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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에 쏠린 ‘땜빵 대책’

2주간 국회 발의안만 18건…낙인 우려 큰데도 교육부 “고위험군 점수화 방안 논의 중”
등록 2025-03-01 07:57 수정 2025-03-04 15:34
2025년 2월11일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숨진 김하늘양을 추모하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가 묵념하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2025년 2월11일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숨진 김하늘양을 추모하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가 묵념하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2025년 2월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8살 학생이 살해됐다. 흉기에 찔린 채 학교 시청각실에서 발견된 김하늘양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특히 가해자가 같은 학교 교사이고, 범행 장소가 학교 안이어서 사회에 던진 충격이 컸다. 범행 후 자해한 교사 명아무개(48)씨는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명씨가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을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정신병력 교원’ 관리에 대책 집중

연약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것도 초등학교 안에서 발생한 이 비극은 어쩌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해자는 강력 범죄의 전조 증상으로 볼 수 있는 행동을 자주 보였다. 그는 2월5일 ‘접속이 느리다’는 이유로 업무용 컴퓨터를 파손했고, 이튿날인 2월6일엔 동료 교사의 목을 조르는 등 폭행을 했다. 학교는 명씨에게 주의를 주고 수업에서 배제했지만, 이 사건이 경찰 신고로 이어지진 않았다. 학교는 2월7일 관할 교육지원청에 명씨의 이상행동을 알렸는데, 2월10일 오전 학교를 찾은 대전서부교육지원청 장학사 2명은 병가나 연가 등을 통한 분리 조처를 하라고 권고했다. 이들은 가해자를 자극할 우려 때문에 직접 대면 조사를 하진 않았다. 장학사들이 다녀간 뒤 명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흉기를 구매했고, 늦은 오후 돌봄교실에 혼자 남아 있던 김양을 유인했다. 언제든 타인을 해할 가능성이 있는,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 사람에게 교육당국이 단호하고 기민하게 대응했더라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사건 직후 명씨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경찰에 진술한 사실, 또 우울증 때문에 수차례 병가를 사용하고 휴직과 복직을 했다는 내용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세상의 관심은 온통 ‘정신질환’ 네 글자에만 쏠렸다. 정부와 국회가 내놓은 후속 대책의 초점도 ‘정신병력이 있는 교원 관리’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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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0일 사건이 일어나고 2월24일까지 2주 동안 국회 교육위원회에 접수된 관련 발의 법안은 18건에 달한다. 이 법안들의 주요 뼈대는 대동소이하다. 질환교원심의위원회 등 신체‧정신질환이 있는 교원의 직무수행 가능 여부와 복직을 심사하는 위원회의 설치‧운영을 법제화하고 심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그 밖엔 학교전담경찰관 증원과 역할 강화, 교내 시시티브이(CCTV) 설치, 교원의 치료비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부는 질환이 있는 교원이 학부모 등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교원·학생에게 위해를 가할 경우엔 교장이 교육청에 보고하고 해당 교원을 긴급 분리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또 기존의 질환교원심의위원회, 질병휴직위원회를 통합해 ‘교원직무수행적합성위원회’로 변경하고 교원이 복직할 때 심의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CCTV 설치 확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모든 초등학교 1·2학년 대상 대면 인계와 동행 귀가를 원칙으로 안전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긴급 분리’ 필요하긴 한데 기준은 모호 

이를 두고 정치권과 정부가 면밀한 검토 없이 대책을 수립하는 데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질환교원심의위를 통해 교원의 직무 가능 여부를 판단해 휴·면직을 권고할 수 있지만, 제대로 열리지 않아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교원단체들은 애당초 이런 위원회들의 근거 법령을 상향하거나 심의를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왜 기존에 있던 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는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본다.

손민정 강원교사노조 위원장은 “동료 교사 폭행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교사에 대한 질환교원심의위를 개최하자고 강력히 요구했는데 결국 열리지 못했다”며 “심의 결과 이상 없이 근무할 수 있다고 나오든, 질병 휴직을 권고해야 하는 상황이든 이후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관리자가 다 전달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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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고위험군’과 일반적인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교사를 구분해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2월18일 국회 교육위 현안질의에선 고위험군의 기준이 불분명한데다, 관리자가 어떤 상황에서 긴급 분리나 직권휴직 조처를 할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교육부 대책대로라면 우울증 있는 교사가 학부모와 갈등을 보였을 때 긴급 분리를 하느냐”며 “그러면 우울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이 갈등을 일으킬 때는 어떻게 할 것이고, 우울증 때문인지 아닌지 판별해서 그때그때 대처가 달라져야 하느냐. 교육부의 제도 개선안은 질환과 폭력성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질환 교원에 대한 낙인이 될 우려가 아주 크다”고 말했다.

2025년 2월18일 대전 초등생 김하늘양이 피살된 사건과 관련해 현안질의 등을 위해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왼쪽)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연합뉴스

2025년 2월18일 대전 초등생 김하늘양이 피살된 사건과 관련해 현안질의 등을 위해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왼쪽)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연합뉴스


교원단체들은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구성원을 학교 현장에서 분리시키는 조처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오히려 많은 교원은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긴급 분리를 꼽는다. 2025년 2월20일 교사노조연맹이 조합원 81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폭력적 전조증상을 보인 학교 구성원에 대한 긴급 분리 조치가 불가능한 현행 제도’(66.8%)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학교 구성원이 위중한 폭력적 전조증상을 보일 때 심의를 거쳐 교육당국이 직권으로 분리조치 후 진료 의뢰’(58%)를 가장 많이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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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명확하지 않은 기준, 폭력이 아닌 정신질환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 일으킬 부작용을 무시하긴 어렵다. 교사들은 2023년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무리한 민원 제기 혹은 갑질에 대한 이슈를 낳았던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과 이후 있었던 교사 집회를 거치면서 동료끼리 더는 정신건강 이야기를 터부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점차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심리적 어려움, 회복을 위한 휴식, 상담·치료 등과 관련한 이야기를 이전과 비교했을 때 수면 위로 올려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 재발 방지 대책이 정신질환 교원에 대한 낙인효과를 강화하면 이런 흐름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고, 이는 학교를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우울증 숨길 수밖에” 교사 건강 악화할 수도

경기도 지역 초등학교에서 6년째 근무하는 교사 ㄱ씨는 “서이초 사건 이후 정신건강과 관련해서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며 “‘내가 지금 불안하거나 문제 되는 상황이 있으면 얼른 상담을 받거나 치료를 받자’는 분위기가 많이 생겼는데 이번 대책으로 오히려 ‘병원 진료 기록이 남으면 안 되니까 숨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길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은 11년차 교사 ㄴ씨도 “3월에 입학식을 하면 당장 학부모들도 ‘우리 학교 1학년 선생님들은 정신질환이 없나요?’라고 걱정하는 질문을 하지 않겠느냐”라며 “(우울증이 있는 교원들은) 더 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교수는 “이번 사건은 우울증으로 설명되지 않는 폭력적인 행동이나 위험한 행동이 나타났을 때, 학교가 그에 대해 민감하게 대처하고 강력한 조처를 취할 수 있는 자원과 준비가 있느냐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며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업무 현장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면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아픈 교원이 선입견 때문에 치료를 기피하는 등 정신건강 위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극히 드문 사건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전제하고 급조한 대책들이 학부모와 교사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할 가능성도 있다. 천경호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교육당국이) ‘신규 임용 교원도 정신질환 검사를 하겠다’ ‘정신질환으로 휴직하면 복직 절차를 까다롭게 하겠다’ 등 질환 유무를 갖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학부모의 불안을 덜어줘야 할 교육부가 오히려 불안을 더 키우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고위험군 체크리스트’ 전에 챙겨야 할 것

서울 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ㄷ씨는 “개인의 일을 확대해서 마치 ‘모든 선생님이 잠재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법을 급급하게 만드는 것 같다”며 “어쨌든 교사도 사람인데, 한 개인의 민감정보인 병력이 학부모나 학생 등에게 공개될 수도 있다는 게 적절치 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인천 지역의 고등학교 교사 ㄹ씨도 “급히 법을 만드는 방식으로 학부모와 교사를 대립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버리면, 이를 봉합하고 다음 단계로 가는 게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여러 우려에도 정부는 내놓은 대책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월26일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에선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과 고위험군을 가르는 기준에 대한 질문이 다시금 나왔다. 이주호 부총리는 이에 대해 “고위험군 교사들에 대한 체크리스트 같은 것을 만들어 (이를) 점수화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며 “전문가들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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