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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반북’ 담론은 어쩌다 ‘반중’ 담론으로 전환됐나

일베와 사뭇 달랐던 ‘다문화정책반대’ 카페… 18년 전, 합리적·소통적 포즈 취하며 ‘외부의 타자’ 향해 반감의 포문 열어
등록 2026-07-16 20:44 수정 2026-07-22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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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예멘 난민 취업설명회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예멘 난민들. 한겨레 자료

2018년 6월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예멘 난민 취업설명회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예멘 난민들. 한겨레 자료


 

극우세력에는 무한동력 내지 영구기관 같은 장치가 있다. 그 장치의 이름은 ‘타자’다. 극우는 ‘외부의 타자’, 예컨대 이주노동자와 난민이 ‘우리’의 안전과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강변한다. 이뿐만 아니라 극우는 ‘내부의 타자’, 곧 ‘빨갱이’ ‘퀴어’ ‘장애인’ 등이 평등이니 다양성 같은 쓸모없는 이념으로 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을 가로막는다고 비난한다. 장치는 거의 시공을 초월한 마술처럼 잘 작동했다.

20세기 인류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통해, 이 장치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경험했다. 그리고 21세기의 인류는 다시 이 장치가 많은 나라에서 일제히 부활하는 오싹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프랑스의 국민연합(RN), 이탈리아의 ‘이탈리아의 형제들’(Fdl), 오스트리아의 자유당(FPÖ) 등 극우세력은 국가권력을 장악했거나 원내 제1당이거나 최소한 주류 정당으로 안착했다. 한국에서는 극우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회에 군대를 보냈고, 계엄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 도발을 유도했으며, 그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법원을 습격했다.

 

그간 ‘내부의 타자’에 초점 둔 한국 극우 분석

 

한국의 극우를 논할 때,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부의 타자’보다 ‘내부의 타자’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서유럽이나 미국보다 난민·이주민 규모가 작았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외부의 타자’가 한국 극우의 관심 밖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냉전 시기에 북한은 한국 극우 및 기득권 세력에 핵심적인 ‘외부의 타자’였고 그 존재는 진보좌파를 ‘내부의 타자’로 탄압하는 결정적 빌미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20년 사이 북한이라는 타자의 위상은 예전과 달라졌다. 북한과 남한의 체제 경쟁이 완전히 무의미해지고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올라서면서, 한국 극우 담론의 적대 구도 역시 전면적으로 변하게 된다. 과거의 반북-반공주의는 이제 혐중-반공주의로 전환됐다.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90년대부터 급격히 진행된 한국의 산업구조 변동은 전통적 극우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외부의 타자’를 극우 담론의 중심으로 끌어오게 된다. 바로 이주민·난민이다. 마침내 한국의 극우 담론이 미국·유럽의 극우 담론과 닮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분명히 해둬야 할 게 있다. 한국에서 이주민·난민 혐오가 크게 가시화된 시기는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혐오 담론이 만들어지고 확산된 시점은 그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주민·난민이라는 ‘외부의 타자’를 향한 반감은 나름의 논리와 정당화 체계를 가진 담론으로서 온라인 공론장에서 끓고 있었다. 예멘 난민 사태는 이를테면 오랫동안 응축된 용암이 일거에 분출된 사건이었다. 용암은 극우 지도자가 아니라 온라인 대중으로부터, 즉 아래로부터 만들어졌다.

 

내전을 피해 예멘을 탈출한 뒤 난민 신청을 하고 제주에 머물고 있는 자말과 그의 큰딸 살와(오른쪽)가 2018년 5월7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내전을 피해 예멘을 탈출한 뒤 난민 신청을 하고 제주에 머물고 있는 자말과 그의 큰딸 살와(오른쪽)가 2018년 5월7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여기서는 아래로부터 자생한 온라인 극우 담론의 구체적 사례로 ‘다문화정책반대’ 카페를 살펴본다. ‘다문화정책반대’ 카페는 2008년 6월24일,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커뮤니티이다. 카페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다문화는 후진국의 값싼 인력을 대량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가진 자들의 논리입니다. 후진국의 값싼 인력과 우리 서민을 저임금 경쟁시키려는 자본가들의 음모입니다. 후진국의 값싼 인력은 우리 가난한 서민에겐 재앙입니다. 350만의 실업자와 1천만의 저소득층은 어떻게 합니까?”

한때 회원 수만 명이 활발히 소통했던 ‘다문화정책반대’ 카페는 2026년 현재, 회원수가 1만여 명으로 줄었고 운영자도 없어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가 부각된 2010년대 초까지, 이곳은 온라인에서 극우 담론이 가장 활발히 생산·유통되던 커뮤니티였다. 따라서 이곳은 한국의 초기 넷우익 담론의 양상과 내용을 파악하는 최적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초기 넷우익 담론 파악에 최적

 

‘다문화정책반대’ 카페가 중요한 이유는 단지 역사성에만 있지 않다. 이곳이 특별히 의미 있는 것은 극우화의 배경에 있는 물질적 조건, 즉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으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노동’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열악한 처지로 내몰린 미국 노동계급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노동자·시민으로서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새로운 우파로 각성하는 과정을 추적한 바 있다.1 ‘다문화정책반대’ 카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감정도 이와 유사한 분노와 상실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고 추출되는 극우화의 계기들이 한국에서는 어떤 현안을 통해 극우 담론으로 가공되는지, 구체적이고 명징한 어휘들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다문화정책반대’ 카페는 지식인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대중의 언어로 비판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그 논조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들에 비해 합리적이고 소통지향적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노동하는 서민의 입장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상대적으로 집중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일베의 담론에만 과도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여온 언론 및 학계의 ‘어떤 편향’을 상당 부분 교정해줄 수 있다.

 

다음카페 ‘다문화정책반대’ 화면 갈무리.

다음카페 ‘다문화정책반대’ 화면 갈무리.


지금부터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다문화정책반대’ 카페가 활성화됐던 시기인 2010년 12월에 작성된 분석에 기초하고, 일베 출현과 이른바 혐중 정서 확산 이후 변동사항을 다소 반영했다.2 분석 당시 ‘반이주 담론’으로 명명됐지만 이 글에서는 ‘반다문화 담론’으로 바꿔 부르기로 한다. 반다문화 담론의 전반적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 내용을 유형별로 분류했다. 분류 기준은 분석 시점인 2010년 12월4일에 커뮤니티 최다 조회 게시물에서 키워드를 추출해 이 키워드가 들어간 게시물의 양을 각각 측정한 결과다. 이를 통해 크게 3개의 중심담론과 4개의 주변담론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중심담론은 ‘민족’ ‘경제’ ‘치안’ 담론, 주변담론은 ‘종교’ ‘반자본주의’ ‘반엘리트주의’ ‘보건’ 담론이다.

이 담론 추출 방식은 키워드끼리의 중복이나 연관을 엄밀히 반영하거나 가중치를 두지 않았기에 일정 정도 자의성을 피할 수 없으나, 극우 담론의 하나로서 반다문화 담론의 대체적인 경향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다만 2026년 시점에서 업데이트해야 할 핵심어가 하나 있다. 바로 ‘중국’이다. 2010년 12월 시점에도 이미 ‘중국’ 키워드로 검색된 게시물은 중심담론에 들어가도 무방할 정도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상당수는 ‘민족’ 키워드와 중복되는 게시물이었고 내용 역시 주로 동북공정에 대한 것이 많았기에 최초 분석 시점에서는 별도의 중심담론으로 분류하기보다 중심담론인 ‘민족담론’의 하위 유형으로 분류했다.

 

민족담론이 어쩌다 혐중담론으로

 

그런데 상황이 크게 변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른바 혐중담론이 급격히 퍼져나갔고, 2020년대 들어서는 기성 언론이 관련 기사를 쏟아낼 정도로 혐중은 거대한 사회현상이 됐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다문화정책반대’ 카페에서도 이 변화는 명백히 관찰된다. 2010년대 이후부터 2026년 현재에 이르는 기간 동안, 중국(혐중) 관련 게시물은 다른 중심담론인 ‘민족’ ‘경제’ ‘치안’ 담론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급증했다. 10여 년 사이 혐중담론은 극우의 중심담론 수준을 넘어 압도적인 지배담론이 된 것이다. 이제부터 반다문화 담론을 주변담론, 중심담론, 혐중담론 순서로 살펴보자.

 

다음카페 ‘다문화정책반대’ 화면 갈무리.

다음카페 ‘다문화정책반대’ 화면 갈무리.


반다문화 담론에서 주변담론은 ‘반자본주의’ 담론, ‘반엘리트주의’ 담론, ‘종교’ 담론, ‘보건’ 담론으로 세분된다. 이들 담론은 중심담론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거론되며 ‘반자본주의’와 ‘반엘리트주의’ 담론에서 알 수 있듯 이념적 급진성을 띠기도 한다. 이는 ‘좌파 포퓰리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극우 담론은 때로 ‘반자본주의’ 담론이 된다. 예컨대 ‘인종차별과 불법체류 문제와 자본의 논리’라는 글은 이렇게 주장한다.

“자본의 이익이 극대화될수록,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한 국가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로 점점 더 확대될 것이다. (…) 불법체류자들 앞에서도 인권이라는 인간성의 가면을 뒤집어쓴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사람들의 감정적 대응을 보며 크게 비웃고 있음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사실 우리가 싸워야 할 진정한 적은 시장윤리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착취하고 위협하는, 자본의 윤리를 망각해버린 ‘투기자본과 시장만능주의자들'인 것이다.”

이런 글은 ‘다문화’ 논리가 시장주의와 기업의 무한한 이윤 확장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는 현실을 예리하게 지적한다는 점에서, ‘관용’과 ‘다문화’가 어떻게 제국주의적 착취를 정당화하는지를 보여준 정치철학자 웬디 브라운의 책, ‘관용: 다문화 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Regulating Aversion: Tolerance in the Age of Identity and Empire)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반엘리트주의’ 담론은 엘리트가 자신들의 ‘철밥통’을 보호하면서 ‘다문화’라는 허울 좋은 말로 서민들만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현실을 고발한다. ‘무경쟁 한국 엘리트, 초경쟁 한국 서민’ ‘한국의 다인종화 누구에게 가장 이익인가?’ 등의 글에서는 엘리트 또한 무한경쟁으로 내몰려야 한다는 논리가 제기된다.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모두가 공평하게 고통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고통의 공정론’이다.

 

엘리트도 공평하게 고통받아야 한다

 

‘종교’ 담론은 서남아시아 출신 무슬림 이주민들을 겨냥한 것으로 대부분 이슬람교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담론이다. ‘이슬람 세계화의 단계별 전략’ 같은 글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르면 “한 나라에서 무슬림이 1% 미만일 때는 평화를 사랑하는 소수그룹을 지향하며 수면 밑에 잠복(1단계)”해 있다가, “무슬림 인구 20% 넘는 것을 기점으로 폭동과 소요사태가 시작(4단계)”되고, “무슬림 인구가 60%를 넘어서면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박해하고 인종청소가 시도(6단계)”되고, “무슬림 인구 100%가 되면 국가 최고법 헌법에 우선하는 신정일치체제를 구현(8단계)”한다. 그리고 “멀지 않은 한국 이슬람화는 2020년”이라는 예언으로 글이 마무리된다.

‘보건’ 담론은 이주민·난민이 유입되면 과거에 없던 질병이 창궐할 것이라는 등 건강·위생·보건 불안을 자극한다. 예를 들면 ‘보건당국에서 전염병 수입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올립니다’ 글이 대표적이다. “몇 년 전부터 후진국형 전염병이 크게 늘어난 사실은 방송 등을 통해 알고 계실 겁니다. 머릿니가 갑자기 급격히 불었다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지역들, 볼거리 유행, 정말 공교롭게도 외국인들의 급격한 유입 시기와 겹치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성해방구 같은 글 보면 정말 두려운 지경입니다. 한국 내에 에이즈가 얼마나 급격히 늘고 있을까요?”

다음회에선 ‘다문화정책반대’ 카페의 중심담론을 살펴본다.

 

1. 앨리 러셀 혹실드, 이종민 옮김, ‘도둑맞은 자부심’, 어크로스, 2025

2. 원자료는 필자의 미발표 논문 ‘한국의 반이주 담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이며, 논문의 편집요약본은 공저서 ‘우파의 불만’(이택광·박권일 외, 2012)에 ‘뉴라이트에서 네오라이트로? 한국의 반이주노동 담론 분석’ 제목으로 실렸다.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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