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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 최참판댁 인근에 출판사가 있다

‘상추쌈출판사’, 시골이라 가능한 책 짓기 “농사 지으며, 읽고 싶은 책 낼 것”
등록 2026-06-11 10:30 수정 2026-06-11 19:35
집이자 출판사에서 최근 발간한 ‘농업 고수’를 손에 들고 있는 전광진 대표. 전광진 제공

집이자 출판사에서 최근 발간한 ‘농업 고수’를 손에 들고 있는 전광진 대표. 전광진 제공


경남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는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섬진강을 등지고 10리를 더 들어가는 곳이다. 이 깊숙한 지리산 자락 마을에 ‘상추쌈출판사’가 있다. 전광진(사진)씨 부부가 하는 곳이다. 전 대표가 달포 전께 ‘농업 고수’(제1612호 참조)라는 책을 곡진한 편지와 함께 소포로 보내왔다. 책도 책이려니와, 시골에서 책 내는 사람과 그 사람의 삶이 책 못지않게 궁금했다. 전자우편으로 질문지를 보냈다. 6·3 지방선거 개표방송이 한창이던 2026년 6월4일 0시 무렵, 첫 편지만큼 곡진한 답 편지가, 그때의 두 배 분량으로 왔다. 문답식으로 간추렸다.

―하동 출신인가.

“아니다. 서울에서 아내와 같은 출판사를 다니다가 2008년 이곳으로 왔다. 그러고는 2013년 ‘상추쌈’ 이름으로 첫 책을 냈다. 지금까지 낸 책이 스무 종 남짓 된다. 주제는 주로 자연, 교육, 지역이다.”

―서울에서 일할 때와 비교하면.

“서울에서도 그 분야 책을 냈는데, 시골에 사니까 도시에서 보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같은 달이라고 해도 여기에서는 뒷면이 보이는 셈이다. 아무래도 출판사가 시골에 있기는 쉽지 않다. 독자도 대부분 도시에 있다. 그러나 출판사가 시골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넘치는 응원과 애정을 받고 있다. 독자와 맞닥뜨리는 일도 더 많아졌다. ‘농업 고수’를 낸 뒤로 충청, 전라, 경상, 강원, 제주에서 연락이 온다. 저자를 모셔와 강연회를 열든지, 우리가 직접 일본으로 가자고 한다.”

―굳이 그곳까지 가서 출판을 하는 취지나 방향성이 있을 것 같다.

“우리 부부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내는 것이다. ‘상추쌈’의 시리즈 가운데 ‘고개를 넘어 마을로’라는 게 있다. 윤동주 시인의 시구에서 따왔다. 그렇게 ‘마을 속에서 한 걸음씩’ 걷는 것이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다. 여기에서 책을 낼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낼 생각이다.”

상추쌈출판사 서가. 문밖으로 보이는 돌담이 정겹다. 전광진 제공

상추쌈출판사 서가. 문밖으로 보이는 돌담이 정겹다. 전광진 제공


―그래도 출판 일만 해서는 먹고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농사를 짓는다. 그래봐야 논과 밭을 합쳐서 겨우 1천 평이 넘는 정도다. 농산물 판매는 알음알음 한다. 책 파는 일이 더 어려워지고, 농사로도 그리 돈을 번다고 하기 어렵다. 돈 문제는 늘 쉽지 않다. 다행히 여기에서는 적게 쓰면서 살 수 있고, 먹을 것이 나오는 논밭이 있고, 나무를 때면 따뜻해지는 방이 있다. 일하는 방도 집에 있으니 월세를 안 낸다.”

―전업농 토박이들의 시선은 어떤가.

“마을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악양은 지리산과 섬진강, 만석꾼이 나올 만한 들판이 있어 귀농·귀촌인이 꽤 많이 산다. 예로부터 곳간이 넓었고, 그래서 인심이 좋은 곳이다. ‘각설이패가 들어오면 3년을 빌어먹고 한 집이 남는다’는 이곳 말이 있을 정도다. 여기 와서 세 아이를 낳아 키웠다.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 올해는 마을 사람들이 나더러 이장을 맡으라고 해서 맡았다. 아이들 키우면서 받은 게 많으니 할 수 있는 만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20년 동안 몰랐던 마을 일이 많았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이장 일이 어느 면에선 ‘마을 정치’ 아닌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봤듯이, 그곳 정치색이 압도적 보수 우위여서 어려움이 있을 것도 같은데.

“이장이 돼서 조심하고 삼가는 면이 없지 않다. 다만 여기가 압도적 보수 지역은 아니다. 선거를 치를 때는 정책과 지난 경력에 따라 결과가 상당히 달라진다. 지역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중앙중심적 관점에서 보는 것과 달리)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많다. 내 경험으로 말하면, 일상의 일들이 대부분 의논을 거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도록 민주적으로 결정되고 실행된다.”

2026년 5월 대하소설 ‘토지’ 일본어판을 완역하고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받은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가 일본인 독자 등과 문학기행을 하면서 상추쌈출판사를 찾았다. 가운데 서 있는 이는 상추쌈출판사에서 함께 책을 만드는 배우자 서혜영씨다. 전광진 제공

2026년 5월 대하소설 ‘토지’ 일본어판을 완역하고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받은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가 일본인 독자 등과 문학기행을 하면서 상추쌈출판사를 찾았다. 가운데 서 있는 이는 상추쌈출판사에서 함께 책을 만드는 배우자 서혜영씨다. 전광진 제공


―한겨레21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해달라.

“‘농사꾼들’을 특별히 재미있게 읽고 있다. 이만한 시사주간지가 꾸준히 지역의 소식과 농업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보면 기운이 난다. 농업이 인구로만 따지면 4% 안팎이지만, 그 수치 이면에 어떤 것이 있는지 공유하고 있구나 싶어서다. 어떤 방식으로든 더 잘 이어지기를 바란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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