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가 2025년 5월22일 방문한 인하대 용현 캠퍼스 학생식당 식탁 위에 이 후보를비판하는 문구가 쓰인 태블릿피시가 놓여 있다.(왼쪽) 2025년 9월8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연합뉴스
이준석이 펨코에 ‘포획’됐다는 말의 의미는 이준석이 펨코의 꼭두각시라는 뜻은 아니다. 이준석도 나름 펨코를 약삭빠르게 ‘이용’한다는 점에서 이 ‘포획’은 일종의 상호포획이기도 하다. 다만 담론 주도권을 이준석이 아니라 펨코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준석의 정치에 ‘새로움’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한국형 정치팬덤의 효시 격인 ‘노사모’로 잘 알려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덤 이후 박근혜, 문재인, 이재명 등 최근 대통령을 한 대형 정치인 다수가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었다. 이준석이 다른 정치인과 구별되는 점은, 이준석 자신이 펨코를 포함한 온라인 커뮤니티 ‘헤비 유저’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펨코발 허위정보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쓴다거나, “해줘” 같은 온라인 밈을 공적 자리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모습은 펨코를 포함한 ‘이대남’ 주류 온라인 담론이 이준석을 ‘포획’했음을 예증한다.
이와 관련해 이준석 지지자에서 비판자로 돌아선 시민의 증언이 있다. 최우성씨는 과거 이준석이 ‘성 상납 의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받을 때, 여의도에서 ‘이준석 옹호’ 1인시위를 했던 강성 이준석 지지자였다. 하지만 그는 한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이준석을 직접 만나고 큰 실망과 분노를 느꼈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준석이 다른 팬덤 정치인과 어떻게 다른지를 이렇게 설명한다.1
“커뮤니티 뭐 볼 수야 있죠. 문재인, 박원순, 이재명도 커뮤니티 인증하고 김기현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도 국민의힘 갤러리 인증했습니다. 그런데 지지자가 있는 곳에 정치인이 방문하는 것과 펨준일체가 되는 것은 다릅니다. 펨코 일반 게시글 1분에 한 번씩 새로고침하는 펨코정갤 중독자 이준석처럼요.”
펨코의 정치/시사 게시판 인기글로 선정된 ‘이준석이 펨코 한다는 증거는 많지’와 같은 글을 보면, 펨코 유저들 또한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2 커뮤니케이션학자 김선영은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로 살펴본 ‘이대남 현상’’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진한 글씨는 필자)
“에펨코리아는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신드롬을, 대선 경선 과정에서는 ‘무야홍’ 바람을 일으키면서 20~30대 온라인 여론을 이끌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이 정당이나 이념 중심으로 결집했다기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해줄 것이라고 믿는 인물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이뤘다는 것이다. 이 커뮤니티의 유저들이 현재 가장 관심이 있는 키워드는 ‘공정’과 ‘페미니즘’인데, 이준석 대표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출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것은 과거에 하나의 정당만 지지하거나 특정 인물을 향한 맹목적 팬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3
“이준석 대표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출하고 있다”는 말에 주목하라. 저 말은 곧 커뮤니티가 정치인을 정체성 표출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설명은 그동안 간과돼온 이론적 쟁점을 곧장 제기한다. 바로 ‘정치 팬덤의 주체성’이다. 앞의 논문은 펨코의 구체적 담론 내용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이 지점을 더 이상 깊게 파고들지 않지만, 극우 정치의 동학을 논하는 데 ‘팬덤 주체성’이라는 문제를 더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만약 정치 팬덤이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인 집단이라면, 극우 정치 현상의 분석이나 대응 방안에서도 부차적·주변적 요인으로 취급하면 된다. 정치에서 중요한 주체는 여전히 엘리트 정치인과 정당이므로 이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규율할지만 고민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쩔 것인가? 팬덤이 그저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인 집단이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팬덤이 그저 ‘몸통’에 달린 ‘꼬리’가 아니라 ‘몸통’을 흔드는 ‘꼬리’라면 어쩔 것인가? 아니, 실은 정치인이 ‘꼬리’이고 팬덤이 ‘몸통’이라면?
물론 이러한 관점은 팬덤 영향력 과소평가에 대한 반발이 지나쳐 오히려 과대평가하는 우를 범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팬덤 주체성은 극우 분석에서 진지하게 논의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꼭 극우 정치가 아니라도 오늘날 정치 전반에서 팬덤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추세는 너무나 명확하다. 무엇보다 정치인들 스스로 팬덤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전문가와 일부 시민까지 우려를 표하는 실정이다. 정치평론가 이철희는 2024년 제22대 총선 결과를 놓고 이렇게 평한다.
“특별히 선거 과정에서, 그리고 선거 결과를 통해 확인된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그 ‘사실’의 핵심은 팬덤정치다. 이번 선거에서 팬덤을 거느린 정치인은 성공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조국 대표와 이준석 전 대표가 선거 승리의 주역이 됐다. 이재명 대표는 극심한 공천 파동을 이겨냈고, 조국 대표는 위선자 프레임을 이겨냈고, 이준석 전 대표는 소외의 설움을 이겨냈다. 그들은 대표적인 팬덤 정치인들이다. 팬덤이 그들을 살렸다. 반면에 팬덤이 옅거나 눈에 띄지 않는 이낙연 전 대표, 금태섭 전 의원, 박용진 의원은 낙선·낙천했다.”4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단적으로 말해 과거의 정치 양식과 언론 문법이 지금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시대 변화를 순순히 인정하고 팬덤정치를 현실 정치의 새로운 양식이자 문법으로 수용하면 되는 것일까? 이에 성급하게 답하기 전에 짚어둬야 할 지점들이 있다.
최근 정치학과 정치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팬덤정치는 뜨거운 주제 중 하나다. 관련 논문과 서적도 활발히 출간되는 추세다.(박상훈(2023), 송경재(2023), 이용호(2024), 조재욱·강진욱·김연주(2024)).5
그런데 오래전부터 팬덤을 진지한 학술적 연구 대상으로 분석해온 영역은 따로 있다. 문화연구, 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등을 아우르는 학제간 연구 분야인 ‘팬 연구’(Fan Studies)다. 팬 연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대중문화 팬덤과 팬문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발전시켜왔다. 최근 가장 활발히 연구된 팬덤 중 하나는 케이팝 보이밴드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ARMY)로, 최근 10년간 논문과 관련 서적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왔다.
팬덤정치 연구가 대중문화 팬덤 연구를 피해 가는 건 불가능하다. 단순히 시기적 선행성 때문이 아니다. 팬덤정치가 결국 직면하는 이론적·실천적 난점들, 예컨대 생산자와 소비자, 능동성과 수동성, 지배와 저항 같은 문제들에 대해 가장 밀도 높은 개념적 분석을 제시한 분야가 바로 대중문화 팬덤 연구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핵심적인 이유는, 팬덤정치가 정치 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체성과 자기표현을 근간으로 하는 ‘문화 현상’이라는 점이다.
이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개척자는 미디어학자 존 피스크와 헨리 젱킨스다. 먼저 피스크는 ‘팬덤의 문화경제’라는 선구적 논문에서 텍스트 수용자(Audience)의 ‘저항적 해독’을 강조하며 팬들의 능동성을 체계적으로 개념화했다.6 또한 젱킨스의 기념비적 연구인 ‘텍스트 밀렵꾼들’(Textual Poachers)은 팬들이 미디어 텍스트를 ‘밀렵’하듯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유한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로 설명하고,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나 ‘스타 트렉’ 같은 텔레비전 쇼의 팬들을 단순한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인 문화 생산자로 재정의함으로써 문화연구의 새 장을 열었다.7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활동가들이 2012년 5월1일 미국 뉴욕의 메이데이 행사에서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젱킨스의 초기 팬 연구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참여문화(Participatory Culture)다. 참여문화는 팬들이 단순히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텍스트를 창조하고 공유하는 등 참여를 통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상황을 가리킨다. 젱킨스는 2016년 동료 그룹과 함께 쓴 논문에서 참여문화를 발전시켜 ‘참여정치’(Participatory Politics) 개념을 제기한다. 그는 청년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기존 가설에 반기를 들고, 청년세대가 전통적 정치 참여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주된 근거로 점거운동(Occupy Movement) 사례를 든다. 또한 소셜미디어, 밈, 리믹스 문화 등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만의 정치적 표현과 조직화 방식을 분석하고 팬덤이나 취미 활동에서 시작된 참여 경험이 어떻게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8
대중문화 텍스트 소비에서 청년세대 정치 참여까지 이어지는 젱킨스의 팬덤 연구는 계발적일 뿐 아니라 지금도 팬덤 연구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젱킨스의 연구는 피스크의 것과 함께 묶여 ‘팬덤을 과도하게 상찬하고 낭만화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이보다 더 핵심적인 비판은, 이들의 팬덤 연구가 텍스트 생산과 소비를 지배와 저항이라는 이분법과 너무 쉽게 등치를 시켜버린 탓에 복잡하고 중층적인, 그리고 때로 모순적인 권력의 동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이 글의 문제의식, 곧 정치 팬덤의 주체성에서 어떤 부분을 다시 숙고해야 하는지 환기시킨다. 그것을 최대한 쉽게 풀면 이런 질문이 된다.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정치팬덤은 항상 옳은가?’
1. 박희석, ‘‘이준석 수호 집회’ 주최자는 왜 ‘반(反)이준석’으로 돌아섰나? “이준석씨,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어요”’, 월간조선, 2023년 12월/ 최우성 페이스북,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습니다. 1편’
2. 아담워록, ‘이준석이 펨코 한다는 증거는 많지’, https://www.fmkorea.com/6712029952, 2024년 2월12일
3. 김선영,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로 살펴본 ‘이대남 현상’’, 한국언론정보학보 118(4). p43, 2023
4. 이철희, ‘뉴노멀된 팬덤정치’, 한겨레, 2024년 4월26일
5. 박상훈, ‘혐오하는 민주주의: 팬덤정치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후마니타스, 2023/ 송경재, ‘디지털 시민 정치참여의 강화와 과잉의 딜레마: 정치 팬클럽을 중심으로’, 한국과 국제사회 7(3), 2023/ 이용호, ‘팬덤정치, 네트워크 포퓰리즘인가, 참여의 확장인가?: 한국의 팬덤정치 사례를 중심으로’, 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 72. pp5~48, 2024/ 조재욱·강진욱·김연주, ‘팬덤정치의 민주주의 기제 가능성 검토’, 대한정치학회보 32(3). pp113~138, 2024
6) Fiske, J., ‘The Cultural Economy of Fandom’, In Lewis, L. A.(Ed.), ‘The Adoring Audience: Fan Culture and Popular Media’, Routledge. pp30~49, 1992
7) Jenkins, H., ‘Textual Poachers: Television Fans and Participatory Culture’, Routledge, 1992
8) Jenkins, H., Shresthova, S., Gamber-Thompson, L. Kligler-Vilenchik, N. and Zimmerman, A., ‘By Any Media Necessary: The New Youth Activism’, NYU Press, 2016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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