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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위 보고서, 국토부 법적 책임 ‘면책용’?

콘크리트 둔덕 개량공사 참사 영향 분석 집중… “보고서 결론 ‘업무상 과실치사’ 회피 근거될 수도”
등록 2026-01-15 21:44 수정 2026-01-16 19:16
‘12·29 여객기 참사 국정조사 기관보고’가 열린 2026년 1월15일 유가족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사라진 ‘4분 7초’의 퍼즐을 맞출 모든 자료를 즉각 공개하라”며 “CVR(조종실음성기록장치)과 FDR(비행자료기록장치)을 포함해,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참사 유가족협의회 제공

‘12·29 여객기 참사 국정조사 기관보고’가 열린 2026년 1월15일 유가족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사라진 ‘4분 7초’의 퍼즐을 맞출 모든 자료를 즉각 공개하라”며 “CVR(조종실음성기록장치)과 FDR(비행자료기록장치)을 포함해,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참사 유가족협의회 제공


179명이 숨진 전남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참사에서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을 지지하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다면 중상자는 없었을 것이라는 연구용역 보고서가 2026년 1월8일 뒤늦게 공개됐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국토교통부가 참사 1년 만에 규정 위반을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해당 보고서의 결론과 시뮬레이션 설계 방식, 국토부의 공식 입장을 종합하면 ‘규정 위반 인정’으로 보기에 석연찮은 부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족들은 이 보고서가 ‘책임 인정’이라기보다 ‘책임을 피해가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왜 개량공사 전후로 나눠 시뮬레이션했을까

2025년 12월22일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시작되면서,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은 국토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로부터 콘크리트 둔덕 관련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보고서는 사조위가 2025년 3월 한국전산구조공학회에 의뢰한 충돌 영향 분석 자료다. 연구팀은 기체, 활주로, 지반, 둔덕, 각종 구조물을 가상 모델로 구현해서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고 상황을 정밀 분석했는데 보고서의 ‘5장 결론’은 이렇게 쓰여 있다.

“활주시의 충격은 중상자가 발생할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으며 장애물이 없는 평지였다면 둔덕에서 630m 정도 미끄러진 후 정지하였을 것이다. 둔덕이 없고 부러지기 쉬운 구조물로 지지돼 있었다면 항공기는 담장을 뚫고 지나갔을 것으로 판단되고 이때의 충격도 중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 결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개선공사로 추가된 상판의 존재 여부가 사고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며, 상대적으로 상판이 없는 개선 전의 둔덕 구조가 승객에게 더 큰 최대 충격을 준다.” “승객 피해의 주원인은 직접 충돌 충격이 아니라, 폭발과 화재로 인한 기체의 파손에 따른 2차적인 충격으로 추정된다.”

종합하면, 보고서는 콘크리트 둔덕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둔덕 개량공사가 참사에 미친 영향에 집중해 결론을 내린 모양새다. 이 보고서 결론을 접한 유가족협의회는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유가족들이 궁금했던 건 ‘둔덕이 없었다면 179명이 세상을 떠나는 참사가 발생했을까’였는데, 가상시나리오 시뮬레이션 설계는 ‘2007년 둔덕(개량공사 이전)과 사고 당시 둔덕(2022~2023년 개량공사 뒤 둔덕)’으로 나뉘었고, 결론도 ‘둘 중에 어느 쪽 책임이 더 큰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고재승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사는 “우리는 (둔덕을 개량공사 전 버전과 후 버전으로 나눠서) 시뮬레이션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유가족 이준화씨(건축사)도 “현직 관계자들이 많이 얽혀 있는 ‘개량공사 뒤 둔덕’의 책임을 무마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애초 사조위가 밝힌 연구용역 완료 시점이 2025년 8월이었음에도, 보고서가 보완 과정을 거쳐 2025년 11월 말에야 완료된 점도 유가족들의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국토부, ‘규정 위반 인정’ 아닌 ‘선제적 미충족’

유가족의 시선이 아니라 국토부 입장에서 보면, 개량공사 전인 ‘2007년 둔덕’과 개량공사 후인 ‘2023년 둔덕’의 사고 영향을 나눠 분석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국토부와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혐의의 핵심이 ‘둔덕 개량에 따른 업무상 과실치사’이기 때문이다. 법적 쟁점의 중심에는 ‘둔덕이 공항안전운영기준을 위반했는지’가 놓여 있다. 규정 위반과 관련해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은 국토부에 공식 입장 제출을 요구했고, 국토부는 2026년 1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무안공항 둔덕의 재질과 관련해 비행장시설 설치기준의 ‘종단안전구역 내에서는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하여야 한다’, 공항안전운영기준의 ‘착륙대 종단으로부터 240m 이내 지역에서는 부러지기 쉬워야 한다’는 규정은 2010년 1월1일부터 시행되었음. 2003년 제정된 공항안전운영기준에는 2010년부터는 240m 이내에 부러지기 쉬워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며, (2007년 무안공항 건설 당시) 방위각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2010년부터 시행되는 해당 규정을 선제적으로 충족되도록 하지 못했음.”

난해하게 읽히는 이 국토부의 답변은, 공항안전운영기준이 2003년에 만들어졌지만 ‘부러지기 쉬워야 한다’는 규정의 법적 효력은 2010년부터였기에 2007년 무안공항 건설 때는 이 기준을 충족할 이유가 없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소속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국토부가 “‘규정을 위반했다’가 아니라 ‘장차 시행될 규정을 2007년 둔덕이 ‘선제적으로’ 충족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표현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정 시행 이전에 설치된 시설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국토부 논리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는 참사 직후 국토부가 내놓았던 ‘미흡했으나 법적 위반은 아니었다’는 입장과도 결이 비슷하다. 김소희 의원실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2025년 1월7일치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관련 백브리핑 자료’에도 “공항안전운영기준 제109조 규정 등은 2010년부터 적용된 만큼 건설 당시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문구가 담겨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구용역에서 ‘2007년 둔덕’과 ‘2023년 둔덕’을 분리해 사고 영향을 비교한 구조 및 결론 역시, 국토부의 법적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적 설계로 보인다. 유가족협의회 법률지원단 김성진 변호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성립하려면, 둔덕이 위법하다고 했을 때 그 ‘위법성’과 ‘희생자들이 돌아가신 것’ 간의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보고서 결론에 따르면 사망과의 인과관계는 없다는 쪽으로 귀결될 수도 있고, 그러면 혐의를 비켜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2025년 12월22일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시작되면서 공개된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콘크리트 둔덕’ 연구용역 보고서와 ‘조류 충돌’ 연구용역 보고서 및 한국공항공사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보고자료(오른쪽부터). 손고운 기자

2025년 12월22일 ‘12·29 여객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시작되면서 공개된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콘크리트 둔덕’ 연구용역 보고서와 ‘조류 충돌’ 연구용역 보고서 및 한국공항공사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보고자료(오른쪽부터). 손고운 기자


한국공항공사도 보고서 인용해 ‘책임 회피’

실제로 한국공항공사도 연구용역 보고서 내용을 곧바로 면피의 근거로 활용했다. 한국공항공사는 2026년 1월 김소희 의원실에 제출한 보고자료에서 ‘콘크리트 둔덕 관련 현재 진행사항’에 대해 “방위각제공시설 개량사업시 추가된 콘크리트 상판의 사고 영향성에 대해 외부전문기관을 통해 충돌시뮬레이션 수행. 개량사업시 추가된 콘크리트 상판의 사고영향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이라고 썼다. 한국공항공사는 2020년부터 둔덕 개량사업을 시행한 주체이며, 매년 부산지방항공청으로부터 사용허가를 받아 방위각시설을 유지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동시에 한국공항공사는 국토부와 부산지방항공청에 책임을 미뤘다. 2007년 무안공항 건설 당시 콘크리트 둔덕 설치와 관련해 “국토부(당시 항공안전본부)가 공항운영의 안전이 확보될 수 있다고 인정해 공항운영규정을 인가하고 콘크리트 구조물 존치”라고 밝혔다. 2007년 무안공항 개항 때 콘크리트 둔덕이 있었지만 국토부가 안전하다고 인정해 인가했으니, 한국공항공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취지다.

이같은 국정조사를 지켜보고 있는 고재승 유가족협의회 이사는 “우리 입장에선 ‘그래서 결국 아무도 법적 책임을 질 사람은 없다는 거네’란 결론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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