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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위로 흐를 수 없다… 윗세대 교정하겠다는 마음 내려놔야

등록 2026-09-24 22:46수정 2026-10-01 16:22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관측 사상 가장 더웠다는 2026년 여름, 나의 주요 일과 중 하나는 조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고, 우리 민호가!” 하는 반가움도 잠시, 통화는 언제나 2분을 넘기지 못했다. 말끝마다 얼른 끊어야 한다는 급박함이 느껴졌다. 손자의 안부가 반가우면서도 왜 이리 쫓기듯 수화기를 내려놓으실까 의아해하던 내게 어머니는 지나가듯 말씀하셨다. 전화요금이 무서워 말을 아끼던 시절의 습관이 몸에 배어 그런 것이라고. 음성 통화 무제한 요금제가 당연해진 세상에서도 수십 년간 굳어진 절약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윗세대의 삶을 교정하겠다는 착각

 

통화 내용은 우려대로였다. 할머니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일장에 나가 손수 지은 농작물을 팔고 계셨다. 이 더위에도 나가시냐는 손자의 타박에 “여는 그늘이라서 시원해여”라는 답답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우사에 나가 펄펄 끓는 솥에 소죽을 쑤는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노후를 유지할 형편이 마련됐음에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신다. 농사짓고 소를 키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폐전선을 모아 구리선을 골라내 한 무더기씩 쌓아두신다.

왜 계속 일하시냐고, 이제 좀 쉬셔도 되지 않냐고 진지하게 여쭐 때면 할아버지는 “이게 내 낙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하셨다. 즐길거리랄 게 딱히 없는 두 분에게 일은 곧 여가였다. 취향을 가질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세대의 관성은 질겼다. 아버지도 그런 부모를 향해 약간은 짜증 섞인 걱정을 쏟아냈다. 일 좀 그만하시고 날이 더운데 제발 나가지 마시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고집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내 마음 역시 복잡하기는 매한가지다. 집배원으로 일하며 생계 수단으로 한동안 오토바이를 타왔던 아버지는, 은퇴를 앞두고서야 난데없이 오토바이를 취미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온 가족이 위험하다며 뜯어말렸지만, 취미랄 게 크게 없던 그의 오랜 로망이라는 말 앞에서는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독립하며 방에서 책을 빼내자, 텅 비어버린 책장은 그제야 아버지의 오토바이 헬멧들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나는 아랫세대의 지식과 감각으로 윗세대의 삶을 교정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것은 명백한 오만이었다. 윗세대를 계몽하거나 구원할 수는 없다. 물이 위로 거슬러 흐를 수 없듯이, 세대의 궤적 역시 과거로 되돌아가 고쳐 쓸 수 없는 법이다. 그늘이라고 안심시키며 자리를 지키는 시장 바닥도, 굳은살이 박이도록 모으는 구리선도,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는 오토바이도 모두 그들이 살아낸 시대가 남긴 삶의 양식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체화된 문화자본은 대물림될지언정 위로는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신 선물로 오토바이용 안전 장구를 사드리는 것 정도이지 않을까 싶었다.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한풀 꺾이고 어느덧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같은 세대인 사촌 동생과 친구의 도움을 빌려 어렵사리 기차표를 구했다. 이번 밥상머리에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텔레비전 트로트 프로그램을 함께 지켜보고, 아버지의 다음 오토바이 행선지를 묻는 대화가 이어질 것이다. 서로를 바꾸진 못하더라도 각자의 삶을 물으며 나란히 둘러앉는 것이 명절의 온기일지 모른다.

 

각자 삶을 물으며 나란히 둘러앉는 명절

 

얼마 전 집안에 경사가 있었다. 사촌 누나가 아이를 낳으며 나에게도 첫 조카가 생겼다. 그 소식을 들으며 다음 세대가 태어났다는 묘한 감각이 들었다. 한 세대를 30년이라 했던가. 서른 줄을 앞두고 보니, 다음 시대를 살아갈 조카에게 과연 무엇을 내려줄 수 있을지 자꾸 헤아리게 된다. 위로 흐르지 않는 세대의 강물은 이제 나를 지나 갓 태어난 조카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적어도 걱정을 끼치지 않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 세대는 위로 흐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민호 비즈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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