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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브 더 플래닛, 테크노 비트와 함께한 시끄러운 애도

등록 2026-08-20 21:39 수정 2026-08-2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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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수십만 명이 한여름의 거리 한복판을 가득 메운 채 시끄러운 전자음악에 몸을 맡기며 행진했다. 그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한국이 81주년 광복절을 맞던 날, 나는 독일 베를린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세계적인 전자음악 퍼레이드인 ‘레이브 더 플래닛’에 참가했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베를린 전승기념탑까지 이어지는 ‘6월17일 거리’에 34대의 디제잉 차량이 오갔다. 트럭마다 다른 비트가 흘러나왔고, 그 뒤를 따르는 인파는 제각각 다른 옷차림으로 자신만의 춤을 췄다. 망사 옷을 입은 사람, 상의를 벗은 사람, 화려한 장식을 두른 사람, 편한 티셔츠 차림의 사람, 심지어 한국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까지, 그 어떤 조합도 이상하지 않았다. 누구도 서로의 옷차림이나 몸짓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무리 속에 나는 온전히 나다워도 된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테러에 굴복 안 한 ‘레이브 더 플래닛’

 

이번 행진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가 있다. 2026년 7월25일 베를린 퀴어 퍼레이드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한 차량 테러가 발생했고, 그 여파로 베를린의 대형 행사가 잇따라 취소됐다. 이번 행사도 안전을 이유로 취소하는 편이 더 쉬운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레이브 더 플래닛 주최 쪽은 행사를 강행했다. 베를린의 테크노 문화는 성소수자 공동체의 피난처이자 해방구 구실을 해왔기에, 테러에 굴복할 수 없다는 결정이었다.

이날 행사는 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했다. 무지개 깃발 등 성소수자 상징물을 지닌 수많은 퀴어 당사자와 앨라이(성소수자의 인권 개선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이)가 행진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시끄럽게 춤추는 것으로 추모하며 혐오에 맞섰다. 트럭 한 대에 적힌 문구는 ‘Let love be louder’였다. 혐오라는 세상의 소음보다 사랑의 목소리를 더 크게, 더 시끄럽게 내겠다는 선언이었다. 혐오에 지지 않겠다는 마음을 ‘그럼에도 행진은 계속된다’는 몸짓으로 보여준 셈이다.

엄숙한 애도의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보이고 계속 춤추는 것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배웠다. 슬픔과 두려움을 이유로 멈춰서는 순간, 혐오는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러니 멈추지 않는 것 자체가 저항이 된다.

레이브 더 플래닛의 전신은 1989년 시작된 ‘러브 퍼레이드’다. 그러나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로 명맥이 끊겼다. 스물한 명이 목숨을 잃은 그 사고 이후 독일 사회에서는 테크노 파티와 대규모 레이브를 ‘도덕적 타락의 장’ ‘통제 불능의 광란’ 등으로 모는 여론이 확산했다. 독일 전역에서 대형 전자음악 행사의 허가 요건이 극도로 까다로워지는 등 테크노 공동체 전체가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다 러브 퍼레이드의 상업화에 반대하며 축제를 떠났던 창시자 닥터 모테가 복귀했다. 그는 참사 이후 테크노 축제에 씌운 ‘위험하고 무책임한 파티’라는 사회적 낙인을 벗겨내고 테크노 공동체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엘렌 도슈뢰잉과 함께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2022년 행사를 부활시켰다.

 

베를린에서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다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태원 참사와 겹친다. ‘놀다가 죽었다’는 혐오에는 클럽 문화, 성소수자 공동체의 중심지, 기지촌이라는 이태원의 지역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켜켜이 쌓여 있다. 참사 이후 이태원 핼러윈을 향한 통제는 강해졌다. 안전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그 통제가 향한 것은 ‘노는 행위’ 자체였다.

베를린 사람들이 행진을 멈추지 않는 방식으로 애도했듯이, 4주기를 앞둔 2026년 이태원 핼러윈에서도 누군가 ‘문란하다’고 손가락질할 그 방식 그대로, 놀면서 시끄럽게 추모하고 싶어졌다. 조용히 슬퍼하는 것만이 애도의 유일한 얼굴이 아님을 베를린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민호 비즈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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