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11월7일 뉴라이트전국연합 창립대회 모습. 한겨레 자료
뉴라이트 서사란,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에 대한 서사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일본에 의해 낡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편입될 수 있었으며, 그 근간은 자본주의 및 반공자유주의이다.’ 뉴라이트 서사 대부분은 이 문장에 모두 수렴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영훈은 이렇게 적었다.
“20세기의 한국사는 나라를 빼앗겼다가 독립운동으로 다시 나라를 되찾았던 역사만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문명사의 일대 전환이 있었다. 중국문명권에서 이탈하여 서구문명권으로 편입된 역사가 20세기 한국의 역사다. 유교문명권에서 기독교문명권으로, 대륙농경문명에서 해양상업문명으로의 일대 전환이 있었던 것이다. (…)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으로 자유시장체제를 국체(國體)의 기본으로 하여 출발했다.”1
뉴라이트 서사는 기존 서사들에 대한 일종의 안티테제로 제시된 대항서사다. 뉴라이트가 논적으로 삼는 대상은 크게 두 부류인데, 하나는 이른바 진보사관 및 진보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으로 보수세력으로 불린 ‘올드라이트’다. 그중에서 주적이라 할 만한 대상은 역시 진보세력이며 이들의 역사관을 상징하는 텍스트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다.2
뉴라이트가 가장 공들여 타격한 지점은 ‘일제 식민지 수탈론’이었다. 뉴라이트에 따르면, 진보 진영 정치인과 학자들이 오랫동안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해 잘못된 관점과 지식을 유포해왔고 그 결과 한국인 다수가 과거의 역사에 대해 “조작된 기억”을 주입당했다는 것이다. 이영훈은 이렇게 썼다.
“대중의 집단기억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일 수도 있지만 특정 이해관계 집단이나 정치가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조작되어 대중에게 주입된 것일 수도 있다. (…) 2001년에 발행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보면 ‘일제는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철저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을 억압, 수탈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 거두절미하고 말한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교과서를 쓴 역사학자들이 지어낸 이야기이다.”3
‘일제의 수탈’이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면 실제로는 어땠을까. 이영훈은 자신의 연구 분야인 조선 후기 경제사 관련 자료를 토대로 ‘식민지근대화론’을 제시한다.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식민지 미화론’이 전혀 아니며 “진정한 의미의 수탈과 차별이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벌어졌는지 제대로 보자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즉, 수탈과 차별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조선인 자신이 스스로 변하고” “조선인의 소득도 커지고 있었다”는 점을 명확히 봐야 한다는 것이다.4
‘식민지근대화론’은 뒤에서 상세히 논의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선 뉴라이트 서사가 이중으로 중첩된 것임을 확인해두자. 즉, 뉴라이트 서사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이야기면서 동시에, 진보세력이 대중에게 “조작된 기억”을 주입한 이야기이다. 이는 대항서사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하다. 주류서사와 달리 대항서사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잘못됐을 뿐 아니라 왜 그렇게 잘못된 이야기가 주류서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포함한다.
대항서사이자 이중서사라는 특징은 강력한 기능적 유용성을 지닌다. 이런 서사 양식을 통해 뉴라이트는 ‘기득권의 저항자’이자 ‘억압된 진실의 폭로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뉴라이트는 일본군 ‘위안부’나 평등주의 운동 등 기존 약자/피해자/저항자 집단의 공익성이나 도덕성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기존 강자/가해자 집단이 부당하게 비난받았음을 부각하는데, 이는 오늘날 극우의 공통된 전술 중 하나다.
극우단체 티파티의 활동가 마이클 프렐은 ‘언더도그마’(underdogm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약자(underdog)는 선하고 강자(overdog)는 악하다’는 생각이 편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진보 진영의 약자 옹호를 비판했다.5 언어학자 루트 보다크는 오스트리아 극우 정당에 대한 비판적 담론 분석을 통해 그들이 ‘규범 및 금기 위반’(transgressing norms and taboos), ‘희생자-가해자 전도’(victim-perpetrator reversal) 등의 방식으로 극우 담론을 정상화·주류화한다고 설명했다.6
그다음으로 ‘대한민국의 근간은 자본주의와 반공적 자유민주주의에 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이에 대해 이영훈은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으로 자유시장체제를 국체(國體)의 기본으로 하여 출발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국체’란 국가의 주권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른 국가의 형태를 뜻한다.
그런데 최초의 대한민국 헌법이라 할 제헌헌법이나 현행 헌법, 즉 1987년 헌법을 보면 대한민국의 국체는 명확히 “민주공화국”, 즉 ‘민주공화정체’로 규정돼 있다.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도 국체로서의 자본주의나 시장체제는 언급되지 않는다. 또한 많은 헌법학자와 역사학자가 공통으로 지적하듯이, 1987년 헌법에 명기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언급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반대로서 통상 쓰이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의미가 아니라 문언 그대로 ‘자유롭고 민주적’이란 뜻이며, 헌법 제119조(경제민주화 조항)에 반영된 평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7
국체에 관한 뉴라이트 서사는 이러한 학계의 주류 입장과 대중적 상식을 부정하고 반박하기 위해 재구성된 것이다. 특히 제헌헌법 및 현행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건립” 시점인 1919년 3월1일을 부정하고,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일을 건국 시점으로 주장하는 이른바 ‘건국절’ 논란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 영웅화 등의 시도는 모두 대한민국이 기원에서부터 자본주의(자유시장)와 반공주의를 미리 합의한 것처럼 연출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이다.
원래 한국에는 광복절, 제헌절, 정부수립일은 있어도 애초에 ‘건국절’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헌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명시돼 있고, 1948년 9월1일 대한민국 최초의 관보에는 대한민국 30년 9월1일로 발행일자가 찍혀 있다. 또한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2006년 이영훈이 쓴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 제하의 신문 칼럼이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고, 이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뉴라이트가 현실 정치권력과 밀착하면서 이른바 ‘건국절’은 큰 사회적 갈등에 휩싸인다.8 ‘건국절’을 제정하자는 뉴라이트의 근거는 헌법이 아니라 국가 개념의 형식 요건에 초점을 둔다. 국가가 성립하려면 국민·영토·주권의 3대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는 그 요소를 갖추지 못했으며 따라서 건국일은 국가의 3대 요소가 모두 완비돼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15일이라는 것이다.

2019년 이승만TV에 출연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이승만TV 화면 갈무리
대한민국 건국 시점에 대해서는 학계에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다만 국체와 관련한 뉴라이트 서사가 지닌 결정적 문제는 ‘건국절’ 같은 개별 사안 해석의 타당성 차원을 넘어선다. 뉴라이트 서사가 이론적 정합성을 잃는 결정적 이유는 그 ‘기본가정’(basic assumption)이 목적론적이고 유사과학적이라는 점에 있다. 이영훈은 저서 ‘대한민국 이야기’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인류의 3분의 1이 사회주의체제에 포섭되었다. 그렇지만 이 혁명은 실패하고 말았다. 사회주의는 인류의 사회경제 생활이 걸어온 정상적인 진화의 코스가 아니었다. (…) 대조적으로 자본주의는 번영하였다. (…) 20세기 후반 자본주의는 일찍이 누구도 상상한 적이 없는 거대한 성취를 이루었다.”9
앞에서 “정상적인 진화의 코스”라는 어휘가 특별히 중요하다.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이영훈의 관점을 투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영훈은 고작 최근 200~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마치 인류 역사의 종료 시점에서 최종 평결하듯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진화(evolution)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물이 세대를 거치면서 유전형질의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진화는 개체 성장과는 전혀 다르며, 열등한 것에서 우월한 것으로의 변화도 아니다. 또한 진화는 발전도 향상도 아니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고 단언한다.10 당연히 진화에는 정상도 비정상도 없고, 최종 목적 같은 것도 없다. 역사와 사회의 변화를 진화나 정상성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부터가 이미 틀렸다. “정상적인 진화의 코스”라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폐인 것이다.
그 오류는 19세기 허버트 스펜서가 사회진화론을 주창한 후부터 수없이 반복된 ‘클리셰’다. 사회진화론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찰스 다윈의 생물 진화 이론과 상당히 유사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경로로 시작됐다. 사회진화론자는 사회나 역사를 일종의 생물로 보면서 그것이 필연적으로 단순하고 미분화된 상태에서 복잡하고 세련된 상태로 변해간다고 생각했다. 즉, 사회가 선형적이고 목적론적으로 진보한다고 봤다.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 시대 열강의 입맛에 꼭 맞는 것이었다. 약소국이 강대국에 침략당하고 식민화되는 것을 ‘자연의 섭리’로서 정당화해주는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불평등 또한 정당화해줬다. 사회진화론은 조제프 아르튀르 드 고비노의 학설로 대표되는 19세기 인종주의 인류학, 프랜시스 골턴의 우생학 등과 결합해 유럽과 아시아에서 인종개선학 등으로 이론화됐고, 이른바 ‘열등인종’ 및 장애인 등에 대한 차별과 학살로 이어지게 된다.
사회진화론은 그 자체로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현실 설명 도구로서도 지극히 허술했다. 과학적 검증을 견디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영훈과 뉴라이트 서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유사과학’은 21세기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1. 이영훈, ‘대한민국 이야기: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 기파랑, 64쪽, 223쪽, 2007
2. 백기완·송건호·임헌영 외, ‘해방전후사의 인식’(전 6권), 한길사, 1979∼1989
3. 이영훈, 같은 책, 68~69쪽
4. 이영훈, 같은 책, 94~95쪽
5. 마이클 프렐, ‘언더도그마: 강자가 말하는 약자의 본심’, 지식갤러리, 2012
6. R. Wodak, ‘The Politics of Fear: What Right-Wing Populist Discourses Mean’, SAGE, 2015
7. 김민경, ‘헌법이 자유민주주의 밝히고 있다고?’, 한겨레, 2019년 10월19일
8. 이영훈,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 동아일보, 2006년 7월31일
9. 이영훈, 같은 책, 15쪽
10. 스티븐 J. 굴드, 이명희 옮김, ‘풀하우스’, 사이언스북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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