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해 따르게 하는 힘’을 가리킵니다. 차갑게 느껴집니다. 다른 하나는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입니다. 조금은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 사회는 힘을 내세우는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소통을 강조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요즘은 상대방을 억누르는 힘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방에게 몸을 낮출 줄 아는 겸손이 깔린 따뜻한 권위가 주목받습니다.
그런데 2025년 9월10일 열린 최말자(79)씨 재심사건 재판에서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부산지방법원은 그저 차가운 권위만을 내세웠습니다. 이 재심은 사법부가 60년 전에 성폭력 피해자인 최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국가폭력을 바로잡는 재판입니다. 1965년 1월 최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인권침해 가해자가 바로 부산지법입니다. 최씨가 2020년 5월6일에 한 재심 청구를 기각한 법원이기도 합니다.
재판장인 김현순 부장판사는 최씨가 평생을 기다린 재판을 단 1분 만에 끝냈습니다. 법정에 선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법부의 과오를 인정하는 아무런 사과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최씨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노력도 없었습니다. 최씨를 ‘사람’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처리해야 할 ‘사건’으로 보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최씨는 무죄 선고 이후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좀 시원섭섭해예. 아니, 해명을 하든지 사과를 하든지. 무슨 뭐,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몇 마디 하고 무죄를 선고하고. 제가 61년 만에 ‘무죄’라는 이 두 글자를 위해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기분이) 통쾌하고 상쾌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무죄 선고를) 받고 보니까 허망하기도 하고….”
국가폭력 피해자도 이렇게 냉대하는 부산지법인데, 최씨의 재심 결과를 보러 온 방청인들에게는 오죽했을까요. 법정 경위들은 재심 선고가 끝나자마자 다른 사건 재판이 열려야 한다며 방청인들을 법정에서 내쫓기에 바빴습니다. 법원 관계자는 법정 경위들에게 “빨리빨리 (방청인들) 내보내세요!”라고 말하면서 방청인들에게 “옆(법정 양쪽 출입구)으로 빨리 좀 나가주세요!”라고 독촉했습니다. 각지에서 모인 방청인들을 ‘짐짝’ 취급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최씨, 그리고 최씨의 피해 경험을 듣고 그의 곁을 지킨 대학 동문 윤향희씨 이야기를 다룬 한국방송통신대 학보(제49호, 2020년 5월24일)에는 다음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동문은 과정과 정도는 다르지만 성폭력 사건에서 여성에 대한 모욕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며 그 잘못을 바로잡고 싶다고 한다. 권위란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면서.”
부산지법은 그 권위를 제 발로 찼습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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