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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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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가 배부르면 행복하다? 뉴라이트가 말하지 않는 ‘인격적 말살’

28. 뉴라이트가 외면한 존엄성과 자주성
‘인정적 진실’은 ‘물질주의적 진실’만큼 중요… 뉴라이트, ‘존재 이유’와 직결된 ‘인정’ 무시
등록 2026-06-18 20:03 수정 2026-06-24 10:34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경제학자 허수열의 저서 ‘개발 없는 개발’의 내용을 입력하고 이를 묘사하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에 경제학자 허수열의 저서 ‘개발 없는 개발’의 내용을 입력하고 이를 묘사하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만든 일러스트.


 

이영훈 등 뉴라이트는 일제가 남긴 물적 유산, 제도적 유산, 인적자본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근대화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실증적 비판이 있었다. 오랫동안 이영훈과 논쟁해온 경제학자 허수열은 저서 ‘개발 없는 개발’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소수의 일본인이 조선의 부의 많은 부분을 장악하게 되면서 민족별 경제적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졌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격차는 더욱 확대되어갔다. (…) 개발의 결과로 돌아온 것은 소작농이나 임금노동자로서의 비참한 삶이었고, 민족별로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이었으며, 사회적으로 상향 이동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구조적 덫에 걸리는 것이었다. (…)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개발이라는 현상이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지만 조선인에게는 개발다운 개발은 없었고, 해방과 더불어 그간 이룩했던 개발의 유산마저 현저히 축소되어버림으로써, 매디슨의 추계에서 보았던 것처럼 조선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일제 초기보다 오히려 더 낮아져버리는 그런 상태가 바로 ‘개발 없는 개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1

 

일제의 개발은 ‘개발 없는 개발’

 

인용에 나오는 “매디슨의 추계”란 세계 각국의 인구, 국내총생산, 1인당 국내총생산 등에 대한 역사적 통계로 유명한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의 데이터를 가리킨다. 허수열은 그중 조선에 관한 것을 발췌한 자료를 핵심 근거로 삼는다. 그 데이터로 이영훈 등 뉴라이트의 주장을 검토한 결과, 일제강점기 조선 경제가 매우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민족별로 다시 쪼개어 해석하면 상황은 반전한다. 놀라운 성장에도 조선인의 삶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이다. 덧붙여서 허수열은 식민지 시기 개발의 유산은 분단과 해방 직후 혼란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무의미한 수준으로 축소되고 말았다고 밝힌다. 결론은 명확하다. ‘한국에서 근대적 경제성장은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1960년대 이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실증적 근거를 두고 벌어지는 학술적 논쟁은 중요하며 이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논의의 축적이 장기적으로 공동체의 신뢰를 강화하는 지적 기반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대다수 시민은 식민지 시기 조선의 많은 부분이 근대화되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일본이 조선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일본 자신을 위해서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점, 즉 수탈의 ‘수단’이었음에 주목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이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는 것에 분노한다. 이에 대해 소설가 황석영은 어느 방송에 출연해서 ‘도둑이 사다리를 걸쳐놓고 물건을 훔쳐가고 사다리를 놓고 간 격’이라 비유한 적이 있다.2

이영훈 역시 식민지근대화가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를 동반했다고 여러 저술에서 언급하고 있다. 또한 그는 식민지 시기 근대화가 분명 “강요된 근대화”였으며, 기본적으로 일본 제국을 위한 근대화였음도 인정한다. 이렇게 보면 황석영으로 대표되는 대중적 반일주의와 뉴라이트의 관점이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면 황석영과 이영훈이 ‘식민지근대화’라는 주제를 놓고 서로 반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정치적 진영이 달라서일까?

 

‘인정’이라는 근본 동기

 

결정적 차이는 도덕적·감정적 차원에 있다. 그것은 ‘인정’(recognition)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은 먹고사는 것만큼, 아니 종종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파머 톰슨은 영국의 노동계급이 형성된 과정을 분석하면서 영국 노동계급에 가장 큰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단지 ‘빵’의 부족이라기보다 “인격적 무시와 감정적 멸시”였다고 말했다.3 사회학자 구해근 또한 노동 현장에서 멸시당하고 무시당하는 감정적 경험이 한국의 노동계급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다. 도덕철학자이면서 경제학자였던 애덤 스미스는 인간 사회에서 경쟁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와 목적이 바로 타인에게 주목받고 인정받는 것이라 단언한다.

“인류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경쟁심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소위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고 하는 인생의 거대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이익이 있어서인가? 남들로부터 주목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동감과 호의와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4

 

일제강점기 때인 1927년 4월, 동진농업주식회사가 조선인 노동자를 동원해 방조제를 쌓고 있다. 전주역사박물관

일제강점기 때인 1927년 4월, 동진농업주식회사가 조선인 노동자를 동원해 방조제를 쌓고 있다. 전주역사박물관


요컨대 인정은 개인적·집합적 행위와 갈등의 바탕에 깔린 ‘근본 동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정은 오래전부터 학자들의 탐구 주제였다. 철학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는 1796년 ‘자연법의 토대’라는 글에서 인정을 개인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하면서, 그것이 법적 관계의 토대라고 규정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은 1802년 저작 ‘인륜성의 체계’에서 이러한 피히테의 인정 이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인정을 실천적 상호주관성으로 정식화한다.

헤겔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생존투쟁’이라는 홉스적 세계관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면서도 그 투쟁이 단지 생존을 위한 것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타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라 가정했다. 즉, 인간의 생존투쟁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여야 끝나는 과정이라기보다 주체로서 서로를 인정받고 더 높은 차원의 인륜성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이기 위해서는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인은 인정받기만 원하고 타인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에 목숨을 건 인정투쟁이 벌어지고, 결국 지배하는 주인과 복종하는 노예의 관계가 생겨난다. 헤겔은 상호 인정만이 그 악순환을 끊고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정 없이 분배 없고, 분배 없이 인정 없다

 

한편,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피히테, 포이어바흐, 헤겔뿐 아니라 푸코, 하버마스, 미드의 이론적 자원을 폭넓게 활용하며 현대사회를 해명하는 도덕적 형식으로서 인정을 정교하게 개념화한다. 그는 사회적 갈등이나 운동이 근본적으로 경제투쟁이 아니라 인정투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흑인인권운동, 장애인운동, 성소수자운동, 여성운동 등 오늘날 주요한 운동들이 단순히 이익을 배분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우리를 존중하라는 요구임을 강조한다. 호네트는 인정을 ‘사랑’ ‘권리’ ‘연대’라는 세 차원으로 다시 나누고 사랑의 결핍, 권리의 박탈, 사회적 멸시가 사회가 병드는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5

사람은 밥을 굶으면 죽는다. ‘물질주의적 진실’(materialistic truth)이다. 그런데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기만 하는 사람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다. 이것을 ‘인정적 진실’(recognitional truth)이라 부를 수 있다.6 두 가지 진실은 겹쳐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선 별개로 보이기도 한다. 참고로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호네트와의 논쟁에서 인정 개념의 중요성을 수용하면서도, 경제적 분배·재분배의 차원과 문화적 인정이라는 두 층위를 구별하는 ‘관점적 이원론’을 제기했다. 반면 호네트는 이 두 가지를 인정 개념으로 통합한 ‘규범적 일원론’을 주장했다.7

서로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공통분모는 분명했다. 경제적 분배 문제에서 인정이라는 차원을 실질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정 없이는 분배도 없고, 분배 없이는 인정도 없다’는 프레이저의 간명한 테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뉴라이트 서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영역이 바로 인정이다. 또한 그것은 ‘근대화는 좋은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비록 일본 자신을 위한 타율적이고 강압적인 근대화라도 결과적으로 조선(대한민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결론으로 수렴한다.

역사에 가정은 없고 공정한 비교라고 할 수 없지만, 굳이 말해본다면 조선왕조 치하의 기층 인민보다 일제 치하의 기층 인민이 평균적 생활 수준이 더 나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배고픈 노예보다 덜 배고픈 노예가 상대적으로 좋은 상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덜 배고픈 노예 역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제헌헌법과 현행 헌법이 ‘임시정부의 적통’을 명시한 이유도 큰 틀에서 보면 바로 이 인정의 차원에 있다. 헌법은 임시정부가 비록 국가의 형식적 요건인 국민·주권·영토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오늘 대한민국의 뿌리임을 천명함으로써,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가 단순히 물질적 생존이나 풍요가 아니라 존엄성과 자주성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분명히 한 것이다.

 

물질적 생존 넘어 존엄·자주 천명한 헌법

 

이러한 관점에 대해 ‘먹고살지 못하는데 무슨 인정이냐’는 반박이 나올 수 있다. 노골적으로 말해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는 비아냥이다. 그 비아냥은 자체로 뉴라이트 식민지근대화론의 명징한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뉴라이트, 특히 이영훈의 인간관이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경제인)라는 지극히 협소하고 허구적인 관점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자존심은 밥을 먹여주지 않으며, 인정이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인정은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 즉 ‘존재 이유’(raison d'être)와 직결된다. 그것은 정체성의 중핵이며 개인과 집단이 목숨 건 투쟁에 나설 만큼 절박한 목적이다. 제국·강대국 보호 아래에 있으면 더 안전하고 풍족할 수 있었음에도 많은 식민지 국가가 희생을 무릅쓰고 독립을 열망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널리 알려진 ‘상상된 공동체’ 개념은 민족의 관념적 허구성을 비판하는 담론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집단적 상상이 동질성을 공유하는 의례를 통해 실제로 민족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상상된 공동체’ 개념을 제시했다.

‘물질주의적 진실’은 중요하지만 ‘인정적 진실’ 역시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그것이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일 경우 ‘인정적 진실’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해진다. 만약 어떤 국가 정체성 서사가 ‘물질주의적 진실’만 강조하면서 ‘인정적 진실’을 무시하거나 경시한다면, 그 서사는 다수 구성원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1. 허수열, ‘개발 없는 개발’, 은행나무, 338~340쪽, 2016

2. ‘손석희의 질문들’, 문화방송, 2024년 8월24일

3. E. P. 톰슨, 나종일 외 옮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창비, 273쪽, 283쪽, 2000

4. E. P. 톰슨, 같은 책, 273쪽, 283쪽

5. 악셀 호네트, 문성훈·이현재 옮김, ‘인정투쟁’, 사월의책, 2011

6. ‘인정적’(recognitional)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지만, 인지심리학의 개념인 ‘재인식적’(recognitive)과 구별해 인정이론적 의미를 담기 위해 필자가 만든 조어이다.

7. 낸시 프레이저·악셀 호네트, 김원식·문성훈 옮김, ‘분배냐, 인정이냐?’, 사월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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