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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상’, 표현의 자유 아닌 혐오

등록 2026-10-22 21:21수정 2026-10-29 10:54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과연 ‘북한상’이란 무엇일까? 한 국회의원이 영화 ‘암살자(들)’에 출연한 유해진 배우를 ‘북한상’이라 부른 것을 보며 든 생각이다. 영화 ‘공조’에서는 유해진이 남한 형사, 현빈이 북한 형사로 나온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도 현빈이 북한 장교로 출연했으니, ‘진정한 북한상은 현빈 배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공조’ 관련 영상에 “현빈과 유해진의 역할이 뒤바뀐 것 아니냐”는 댓글이 달리는 현실을 보면, 한국 사회에 ‘북한상’이라는 혐오적 고정관념은 분명 실재한다. 북한 사람의 외모에 ‘가난한’ ‘뒤처진’ ‘나쁜’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태도는 낡은 멸공적 사고에 뿌리를 둔다. 북한 사람을 인간이 아닌 ‘괴물’로 묘사한 과거 반공 포스터 속 이미지의 자장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의 기득권적 안이함

 

북한 주민에 대한 혐오, 더 나아가 이주민에 대한 혐오가 국회의원이라는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레드 댓글로 재현됐다. ‘북한상’이라는 말에 화가 난 이유는 같은 당에 버젓이 북한 출신 국회의원이 존재함에도 그런 말을 지껄일 수 있는 그의 기득권적 ‘안이함’이었다.

정치인의 이러한 언사는 사회 저변에 가라앉아 있던 혐오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강화한다. 혐오가 부르는 파장은 ‘여명학교’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북한이탈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여명학교가 임시로 사용한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옛 초등학교 건물에 정식 교사를 짓는 계획이 발표되자 일부 주민의 거센 반대가 잇따랐다. 여명학교를 ‘기피시설’로 여기는 펼침막이 동네 곳곳에 나붙었다.

혐오의 표적이 된 약자는 결코 안이하게 살아갈 수 없다. 주민설명회에서 격렬한 고성과 항의가 이어지자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은 학생의 학습권을 지켜달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당당히 항의하기보다 무릎 꿇고 읍소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 그것이 바로 혐오와 마주한 약자의 처절한 현실이다.

큰소리로 항의하는 대신 무릎을 꿇은 교장의 모습을 보며, 문득 얼마 전 만났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이여인터) 활동가들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구성원 모두가 ‘평어’를 쓴다는 사실이었다. 단체의 대표부터 갓 입사한 신입 활동가까지 직책과 나이의 벽을 허물고 평어로 소통하고 있었고, 나 역시 첫 만남부터 자연스레 평어를 주고받는 생경한 경험을 했다.

그들이 평어를 쓰게 된 배경에는 깊은 문제의식이 닿아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여성은 관계를 맺을 때 늘 존댓말을 써야 하는 위치에 놓이기 마련이다. 언어의 차이가 권력의 차이로 이어지기에 적어도 이여인터에서만큼은 언어에 짓눌려 위축되지 않고,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쩌렁쩌렁 당당하게 낼 수 있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활동가 사이에서도 나이나 직책, 경력에 따른 위계에 균열을 내고 서로를 온전한 동료이자 운동의 주체로 마주하자는 뜻도 담겨 있었다.

이여인터의 평어 쓰기에 담긴 사려 깊음에 큰 울림을 받았다. 무릎 꿇은 여명학교 교장의 읍소처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살 영화 상영회에 나눌 간식 하나를 고르면서도 혹여 이스라엘산 성분이 들어 있을까 라벨을 살피던 이들의 수고로움처럼, 약자 곁에 서는 사람들은 타인의 존엄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한다.

 

부디 스레드 절필하시라

 

이 지난한 사려 깊음이 그 정치인의 눈에는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왜 그런 최소한의 고민조차 그의 머릿속에는 깃들지 않는지, 떠올릴수록 분노는 한층 짙어졌다. 그는 자신의 말을 ‘표현의 자유’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혐오는 결코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약자를 공론장에서 침묵하게 해 표현의 자유를 틀어막는 폭력일 뿐이다.

누구나 당당하게 평어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대등하게 마주 볼 수 있는 사회를 향한 고군분투 앞에서, 그가 누리는 천박한 안이함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스레드에 빠진 그에게 전하고 싶다. 더는 키보드를 혐오 발사대로 삼지 말고 부디 절필하시라.

 

김민호 비즈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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