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사람들은 전부 속고 있으며 나만 진실을 안다는 태도를 묘사하는 이미지를 그려달라'고 지시어를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여섯 개의 가치질서(cité/orders of worth), 곧 ‘시민적 질서’ ‘시장적 질서’ ‘산업적 질서’ ‘영감적 질서’ ‘명성의 질서’ ‘가정적 질서’는 뤼크 볼탕스키와 로랑 테브노가 당대 프랑스 사회에서 일반적 규범의 지위에 오른 가치들로 추려낸 것이다.
‘시민적 질서’는 평등과 연대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이기적 탐욕을 배격하는 가치질서로서, 이를 대표하는 사상가-텍스트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다. ‘시장적 질서’는 경제적 부와 자유, 경쟁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손실을 배격하는 가치질서로서, 대표하는 사상가-텍스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산업적 질서’는 효율과 전문성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비효율을 배격하는 가치질서이며, 생시몽의 ‘산업체제론’이 대표하는 사상가-텍스트다. ‘영감적 질서’는 고유성과 진정성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타성(惰性)을 배격하는 가치질서, 대표 사상가-텍스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이다. ‘명성의 질서’는 명예와 인정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무시를 배격하는 가치질서이며,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대표 사상가-텍스트다. ‘가정적 질서’는 전통과 충성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배신을 배격하는 가치질서이며, 대표하는 사상가-텍스트는 자크베니뉴 보쉬에의 ‘성서에서 도출한 정치학’이다.
이 가치질서들은 갈등이나 분쟁 상황에서 어떤 가치가 더 강력한지(설득력 있는지)를 겨루는 기준이 된다. 물론 현실에는 권력관계의 우열이 엄존하기 때문에 가치질서의 경합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가치질서가 중요한 이유는, 어떤 강제력도 규범적 가치를 매개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안정과 질서를 희구하면서도 그 안정과 질서가 도덕적이길 바란다. 정당화 욕망은 권력욕만큼이나 강렬하다. 그래서 가치질서는 ‘승자의 장식품’이거나 ‘기만의 은폐 수단’에 그치지 않으며, 언급만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가치질서에서 ‘시련’(épreuve/test) 개념이 핵심인 이유도 여기 있다. 각각의 질서는 어떤 시련을 통과해야 정당해지는지를 규정한다. 예를 들어 시민적 질서는 “그 결정이 공공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산업적 질서는 “그것이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을 통과해야 한다. 어떤 기업의 불의에 대한 규탄이 사회적 대의로 인정되려면, 가해와 피해 사실을 적시하는 걸 넘어 사건의 의미가 가치질서를 중심으로 해석·배치돼야 한다. 그 과정이 바로 ‘가치의 시련’(test of worth)이다. 요컨대 비판이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는 시련을 통과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여러 가치질서를 오가며 정당화하기 때문에 가치질서는 현실에서 서로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느 하나가 결정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상황이 흐지부지돼버리는 경우도 있다. 만약 특정 가치질서가 지배적이더라도 그것은 언제든지 반박될 수 있고 대체될 수 있다. 질서를 열망하기에 우리는, 영원히 정당화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볼탕스키의 정당화 이론은 복수의 가치질서가 경합하는 다원주의적 정의론을 통해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이나 계급환원론을 넘어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사회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 이론의 가장 큰 의의는, 사회규범을 지배권력의 기만 또는 허위의식이 아니라 상호 논박되는 경험으로 분석함으로써 평범한 사람들, 즉 일상 행위자에게 비판능력을 돌려줬다는 점이다. ‘어떻게 지배(통치)하는가’에 집중했던 과거의 ‘비판적 사회학’과 달리, 볼탕스키의 ‘비판의 사회학’은 ‘어떻게 비판(저항)하는가’도 조명함으로써 사회학자와 평범한 사람의 인식론적 대칭성을 강조한다.
많은 정치 현상 분석이 대체로 정치 지도자, 엘리트 집단의 행위와 이념에 집중한다. 그 자체로 필요하지만 문제는 지도자와 엘리트가 아닌 일상 행위자를 그저 종속변수로 취급하거나 아예 분석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이는 엘리트의 힘을 과대평가할 뿐 아니라 복잡하고 역동적인 사회적 사건을 엘리트의 음모 내지 그들 간의 갈등 서사로 축약·환원함으로써 사태의 총체적 맥락을 왜곡하기 쉽다.
반면 정당화 이론은 일상 행위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자기 이념과 행위를 정당화하는지 들여다봄으로써 권력 동학을 풍부하게 설명할 수 있다. 앞서 ‘극우는 엘리트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제1576호 참조) 그러면서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이른바 ‘표현대중’의 영향력이 강해졌을 뿐 아니라 정치 팬덤이 현실정치를 흔드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특히 극우주의나 파시즘은 강력한 대중운동이기도 하기 때문에 엘리트만이 아니라 대중의 생각과 태도를 분석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나아가 일상 행위자의 정당화는 극우 현상을 재생산하는 기제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극우에 저항하고 민주주의 퇴행에 맞서는 사회적 역량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일상 행위자의 비판능력은 극우 ‘분석’만이 아니라 극우의 ‘대안’으로서도 진지하게 고려돼야 한다.
정당화 이론은 일상 행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그들을 과도하게 낭만화하거나 과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당화 이론 속 일상 행위자들은 과거 한국의 민주화 투쟁 시기 이른바 ‘운동권’ 서사에서 숭고하게 묘사되는 ‘민중’이나,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과정에서 주역으로 제시되는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다르다. 볼탕스키가 묘사하는 일상 행위자는 비유컨대 ‘진실의 담지자’라기보다 ‘불안한 변호인’에 가깝다. 특별히 무지하거나 저속하지 않지만 특별히 박식하거나 위대하지도 않다. 사회학자의 인식론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일상 행위자의 도덕적 지위를 격상시켜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볼탕스키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브뤼노 라투르는 정당화 이론에 대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누구의 정체도 폭로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서로를 고발하게 되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말했다.(제1611호 참조)

‘사람들은 전부 속고 있으며 나만 진실을 안다’는 생각은 진부하다. 이데올로기는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다. 2025년 3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반대 시위를 중계하는 극우 유튜버들. 공동취재사진
그렇다면 정당화 이론의 한계는 무엇일까? 우선 여섯 개의 가치질서가 과연 보편적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볼탕스키가 제시한 가치질서들은 프랑스나 서구의 사상적 전통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나 서구를 벗어난 지역에서는 여섯 개의 가치질서가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가치질서가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한 분석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볼탕스키는 훗날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을 설명하면서 ‘프로젝트’ 가치질서를 추가하게 된다.
한편으로 정당화 이론이 행위자의 비판능력의 대칭성을 강조하느라 오히려 권력의 비대칭성을 간과해버린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다만 공정히 말하면 볼탕스키와 동료들은 권력의 비대칭성을 간과했다기보다 그것이 ‘정당화 압력’(pressure of justification)의 비대칭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한 것처럼 보인다.
정당화 압력이 비대칭적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이데올로기는 마치 자연 질서처럼 느껴져서 정당화가 거의 요구되지 않지만, 어떤 이데올로기는 필사적으로 정당화돼야 한다는 뜻이다. 문학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의 경구,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을 떠올려보자.1 저 말은 흔히 오늘날 대중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저 문장은 ‘자본주의의 종말에 대한 상상’과 ‘세계의 종말에 대한 상상’이, 즉 이데올로기들이 서로 경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는가, 즉 더 정당화되는가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또한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도덕성 기반 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좌파 성향이냐 우파 성향이냐에 따라 ‘옳음’에 대한 가치판단 모듈이 전혀 다를 수 있다.2 혹은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처럼 인간의 가치판단은 은유에 기반한 직관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다.3
하이트와 레이코프의 이론은 각각 전혀 다른 관점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의 가치판단에서 ‘감정’이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스피노자를 비롯해 루이 알튀세르, 피에르 부르디외, 주디스 버틀러 등의 이데올로기 이론가들이 감정·습관 등의 신체성을 논의의 중심에 놓는 데 반해, 볼탕스키는 감정적·수행적 층위보다 담론적·의미론적 층위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다.
‘사람들은 전부 속고 있으며 나는 그 흑막을 알고 있다!’는 폭로의 형식은 오늘날 너무나 진부해져버렸다. 진부함 이전에 애당초 이데올로기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만일 여전히 이데올로기 비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어째서 어떤 이야기는 열심히 정당화해야 하는 반면 어떤 이야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지,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해명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유무(有無)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定度)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가치질서들의 경합에서 우위를 점하고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는가는 볼탕스키가 말한 ‘가치의 시련’, 즉 의식적 차원의 문제로만 설명될 수 없다. 거기에는 한편으로 전(前)의식적 차원이 강하게 개입된다. 관행이나 습관, 무엇보다 감정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무엇이 더 정당한 가치질서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담론적·의미론적 주체’이지만, 동시에 이미 신체에 새겨진 특정한 경로(예컨대 감정과 습관)를 따르기 위해 가치질서를 사후 정당화 수단으로 동원하는 ‘감정적·수행적 신체’다.
이러한 의식적·전의식적 차원을 모두 고려하면,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비유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주체를 세계에 정박하는 닻이다.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극우가 ‘가치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해도 강하게 작동하고 유지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설령 남을 설득할 수 없어도 나를 일어서게 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결집한다.
이론적 논의는 여기서 일단락하자. 다음 회부터는 한국의 극우 서사가 어떤 가치질서를 중심으로 만들어져왔는지를 살펴본다.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1. Jameson, F., ‘The Seeds of Time’, Columbia University Press. xii, 1994
2. 조너선 하이트, 왕수민 옮김,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웅진지식하우스, 2014
3. 조지 레이코프, 유나영 옮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삼인, 2006 / 조지 레이코프·마크 존슨, 노양진·나익주 옮김, ‘삶으로서의 은유’, 박이정,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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