편이었지만 나를 둘러싼 괴담은 끊이지 않고 무럭무럭 자랐다. 들었어? 영희 작가님 4일째 집에 안 갔대. 프로그램을 5개 돌린다더라. 작가님은 왜 그렇게까지 일해요, 무섭게? 언제나 답은 질문 속에 있다. 무서워서요. 교통사고로 생방송에 불참했던 나의 첫 번째 사수는 몇 달 뒤 갑자기 해고를 통보받았고, 나는 후배라는 이유로 덩달아 짐을 쌌다. 방송사들이 ‘표준계약서’라는 걸 쓰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또 몇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한번 몸에 각인된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는 눈만 감아도 자동으로 떠올라 매일 아침 벌떡 일어나 머리를 감게 만든다.

최근 방송가에 떠도는 가장 큰 괴담은 한 방송사의 부도에 관한 소식이다. 들었어? 법카가 막혔대. 어제는 본사 화장실 비데를 뗐다더라. 그 무렵 나도 그 방송사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다. 방송사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선언에 관한 뉴스가 쏟아지던 날 아침 담당 피디(PD)에게 문자가 왔다. 작가님…. 프로그램은 못하게 될 것 같아요. 나는 놀라지 않고 그를 다독였다. 세상에 별일이 다 있네요. 그가 주저하며 꺼낸 다음 말에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작가님 그런데요, 기획비는 언제 지급될지 모르겠어요. 지금 제작 중인 팀들도 프리랜서 인건비가 다 홀드 상태라…. 괜찮아요.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실제로 괜찮았다. 언제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 나의 디폴트(초기 설정값)이기 때문이다. 작가료는 방송이 나간 뒤 지급되는 것이 계약상 원칙인데, ‘방송이 나간 후’의 정확한 시점은 늘 천차만별이다. 운이 좋으면 방송이 나간 주에 들어오기도 하고, 대개는 방송이 나가고 2주쯤 지나야 들어온다. 중간에 연휴라도 끼면 한 달 뒤에 들어올 때도 있다. 임금 불안정이라는 크고 깊은 구멍에서 줄줄 새어 나오는 불안을, 나는 주로 프로그램을 여러 개 하는 것으로 틀어막곤 하는데 그러다보면 무서운 사람이 된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니 성질이나 기세는 사납고, 밀려나지 않으려니 다른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고, 결국 누군가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

 

온갖 무서운 일로 어느덧 무서워진 나

 

사람들은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무섭고 불편한 사람과 누가 일하려 할까? 그리하여 40대를 앞둔 요즘 내 고민은 어떻게 하면 안 무서운 사람이 되는가인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말한다. 되겠어요?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그게 더 무서워. 어쩌란 말인가. 사는 것이 무섭다.

 

김영희 방송작가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