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2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신사법안이 가결되자 본회의장 방청석에 있던 문신사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재석 202인 중 찬성 195인, 기권 7인으로서 문신사법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탁, 탁, 탁. 우원식 국회의장이 한 손으로 의사봉을 힘차게 두드렸다. 국회의원들의 손뼉 소리가 장내를 채웠다. 2025년 9월25일 이 역사적인 장면을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지켜본 10년차 타투이스트 황수경(40)씨가 눈물을 흘렸다. 간절히 바란 일이 눈앞에 펼쳐지자 많은 감정이 해일처럼 한꺼번에 밀려왔다.
“법안이 상정되고, 투표가 시작되고, (본회의장에 걸려 있는) 전광판이 (법안 찬성을 뜻하는) 녹색 불빛으로 가득 차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이제 제 직업도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안도감, 잘못을 바로잡기까지 33년이 걸렸지만 그래도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벅찼어요. ‘이게 정말 되는구나’ 하면서.”
이날 국회를 통과한 문신사법은 2년 뒤인 2027년 효력이 발생한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문신사 국가시험에 합격해서 면허를 가진 사람이 타투(서화 문신)를 포함한 문신 시술(눈썹·입술 문신과 같은 반영구 화장, 두피 문신 포함)을 하도록 하고, 문신업소의 관리·감독 체계를 제도화한 법이다. 이로써 타투이스트(타투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를 포함한 문신사들이 마침내 불법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 굴레를 씌운 건 사법부다. 대법원이 33년 전인 1992년 의료행위 개념을 확장하면서 문신 시술을 ‘의료인이 행하지 않으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로 본 뒤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은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 그러나 흉터 치료 같은 의료 목적 외에 개성 표현 또는 미용 목적으로 문신하는 사람이 늘고 있고, 문신을 예술과 패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등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있으며, 사람들이 병·의원이 아니라 대부분 문신 전문숍에서 시술받는 것이 현실이다. 복지부가 2023년 10월 펴낸 ‘문신 시술 이용자 현황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타투 시술은 전문숍(81.0%)에서 주로 이뤄졌다. 의료기관에서 시술받은 비율은 1.4%에 그쳤다.
이런 문신의 대중화와는 별개로 수사기관과 법원은 의사 면허를 갖지 않은 문신사의 문신 시술을 처벌해왔다. 의료 목적과 무관한 문신 시술을 의료행위로 본 대법원의 해석으로 형벌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 처벌의 그림자는 수많은 문신사의 삶을 짓눌렀다. 2025년으로 6년차를 맞은 30대 타투이스트 정찬우(가명)씨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어느 날 제가 일하는 숍에 경찰관 두 명이 갑자기 찾아와서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어요. 어안이 벙벙했죠. 타투 시술을 하면서 처벌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일을 겪을 줄은 전혀 몰랐어요.” 찬우씨는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돼 법원에서 재판받는 피고인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의료법에는 문신 시술이 의료행위에 포함된다는 구체적 규정이 없다. 그런데도 수사기관과 법원은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 즉 어떤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행위 이전에 어떤 행위가 범죄인지 법률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원칙까지 어겨가며 문신사를 범법자로 만들었다.

2025년 9월15일 서울 강남구 세텍(SETEC)에서 열린 문신산업박람회에서 타투 원데이 클래스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형사처벌은 평소에도 생계 유지가 어려운 타투이스트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타투이스트의 월평균 순소득은 137만원에 불과하고, 약 40%가 불안정한 소득 탓에 부업으로 다른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가 2023년 3월 타투이스트 117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다.(2024년 ‘타투 제도화 방향과 노동시장 과제 모색’ 보고서)
다음은 수경씨의 말이다. “영세하잖아요. 늘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보니 잠자는 시간 빼면 타투 시술이 없는 날도 상담 대기, 시술을 의뢰받은 도안 작업, 에스엔에스(SNS) 게시용 타투 그림 그리기 등으로 하루 12시간 정도 타투 작업 준비와 대기를 하는 데 시간을 써요. 누군가는 타투이스트가 돈을 쉽게 번다 이런 말을 하는데, 살아남는 분이 많지 않은 직업이에요.”
이처럼 문신을 범죄화하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고 타투이스트의 노동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에 타투이스트 노동조합인 타투유니온지회가 2020년 2월 출범했다. 문신사법 제정은 타투유니온지회가 출범 5년여 만에 거둔 뜨거운 성과다.
타투유니온지회 사무장을 맡은 수경씨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불법이다보니 많은 타투이스트가 변심한 고객들의 신고 협박에 시달리는 일이 많다. 타투 시술 전후로 피부에 문제가 없었는데 나중에 일부러 피부에 염증을 내서 시술자에게 돈을 갈취하고 협박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병원에 가서 타투를 지우겠다며 최소가격이 300만~500만원에 달하는 레이저 문신 제거 시술 비용을 요구하는 고객도 있다”고 전했다.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처벌하기 바빴던 우리나라와 달리 다른 주요 국가들은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문신사의 자격 제도와 영업 규제로 관리할 뿐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로 접근하지 않는다. 미국 대부분 주에서는 면허제를 실시하고, 영국도 문신 시술을 하려면 면허를 보유하도록 했다. 프랑스에서 문신 시술업을 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에 있는 지방보건청에 신고해야 하고, 신고할 때 위생교육 수료증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기능을 동시에 하는 일본 최고재판소도 2020년 9월16일 문신 시술 행위가 ‘장식적 내지 상징적 요소 또는 미술적 의의가 있는 사회 풍속’으로 받아들여져 오로지 의사만이 수행할 수 있는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202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의료인 문신 시술 행위 비범죄화에 대한 의견표명’ 결정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 조합원 등 60여 명이 2025년 8월1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신사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화섬식품노조 제공
우리나라에서도 제17대 국회(2004년 5월~2008년 5월)부터 문신사 자격과 업무 범위를 정하고 문신사가 위생·안전관리 교육을 받도록 한 법안들이 ‘문신사법안’ ‘타투업법안’ ‘반영구화장사법안’ 등의 이름으로 꾸준히 발의됐다. 그때마다 발목을 잡은 것이 의료계의 반대였다. 그간 의료계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로 인한 감염 위험과 부작용 우려를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문신사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2025년 8월21일 “졸속 처리” “의료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천만한 입법 시도”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무책임한 입법” 같은 표현을 동원하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시술 태양(행위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양상)에 있어 위해성이 크지 않고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받고 국가가 관리만 잘하면 특별히 보건위생상의 위해 가능성이 적은 시술까지 오로지 의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시술인의 직업 선택과 수행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며 “나아가 일반 국민의 개성 발현의 자유도 침해한다”고 밝혔다. 둘 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에 해당한다.
실제로 의료계는 문신 시술에 관심이 없다. 다음은 한겨레21이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다. 먼저, 2020~2025년 전국 40대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중 학과별 교육과정 교과(임상 실습 포함)에 문신 시술에 관한 교과를 개설하거나 진행한 곳은 한 곳도 없다. 또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의사국가시험을 시행한 1994년 이후로 의사국가시험 필기·실기시험을 통틀어 문신 시술 방법에 관한 문항은 출제된 바가 전혀 없다. 2017년과 2021년 시험에 출제된 총 3개 문항에서 환자 상태에 관한 설명 중 하나로 ‘과거 눈썹 문신 경험’이 사례로 제시됐을 뿐이다.
앞서 복지부는 2021년 기준 문신사 규모를 35만 명(타투 5만 명, 반영구 화장 30만 명), 문신 시술을 받은 사람을 1300만 명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의사 중에 문신 시술을 하는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현직 의사도 인정한 적이 있다. 타투이스트 의사인 조명신 빈센트의원(1999년 문을 연 타투 전문 클리닉) 원장은 책 ‘타투하는 의사’(2022년 출간)에서 “이들을 합법적으로 시술하고 있는 타투이스트, 즉 의사는 열 명 미만”이라고 밝혔다.
감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문신사들은 지금도 보건위생 교육을 꾸준히 받고 있다. “녹색병원 그린타투센터에서 감염관리 교육과 멸균 작업 절차 교육을 이수했고 ‘타투이스트 감염 관리’라는 제목의 책자도 받았어요. 타투 기구 사용 전후로 소독과 멸균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배웠죠. 작업 전 소독·멸균도 중요하지만, 작업 후 타투 시술에 사용한 바늘을 멸균 처리해서 폐기하는 작업도 중요하거든요.” 찬우씨가 말했다.
문신사뿐만 아니라 시술받는 고객도 원했던 문신사법이 제정된 기쁨도 잠시. 법 시행을 앞둔 2년 동안 해야 할 일이 많다. 문신사 국가시험 과목과 시험 방법, 횟수는 물론이고 문신사의 구체적 업무 범위, 문신사가 위생·안전관리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준수해야 할 사항, 면허 취소 또는 면허 정지 기준과 절차 등을 하위 법령(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직역 간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의료 전문가인 의사들이 교육 프로그램 설계, 자격 검증, 사후 관리에 모두 참여해야 한다”는 의협의 간섭도 예상된다.
하지만 끈질긴 투쟁으로 30여 년 만에 음지를 탈출한 타투이스트들은 우려보다 기대감에 벅차 있다. “4년 전 일인데, 기억나는 고객이 한 분 계세요.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분이었어요. 사모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대요. 그 슬픔 때문에 하던 일도 그만두고 1년 동안 방황했다더라고요. 아드님 도움을 받아 저한테 와서 사모님 얼굴을 팔에 새겨달라고 했는데, 우셨어요. 시술을 다 마치고 그분이 우셨어요. 저도 울컥했죠. 그 일로 ‘이런 보람찬 작업을 많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찬우씨의 말이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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