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12년째 함께 지내는 고양이는 자기주장이 강하다. 내가 책 좀 읽으려 하면, 그냥 그 위에 철퍼덕 누워버린다. 노트북 키보드 위에서의 뒷발 타이핑은 예사다. 낮에 우는 것은 대체로 놀아달라는 얘기지만, 밤에 우는 건 어서 침대로 들어오라는 항변이다. 그래야 자신도 내 팔에 머리를 베고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눈치 없는 내가, 그의 요구를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도, 거의는 모를 것이다.
나는 너를 들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의 소리조차 못 듣는 일이 많은데.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의 에세이 ‘심장 듣기’를 읽었다.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친절한 부제에도 불구하고, ‘심장 듣기’라는 제목은 여러 의문을 남긴다. 심장을 듣는 일일까, 심장으로 듣는 일일까. 아니면 둘 다? 심장을 심장으로 듣는 일에 관한 일일까.
나와 고양이의 사례가 말하듯, 듣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게 어려워서, 소셜미디어상에는 ‘이럴 땐 이런 것’이라는 각종 해설이 넘쳐난다. 인간이나 비인간의 언어와 비언어를 이해하고 싶어서. 세간에 떠도는 거친 도식화의 산물들은 나 아닌 것을 이해하는 데 사실은 더욱 걸림돌이다. 그 도식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도식을 생각하느라 앞에 있는 사람을 놓친다.
그래도 잘 듣고 싶어서, ‘심장 듣기’를 읽는다. 유 기자는 반려견 밤이와 함께 사는 반려인이고, 여성과 소수자의 삶에 관심이 많은 10년차 기자다. 책은 ‘듣는 것이 곧 업’에 가까운 기자로서의 듣기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그는 기자로서의 듣기란 ‘들어주는 일이 아닌 듣는 일’이라고 말한다. ‘들어주는 일’이 침묵 속의 동의라면, ‘듣는 일’은 더 적극적으로 묻고 답하며 ‘호흡을 마시고 뱉는 일’이다.
참사 희생자의 빈소에서, 범죄 피해자의 유가족 앞에서조차 기자는 마냥 들어주는 사람일 수 없다. 무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질문하고, 그들의 말을 기사로 옮겨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유 기자는 고객에게 갑질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의 빈소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유가족을 떠올린다. 결국 말문이 막혀 그대로 빈소를 나오고 말았지만, 그 표정은 말 없이도 말하고 있던 것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준비가 됐노라고.
나는 종종 인터뷰를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일’이라고 쓴다. ‘끄집어’에 담긴 어감이 영 좋지 못하지만, ‘끄집어’라고 말할 만치 피차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운 물리력을 동반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도 기자 일을 하며 자주 피하고 싶은 인터뷰를 맞닥뜨렸다. 12년 전에는, 공소시효를 앞둔 미제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을 인터뷰했다. 그날의 듣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구에 사는 그를 전화로 만났다. 소리 없는 울음 속 전화는 자주 끊어졌다. 그는 비슷한 듯 다른 말을, 15년째 하는 중이었다. 전화를 다시 걸 엄두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래도 울면서 다시 걸었다. 솔직히는 기사 때문이었지만, 그의 마음을 헤집어놓은 김에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신호음이 한참을 울린 끝에, 그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다시 나타났다. 파도같이 휘몰아치는 슬픔과 고통 앞에서도, 그 또한 말하기를 멈출 수 없었던 까닭이다. 세상을 향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노력으로, 이듬해 국회는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하는 태완이법을 통과시켰다. 정작 태완이와 어머니는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지만. 기사가 나가고 그는 내게 “고맙다”며 다른 미제 사건 피해자 유가족을 소개해줬다.
책장을 덮고서, 나는 ‘심장 듣기’가 ‘심장을 심장으로 듣는 일’에 관한 책임을 이해한다. 편견 넘어 도식 넘어, 서로를 듣기 위해서는 피차 고통을 감내할 만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도. 여러 굴곡을 함께 건너온 내 고양이는, 오늘도 나와 심장을 맞대고 잔다.
이슬기 칼럼니스트·‘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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