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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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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을 피하면서 투쟁에 임한다는 것

우리 안의 극우 26 극우 서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기억과 서사를 둘러싼 투쟁은 결코 피할 수 없다”
등록 2026-05-23 11:47 수정 2026-05-27 16:11
미국 뉴욕타임스 탐사전문기자 니콜 해나존스의 2019년 특집기획 ‘1619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 한 장면.

미국 뉴욕타임스 탐사전문기자 니콜 해나존스의 2019년 특집기획 ‘1619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 한 장면.


극우 서사 분석은 왜 필요한가? 이야기, 곧 서사(narrative)는 허구적 구성물이다. 그러나 극우 서사 분석은 단순히 극우 서사를 수집해 허구성과 오류를 지적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서사 연구자들은 서사가 인간의 인식 및 행위, 나아가 삶의 기본 조건임을 강조해왔다.

심리학자 도널드 폴킹혼은 “인간 존재 속에 의미를 생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형식 중의 하나가 서사”라고 주장했다.1 철학자 폴 리쾨르는 인간의 시간 경험이 서사를 통해 조직된다며 ‘서사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 개념을 제시했다.2 또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진리의 화자’라기보다 서사를 통해 ‘이해 가능성’을 추구하는 존재, 즉 “이야기하는 동물”이라 말했다.3

서사를 통해 극우 담론을 분석할 때 그 목표는 서사의 완벽한 소거에 있지 않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앞선 이론적 논의를 통해 우리는 기만과 허구에 대한 폭로만으로 이데올로기 문제가 해소되지 않음을 안다. 서사를 분석하는 이유, 나아가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이유는 타인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나의 진리성을 확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실용적 차원에서 그 목적은 진리의 발견이라기보다 차라리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이다. 요컨대 우리는 각자의 서사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서사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는 내재적 비판, 곧 ‘서사의 상대화’를 통해 공론의 공간을 확보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할 수 있다.

‘서사의 상대화’에 필요한 도구가 바로, 이전에 살펴본 이데올로기와 가치질서(cité/orders of worth) 개념이다.(제1613호 참조) 층위를 따지면 이데올로기→가치질서→서사 순으로 구체화·표면화되며, 반대로 말하면 서사→가치질서→이데올로기 순으로 추상화·잠재화된다고 할 수 있다. 서사는 사회의 상징적 이야기로 유통되기 위해 좀더 매끄럽게 다듬어진 형태이기 때문에, 가치질서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그 의식적·전의식적 의미에 대해 더욱 풍부한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모든 나라는 자국 역사가 정의롭다고 믿는다”?

 

지금부터는 구체적 사례로 들어가 극우 서사 중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뉴라이트 서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뉴라이트를 대표하는 이론가이면서 경제사학자인 이영훈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잘못된 서술 때문에 많은 한국인이 “잘못된 역사 인식”에 갇히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일제하 식민시기에 민족의 해방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세우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엉뚱하게 일제와 결탁하여 호의호식하던 친일세력이 미국과 결탁하여 나라를 세우는 통에 민족의 정기가 흐려졌다는 것”4이다. 뉴라이트 서사에서 먼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자국 역사를 바라보는 모종의 독특한 스탠스다. 이영훈은 이렇게 주장한다.

 

“한 나라가 잘못 세워졌다는 주장이 나라 밖이 아니라 나라 안에서, 그것도 명망 있는 학자들에 의해서, 심지어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음은 다른 나라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참으로 특이한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이 지구상에 어디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모든 나라는 자기 나라가 정의로운 역사에 기초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5

이 주장의 반례만으로도 책 한 권을 넉넉히 쓸 수 있다. 20세기 후반 많은 나라에서 나타난 ‘역사수정주의’(historical revisionism)의 상당수는 자기 나라 역사의 부정적인 면이 과장되거나 날조됐다고 강변한다. 일본의 이른바 ‘자학사관’ 논란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우익과 역사수정주의자들은 20세기 초 군국주의로 나아가 아시아 각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끝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자국 역사에 대한 성찰적 서술을 ‘자학적 역사관’이라 비난해왔다.

 

정도와 양상은 다르지만 러시아나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쉽게 관찰된다. 오히려 이영훈의 주장, “모든 나라는 자기 나라가 정의로운 역사에 기초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야말로 특수한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발견되는 예외적 현상이다.

 

미국의 ‘역사 전쟁’

 

정치학자 차태서는 미국의 건국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다른 서사를 “두 개의 미국, 두 개의 신조”라는 말로 요약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미국 역사를 둘러싼 두 가지 테제가 경합해왔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에 토대를 둔 미국적 신조의 ‘테제’”(=보편주의적 시민민족주의)와 “반자유주의에 기반한 미국적 신조의 ‘안티테제’”(=특수주의적 종족민족주의)의 경합이 그것이다.6

전자는 이른바 “자유주의 합의사학”으로서, 일찍이 알렉시 드 토크빌이 관찰한 신생국가 미국의 이미지, 즉 존 로크가 꿈꾼 고전적 자유주의 공동체를 신대륙에서 실현한 과정을 미국의 본질적 정체성으로 확정한다. 이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영국이라는 봉건 체제와 인습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연합을 구성하고 이를 독립선언문과 연방헌법으로 명시했다는 서사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주의적 서사에 반기를 든 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미국 역사가 하나의 단일한 흐름이 아니라 이질적 요소가 갈등해왔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복수 전통론’의 접근법(multiple traditions approach)이다. 이 접근법에 따르면 미국에는 인종, 종족, 젠더와 같은 정체성을 중심에 놓고 사회적 위계를 만드는 반동적 경향이 초기부터 존재해왔다. 이는 특히 백인들만의 기독교 국가라는 “상상된 원형”을 보존하려는 반근대적 움직임으로 나타났고, 차태서에 따르면 “국가의 ‘영혼’을 둘러싼 근본적 갈등을 야기했다”.7

갈등은 학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미국 제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은 2019년 대선 캠페인 기간 내내 도널드 트럼프로 대변되는 반자유주의적 국가 정체성 서사에 맞서 자유주의적 국가 정체성 서사를 대비시켰다. 그는 2017년 샬러츠빌에서 극우주의자들이 일으킨 충격적인 폭동과, 무고한 흑인 청소년 트레이번 마틴이 무참히 살해되며 촉발된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언급하면서, 현재가 미국 남북전쟁 당시와 유사하게 “국가의 영혼을 둘러싼 전투”가 발생하는 시기라고 규정했다.

“국가의 영혼을 둘러싼 전투”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었다. 뉴욕타임스 탐사전문기자이며 퓰리처상 수상자인 니콜 해나존스는 2019년 ‘뉴욕타임스 매거진’ 특집기획 ‘1619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는 미국에 흑인 노예 20여 명이 도착한 1619년이 미국이 공식적으로 건국된 해인 1776년만큼 중요하며, 미국 역사가 흑인 노예에 대한 착취에서 시작된 이른바 ‘노예주의’(slavocracy)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즉, 연방헌법 전문에 나오는 “우리 인민”(We the people)의 범주에 어떻게 노예가 배제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역사적 차원에서 설명한 것이다. 이 기획은 학계만이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설명한 미국의 ‘역사 전쟁’은 국가 정체성 서사가 고정된 게 아니라 늘 갈등과 경합 과정에 있음을 증명한다. 이영훈을 비롯한 뉴라이트 서사의 근본적 오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개별 사건들에 대한 해석 이전에, 자국 역사에 대한 서술이 무조건 긍정적이고 단일해야 한다는 독단에 사로잡혀 있다.2

 

2024년 8월17일 티브이(TV) 조선 ‘강적들’

2024년 8월17일 티브이(TV) 조선 ‘강적들’


 

‘서사 투쟁’을 피할 수는 없다

 

2024년 정치인 이준석이 종편방송에 나와 뉴라이트를 맹비난한 적이 있었다. 뉴라이트가 과거사나 국가 정체성 이슈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왼쪽에 있다가 넘어와가지고 굉장히 뿌리가 약하니까 세게 하는 분들이다. 그러니까 역사밖에 건드릴 게 없는 거다.” “지금은 민생 이슈로 승부 봐야 되는데 역사 논쟁으로 승부 보려고 하는데,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같이 나이가 들어서 아는 게 이거밖에 없다.”8

현재의 민생 이슈를 제쳐두고 과거 역사만 이야기하는 것이 물론 칭찬할 일은 못 된다. 하지만 이준석의 발언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주장이다. 국가 정체성 서사는 정치의 가장 중요한 전장의 하나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극우 정치세력은 현실의 문제를 규정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기하는 준거점으로 국가 정체성 서사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다. 비록 혐오와 차별로 얼룩진 허구일지라도, 극우는 세계의 인식론적 지도와 구체적인 목표를 대중에게 제공하고 있다. 반면 기득권 중도자유주의 세력의 서사는 갱신되지 못한 채 탈역사적 시장주의와 개인화된 도덕주의에 침전되어버렸고, 급진좌파는 정치적 생존이 불투명할 정도로 무기력하다.

서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사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혀 있을 뿐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는 ‘서사 투쟁’, 정확히 말해 ‘기억과 서사를 둘러싼 투쟁’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이는 또한 공동체 기억과 서사 속에 담긴 가치질서, 곧 무엇이 더 정당한 가치인지를 놓고 끝없이 투쟁해야 함을 의미한다.

다만 ‘서사과잉’은 피해야 한다. 서사과잉은 “사실에 바탕해서 서사를 엮어내는 게 아니라, 서사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사실을 욱여넣는” 것이다.9 결국 서사를 상대화한다는 것은 서사과잉을 피하면서 서사 투쟁에 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국뽕’ 서사 같은 무조건적 긍정성이나 편집증적 음모론들은 피로와 냉소로 귀결하기 마련이다. 서사의 설득력은, ‘도파민 터지는 드라마틱함’보다는 기억과 서사에 담긴 가치질서에서 나온다.

서사가 정체성에 직결된 것일 때, 최근 미국이 보여주듯 치열한 논쟁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준석의 발언은 금세 잊히고 사라졌지만, 뉴라이트의 서사는 20년째 호출되고 있다. 뉴라이트는, 정치적으로는 무능했을지 몰라도 정체성 서사가 사회정치 담론의 급소라는 사실을 어떤 우익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1. 도널드 E. 폴킹혼, 강현석 외 옮김, ‘내러티브, 인문과학을 만나다’, 학지사, 369쪽, 2009

2. 폴 리쾨르, 김웅권 옮김, ‘타자로서 자기 자신’, 동문선, 218~238쪽, 2006

3.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이진우 옮김, ‘덕의 상실’, 문예출판사, 318쪽, 1997

4. 이영훈, ‘대한민국 이야기: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 기파랑, 18~19쪽, 2007

5. 이영훈, 같은 책, 32쪽

6. 차태서, ‘30년의 위기: 탈단극 시대 미국과 세계질서’,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47~249쪽, 2024

7. 차태서, 같은 책, 250쪽

8. ‘정치시그널’, 채널A, 2024년 8월13일 / ‘강적들’, TV조선, 2024년 8월17일

9. 박권일, ‘서사과잉: 조기숙씨의 경우’, 한겨레, 2017년 6월21일 / 박권일, ‘서사과잉: 김어준씨의 경우’, 한겨레, 2017년 7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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