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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소외’ 넘기 위해… 오늘도 인공지능과 씨름한다

등록 2026-08-27 21:45 수정 2026-09-0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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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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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미국에서 ‘해리 포터’ 오디오북 시리즈 전체를 사왔다. 백 장이 넘는 시디(CD)를 한장 한장 리핑해 엠피3 플레이어에 넣으며 설렜던 기억이 선하다. 그 책을 다 들은 건 교사가 되고 나서였다. 이어폰을 꽂고 지하철에 오르면 사람에 치이는 출퇴근길이 매일 아침 평행 우주로 가는 시간이 됐다. 내릴 역을 지나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오랫동안 책은 내겐 좀처럼 가닿을 수 없는 매체였다. 서가에 가득 꽂힌 책들은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오디오북은 그 아득한 세계를 감각할 수 있게 해줬다. 서점에 새 책이 나오면 나도 같은 날 그 책을 들을 수 있었다. 낭독자의 목소리를 따라 비로소 책의 세계에 푹 빠질 수 있었다. 그렇게 활자는 디지털 전파를 타고 내게로 왔다.

 

교무실과 신혼집에서 겪은 기술 소외

 

그런데 그 지하철에서 내려 교무실에 앉으면 다른 기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2020년 초 새 결재 시스템이 개통된 날, 화면낭독기는 화면을 텅 빈 공터처럼 읽어 내려갔다. 버튼도, 메뉴도, 입력창도 없다고 했다. 동료들이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가볍게 끝내는 일 앞에서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다 손가락을 멈췄다. 학교에서 마주한 기술은 내 업무를 가로막고 있었다.

머지않아 가장 익숙한 집에도 기술의 장벽이 찾아왔다. 결혼을 앞두고 혼수 가전을 한꺼번에 장만했는데, 세탁기 앞에서 손을 뻗으니 손가락에 만져지는 건 매끈한 유리 패널뿐이었다. 돌릴 수 있는 다이얼도, 눌러지는 버튼도 어디 없었다. 제품의 화려한 기능을 설명하는 직원에게 내가 던진 질문은 하나였다. “제가 이걸 어떻게 켤 수 있죠?” 직원은 곤혹스러운 듯 그저 웃고 말았다. 그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서를 냈지만, 접근성 개선에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기각 통지서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기술 앞에서 소외됐다.

한동안 당하기만 하던 내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건 2022년 겨울이었다. 챗지피티가 세상에 나왔고, 나는 밤마다 대화창을 켜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웹 접근성이란 대체 무엇인지, 화면낭독기가 왜 어떤 버튼은 읽고 어떤 버튼은 못 읽는지. 처음으로 기술의 언어로 기술에 따질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벼려낸 언어로 새 교육행정시스템의 결함을 조목조목 정리해 국회와 개발 기관에 보냈고, 서서히 접근성이 개선됐다. 요즘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수업에 쓸 앱을 직접 만들고 시각 위주의 문서 업무를 자동화한다. 새 기술로 그간 내 삶을 가로막던 들쭉날쭉한 턱들이 비로소 조금씩 고르게 깎이는 중이다.

2026년 6월에는 한겨레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 대상을 받았다. 11년 동안 기술에 주어지던 상이 처음으로 사람에게 수여됐다고 한다. 지난 세월 기술의 장벽 앞에서 끈질기게 씨름해온 시간에 준 상이라고 이해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삶의 일부는 기술이란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꿔가는 과정이었다.

 

걸림돌에서 디딤돌로 바꿔가는 과정

 

마침 시상식 전날 밤, 아이가 그림책을 들고 왔다. 그림을 알려달라는 조름이 그날따라 유난히 집요했다. 휴대전화를 꺼내 챗지피티에 책장을 비추었다. 마지막 장에서 챗지피티가 화면 너머로 또박또박 말했다.

“강아지가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을 하고 있네.” 그 말에 아이는 갸우뚱하며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닌데? 고양이가 타고 있는데?” 그림 속에는 고양이가 생일 선물로 받은 빨간색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아이가 옳았다.

기술은 이토록 불완전하다. 앞으로 올 어떤 눈부신 기술도 나를 온전히 해방하진 못할 것이다. 단언컨대 내 삶이 계속되는 한 그 불완전성과의 씨름 역시 계속될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기술에 끈질기게 천착한 까닭은 단지 편리함만은 아니었다. 나는 오늘 밤도 아이 옆에서 인공지능에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청할 것이다. 그러나 조용히 아이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다. 내가 기술을 통해 닿고자 하는 세상이 바로 거기에 있으므로.

 

김헌용 신명중 교사·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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