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월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남성이 “벤 알리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든 채 튀니지 국기를 흔들고 있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청년이 분신하면서 촉발된 벤 알리 독재 타도 시위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시민 혁명 ‘아랍의 봄’의 도화선이 되었다. EPA 연합뉴스
지난 회에 이어 브라이언 마수미, 지지 파파카리시 등의 학자들이 제기해온 “정동”(affect) 개념을 살펴보는 중이다. 이들 각각의 개념, 곧 ‘정동 개념군’은 극우 현상, 구체적으로는 이 글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극우 감정을 분석하는 도구로서 적합한가? 요컨대 “극우 정동”은 ‘극우 감정’의 대체재로 적절한가?
그렇지 않다는 게 이 글의 기본 입장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개념 자체의 모호성으로 인해 “정동”은 경험적 분석의 도구로 적합하지 않다는 점, 둘째로는 이러한 측면 때문에 실천적·정치적 대안으로서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후술할 테지만 리사 펠드먼 배럿의 ‘정동’ 개념은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먼저 최근 언론과 미디어 분야에서 주목받은 대표적 “정동” 연구 중 하나인 지지 파파카리시의 논의를 보자. 그는 마수미의 “정동” 이론에 기초해 소셜미디어를 분석하면서, ‘정동적 공중’(affective public) 같은 인상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파파카리시도 마수미처럼 “정동”(affect)을 감정(emotion)과 명확히 구별하는데 특히 그는 “음악 소리에 맞춰 무의식적으로 발을 구르는” 등의 인간 반응을 예로 든다.
“미디어는 전형적으로 특정 미디어 장르 및 미디어 페르소나와 형성된 “정동적”(affective) 관계를 통해 시청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관계는 특정 느낌 및 감정의 출현과 배양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정동”을 감정·느낌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정동”은 특정 감정과 그에 따른 감정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는 특정 에너지, 기분 또는 움직임을 포함하지만 느낌과 감정에 선행하고 이를 유지하거나 무효화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정동”에 대해 음악에 맞춰 무의식적으로 발을 구르고,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걸을 때 걸음걸이의 리듬을 움직이는 힘으로 생각할 수 있다.”1
요컨대 파파카리시는 “정동”을 ‘감정 이전에 나타나는 무의식적 신체반응’으로 보고, 그 예시로 음악을 든다. 그런데 “정동”을 무의식 층위에 놓는 게 타당할까? 과학학술지 ‘네이처’가 발행하는 보고서에 실린 음악에 대한 실험 연구가 있다.2
‘음악에 대한 무쾌감증과 뮤-오피오이드: 날트렉손 투여를 통한 증거’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뮤-오피오이드’는 뇌의 보상 및 쾌락 시스템과 관련한 오피오이드 수용체이고 날트렉손은 오피오이드 수용체 길항제로 작용하는 성분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음악을 들려줬을 때 사람들의 주관적 반응은 ‘자신이 선택한 음악’, 즉 선호하는 음악에서만 나타났다. 반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음악에 대해서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연구는 일상적 관찰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사람들은 음악이 나온다고 무조건 반응하지 않는다. 조금은 호감을 가진 음악이나 리듬이어야 고개를 흔들거나 발을 구르게 되고, 반면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나 불쾌하게 느끼는 리듬에는 그러지 않을 확률이 높다. 예컨대 어떤 사람에게 헤비메탈 음악은 엄청난 즐거움과 흥분을 느끼게 하며 그래서 그 사람은 그런 음악이 나오자마자 몸이 동조하기 쉽다. 하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 그 음악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귀를 막게 하는 고통스러운 소음에 불과하다. 즉, 어떤 경우 음악에 대한 반응은 무의식적이거나 순전히 본능적인 반응이 아니라 특정한 선호/환경/문화의 기대 함수일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들어가 ‘정동’에 대한 임상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의 논의를 보자. 배럿의 ‘정동’은 파파카리시·마수미의 “정동”과 똑같은 ‘affect’라는 단어를 쓰고 한국어 ‘정동’으로 종종 번역되지만,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배럿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동은 당신이 하루 종일 경험하는 일반적인 느낌이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며 두 가지 특징을 지닌 훨씬 단순한 느낌이다. 첫 번째는 당신이 느끼는 쾌감 또는 불쾌감에 관한 것인데, 과학자들은 이것을 유인성(valence)이라고 부른다. (…) 두 번째 특징은 당신이 느끼는 평온 또는 동요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흥분도(arousal)라고 불린다.”3
요컨대 배럿이 말하는 ‘정동’은 “유인성과 흥분도라는 특징을 지닌, 감정과 다른 느낌”이다. 특히 배럿은 ‘정동’이 ‘내수용(interoceptive) 감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내수용’이란 신체 내부 움직임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반응으로서 환경 변화나 질병 등에 의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별 이유 없이 경험하는 것이다. 참고로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저서 ‘스피노자의 뇌’(2007) 등에서 ‘감정’(emotion)과 ‘느낌’(feeling)을 독특하게 분류한다. 그에 따르면 ‘감정’은 생리적 반응이며 ‘느낌’은 그 감정에 대한 의식적 경험이다. 즉, 다마지오의 ‘감정’은 일반적 의미의 ‘정동’에 가깝고 다마지오의 ‘느낌’은 일반적 의미의 감정에 가깝다.
이러한 배럿의 ‘정동’은 얼핏 파파카리시·마수미의 “정동”과 유사해 보이나 실은 완전히 상반된다. 배럿의 ‘정동’, 즉 ‘내수용 감각’은 거의 전적으로 개인적 느낌이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파파카리시·마수미의 “정동”은 권력과 미디어의 작동 방식이며 무엇보다 그것은 결코 개인화되지 않는다.(마수미에게 개인화된 “정동”은 이미 “정동”이 아닌 감정이다.)
감정은 ‘정동’에 비해 복잡하고 해상도가 높다. 또한 배럿은 감정이 물리적 실재는 아니지만 엄연히 실재하며 “개념을 통해 사회적 실재가 된다”고 말한다.4
이런 점에서 배럿의 감정 이론은 반본질주의적이며 구성주의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파파카리시·마수미의 “정동” 개념과는 확연히 대조적일 뿐 아니라 오히려 정동보다 감정을 중요시하는 이 글의 질문, 즉 ‘감정이 어떻게 이데올로기화하는가’라는 문제의식과 가깝다.
다만 신경과학 또는 심리학에서의 ‘정동’이 사회과학적 분석 대상이 되려면, 개인의 내밀한 ‘정동’이 집단적·사회적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되어야 한다. 즉 신체적 쾌와 불쾌, 평온과 동요 같은 지극히 단순한 반응이 어떻게 분노, 혐오, 자부심, 수치심 같은 좀더 복잡한 감정이 되는지 등의 기제가 규명돼야 한다. 배럿의 표현을 빌리면, “뇌와 신체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에서(지각하는 사람과 무관한 내수용 같은 감각에서) 일상의 통속적 개념으로(우리가 살면서 늘 사용하는 ‘공포’나 ‘행복’ 같은 개념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 여전히 수수께끼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정동’의 사회과학적 분석 또한 명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파파카리시와 마수미의 “정동” 개념에 대한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파파카리시의 “정동” 개념은 마수미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정서·감정과 구별된 특수한 층위의 감정을 개념화하려는 시도다. 파파카리시에게 “정동”은 주체화·개인화되지 않기에 보편적이고 그럼에도 이성이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끌림’ ‘결속’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끌림’ ‘결속’ ‘흐름’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파파카리시는 ‘아랍의 봄’ 시위 당시 트위터 해시태그나 대화를 묘사하며 “음조”(tonality), “리듬”, “음악성”(musicality)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만, 정확히 그 음조, 리듬, 음악성이 어떤 의미가 있고 누구에게 얼마큼 작용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마수미에 따르면 오늘날 자본·권력의 주된 지배 도구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정동”이다. 심지어 그것은 “공장에 버금가는 하부구조”처럼 기능한다. 개인들이 “정동”을 자본·권력의 명령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난 감정이라 여길 때 “정동”은 완벽한 지배력을 발휘한다. 반대로 말해서 “정동”이 주체화·개인화되지 않는 한 자본·권력은 “정동”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으며, 그 균열된 지점에서 일종의 ‘누수’가 발생한다. 그곳이 바로 방향도 주체도 없는 날것의 에너지가 흐르는 곳이자 저항이 촉발하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 마수미에게 자본·권력에 저항하는 길은 자본·권력의 지배도구인 “정동”이 완벽한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 즉 “정동”이 감정이 되는 상황을 피하며 “정동”의 “자율적이고 해방적인” 힘을 활용하는 것이다.(마수미의 논의는 제1594호 후반부 참고)
물론 주체는 일종의 환상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주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마수미가 ‘이데올로기’나 ‘주체’ 등의 개념에 회의적인 건 시대적 맥락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20세기 후반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든가 이른바 ‘거대 서사’가 종말을 맞았다는 주장은 논란 속에서도 호응을 얻어왔다.5
특히 21세기 들어 강성해진 글로벌 자본주의와 정치적 극우와 대조적으로 좌파 정치는 점점 퇴조하고 대중의 저항은 파편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마수미와 파파카리시처럼 주체와 방향이 사라진 날것의 “정동”을 설정한다고 해서 해방의 가능성이 커질지는 의심스럽다. “정동”이 현재 지배 체제의 ‘균열’ 혹은 ‘누수’를 함축한다고 해서, 그리하여 어떤 ‘변화’를 촉발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더 나은’ 방향이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본·권력이라는 힘에 대한 숭배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파시즘/극우 정동”도 충분히 가능하며 그것은 이미 “좌파적 정동”보다 훨씬 강하게 분출하고 있다.
“정동” 개념의 최대 난맥은 이렇게 저항의 가능성을 말할 뿐 어떻게 저항해야 할지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감정과 달리 “정동”은 주체나 조직의 층위를 구체적으로 사고하기도 난망하다. 자본·권력에 저항하려면 에너지뿐 아니라 방향성도 필요하다. 물론 해방의 적합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게 “정동” 이론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과도한 비판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저항의 이론적 가능성을 숙고하느라 이데올로기와 주체화에 대한 사유를 사실상 폐기해버린 점은 치명적이다. 이데올로기는 지배의 기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항의 토대이기도 한 까닭이다.
다음 회에서는 샹탈 무페의 ‘정동’ 개념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감정이 왜 생리적 반응을 넘어선 이데올로기의 문제인지 논의를 시작한다.
1. Zizi Papacharissi, ‘Affective Publics: Sentiment, Technology, and Politics’, Oxford University Press, p21, 2015. 번역 및 따옴표 표기는 인용자.
2. Mallik, A., Chanda, M. & Levitine, D., ‘Anhedonia to music and mu-opioids : Evidence from the administration of naltrexone’, ‘Scientific Reports’ vol.7, Article number 41952, 2017
3. 리사 펠드먼 배럿, 최호영 옮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생각연구소, 150~151쪽, 2017
4. 같은 책, 256쪽
5. 다니엘 벨, 이상두 옮김, ‘이데올로기의 종언’, 범우, 2015 /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유정완 옮김, ‘포스트모던의 조건’, 민음사, 2018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우리 안의 극우: 오늘의 극우는 한국 사회에 이미 존재하던 문제들이 고름 터지듯 분출되는 현상이다. 이 연재는 내재적 관점에서 극우를 직시하는 연구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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