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별안간 그가 죽었다. 그의 부고를 그가 쓴 소설들 제목처럼 쓴다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내가 그를 죽였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같이. 한국인이 사랑한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별세 소식에 다들 놀랐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부고를 통해 뒤늦게 그가 대장암 투병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세상에 내놓은 저작만 100권이 넘고 최근에도 출간이 이어진 그의 왕성한 창작열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소식이었다.
부고를 들은 많은 사람이 “지금도 읽는 중인데”라며 허망해했던 것처럼, 내 머리맡에도 늘 그의 책이 한 권 이상 있다. 특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면 더욱 그렇다. 히가시노의 책은 현실을 잊는 데 최고다. 나는 취업 준비에 한창이던 대학 시절 그의 책을 처음 접했다. 학교 도서관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나는, 도서관에 막 들어온 그의 책을 선점하기에 꽤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취준생과 내가 머물던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은, ‘히가시노 월드’로 도피하기에 완벽한 조건을 자랑했다. 먼저 ‘취업 준비’라는 잊고 싶은 현실이 있었다. 볕이 들지 않아 밤낮을 알 수 없는 방은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환경을 조성했다. 간혹 옆방에서 들려오는 기척은 즉각적으로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곧 ‘누군가 옆에 있다’는 안도감으로도 다가왔다. 그해 여름, 나는 그의 책을 게걸스럽게 읽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그의 소설을 읽는다. 문장이 짧고, 술술 읽히며, 이공계 출신의 특기를 살려 물리학 등 다양한 과학 원리를 트릭에 접목해 추리소설의 새 지평을 연 것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겉바속촉’ 가가 교이치로 형사나 천재 물리학자인 탐정 갈릴레오 같은 그의 페르소나가 가진 인기도 상당하다. 그러나 명석한 두뇌와 체력 ‘만렙’에 쇼맨십도 일품인 셜록 홈스가 친구인 왓슨 박사의 조력까지 받아가며 추격전을 펼치는 ‘셜록 홈스 시리즈’와 비교해, 히가시노의 소설은 탐정의 빛나는 캐릭터성보다 악인에게 관심이 많다는 게 내 사견이다. 평범한 인간이 갖는 악의와, 악의가 자라나 살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히가시노는 집요하고도 민첩하게 그린다. 이윽고 책장을 덮고 나면, 내가 가졌거나 혹은 타인이 나에게 가졌을지 모를 ‘평범한 악의’에 대한 상상이 정념처럼 남는다. ‘셜록 홈스’를 읽고서는 홈스의 외양이나 신출귀몰함이 심상으로 남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방과 후’ ‘졸업’처럼 히가시노가 학교를 자주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시키는 것도 그곳이야말로 순수한 악의가 싹트기 좋은 탓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마구’를 좋아한다. ‘마구’는 고교 야구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그린 소설이다. 사건을 수사하는 다카마 형사는 공교롭게도 야구부 감독인 교사 모리카와와 고교 동창이다. 살해된 피해자가 원한을 살 만한 일은 추호도 없었다는 모리카와의 말에 다카마는 답한다. “원한을 사는 것과 인간성은 무관한 경우도 많다”고. 완벽한 인간이 오히려 깊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다카마의 생각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우리는 결국 다카마의 말이 맞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히가시노의 소설은 늘 통속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통속’이 사전적 정의로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이자 ‘비전문적이고 대체로 저속하며 일반 대중에게 쉽게 통할 수 있는 일’임을 상기하면, 그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그 흔한 출생의 비밀이 자주 등장하며, 여성은 주로 사건의 주체이기보다 객체로 활용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비통속적인 것으로 여기는 악인의 심리마저 통속의 영역으로 가져와 ‘역지사지’를 가능케 한 것도 히가시노의 소설이다. 나는 그게 그의 휴머니즘이라고 본다.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슬기 칼럼니스트·‘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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