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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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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초 이후 “온정주의·보신주의 관행 드러나” 분노 목소리

‘불신의 늪’ 빠진 학교 현장… 돌봄 공백 해결도 오리무중
‘교사 개인’ 탓 앞서 시스템 바꾸고 돌봄 구조도 개선해야
등록 2025-02-28 22:26 수정 2025-03-05 14:21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 이후 긴급 휴교령이 내려졌던 대전 한 초등학교의 2025년 2월17일 오전 모습. 이날 학생들이 7일 만에 등교를 재개했다. 연합뉴스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 이후 긴급 휴교령이 내려졌던 대전 한 초등학교의 2025년 2월17일 오전 모습. 이날 학생들이 7일 만에 등교를 재개했다. 연합뉴스


“학교에서 커터칼을 들고 청테이프를 찍찍하며 돌아다녀서 교사들이 치웠어요. 동료 목을 조르고, 데스크톱을 부쉈어요. 지금 학부모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어떻게 그런 극단적 폭력성을 보인 사람이 학교에 출근할 수 있었느냐는 거예요. 일반 회사 같으면 그게 가능했겠어요?”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이 발생한 대전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강영미씨가 2025년 2월25일 통화에서 한 말이다. 강씨는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이하 ‘참학’) 회장을 맡고 있어 학부모 100여 명이 참여하는 단체 카톡방을 운영한다. 강 회장은 이 방에 있는 학부모들이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의 발언에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설 교육감은 2월18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교육청에서 직원이 동료를 폭행하면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처벌한다”고 답했는데, 곧이어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 가해 교사에 대해 교육청이 어떤 조처를 했는지 물었을 땐 “학교에 휴가 권고 지시를 내렸다”고 답했다.

 

관리자들의 무책임한 ‘폭탄 돌리기’

학부모들은 이번 사건이 무엇보다 “교직사회의 온정주의, 보신주의가 낳은 비극”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범죄를 저지른 교사를 처벌하지 않고 일단 휴가를 권고한 뒤 다른 학교로 전보 발령을 내던 관행에 대해 “철저히 시간을 두고 깊이 있게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행을 교사들도 알고 있었을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 교권국장인 송대헌 참학 고문은 “험한 말로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어하는 교장, 교육청, 교육감 문제는 수십 년에 걸쳐온 교직사회의 오랜 문제”라고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교육부가 ‘즉각 분리조치’를 대안으로 말했는데) 분리하는 제도가 문제가 아니에요. 이전에도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병가를 쓰게 해서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하는 식의 즉각 분리가 있었죠. 문제는 교직에 정말로 부적합한 사람에 대해선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고 싶어 하는 게 교육계의 기본적인 품성이에요. ‘나는 저 사람을 자르지 않았어. 난 저 사람에게 험하게 안 했어’ 이런 온정주의. 그리고 부정기 전보나 정기 전보로 다른 학교로 보내는 ‘폭탄 돌리기’를 하죠. 교사들이 교직에 정말 부적합한 그런 교사에게 온정을 보이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맡고 있는 아이들의 1년을 죽이는 일이거든요.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그런 짓을 못해요.”

‘정치하는 엄마들’의 백운희 아동학대 대응팀장도 “주변에 교사 친구들 몇 명씩은 다 있지 않으냐”며 “얘길 들어보면 ‘고위험 부적격 교사’, 이른바 ‘빌런’이라고 말하는 교사가 누구인지 교직사회에서 다 알면서도 서로 터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비교적 대등한 교직사회 문화상) 교실 안에서 담임이 하는 일에 서로 관여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자가 심각한 사전 징후를 보이는 교사에게, 더 단호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취지의 목소리는 교직사회 안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2월15~16일 전국 교사 5662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필요한 대책이나 의견’(주관식 응답)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이미 동료 교사에게 폭행을 행사한 심각한 사전 신호가 있었는데 그걸 무시한 관리자와 시스템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교 관리자의 역할 안에 ‘학교폭력·교권 침해·교직원의 심각한 문제(폭력성, 업무에 지대한 피해 등)에 부작용 없이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과 적극 권한’에 대한 부분이 필요하다.’

이한섭 전교조 대변인은 “(일반 회사의 위계질서와 달리) 교사에 대한 임명권을 교장이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교육부나 교육감이 갖고 있다보니 학교장들은 인사 조치에 대해 부담스러운 마음이 있을 것이고, 또 해당교사가 소송을 걸진 않을까 하는 부담감도 크다”며 “이번 사안을 통해 저희도 느낀 게 현장의 문제 행동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학교장이 이 부분에 대해 책임지고 처리하는 게 맞고, 그와 관련한 적절한 훈련과 권한이 학교장들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 발생 다음날인 2월11일 오후 대전건양대병원 장례식장 빈소 앞 통로에 이 학교 선생님들이 두 손을 쥐고 서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 발생 다음날인 2월11일 오후 대전건양대병원 장례식장 빈소 앞 통로에 이 학교 선생님들이 두 손을 쥐고 서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교사-학부모 신뢰 관계 ‘악화일로’ 

이번 사건으로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신뢰가 일부 무너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교육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교사 정신건강 진단 및 점수화’ 등의 성급한 접근은 반기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 서이초 사건 때는 모든 학부모를 잠재적 가해자로 전제해 원천 분리하는 정책을 내놓더니, 이번 사건 때는 교사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로 전제해 우울증 등이 있으면 원천 분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정책을 내놓아, 오히려 교육 현장의 신뢰 관계를 악화시킨다고 보고 있었다.

“학교 현장이 서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좌절입니다. (이번 교육부 대책을 보면) 자원봉사자를 채용해서 하교할 때 직접인계를 하겠다고 했는데 자꾸 자원봉사자로 해결하겠다는 접근도 놀랍지만, 또 (안전 강화를 위해) 학교 방문 사전예약제도 강화하겠다고 외부 요인으로 원인을 돌리고 더 분리하는 대책을 내놨어요. (교직사회와 학부모 사이에) 굉장히 (불신) 골이 깊은데 코로나19가 계기가 되어 단절이 더 커진 상황이거든요. 학부모는 어쨌든 선생님을 가장 든든한 보호자로 생각했고, 선생님께 얘길 듣지 않으면 자신의 자녀가 어떤지 인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잖아요. (서이초 사건이 터지자) 교육부가 정례적으로 하던 학부모 상담을 신청자가 하는 것으로 바꾸면서 상담이라는 부분이 (특별한 문제가 있을 경우에만 소통 가능한 것으로) 축소돼서 선생님과 대면하기도 어려워졌어요.” 백운희 팀장의 말이다.

강영미 회장도 “교육부 대책에서 정신질환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전문가들은 단순히 우울증만으로 어린아이를 무참히 살해하진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계속 정신질환 문제로 거론하는 게 불편하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2월24일 국회에서 열린 ‘대전 초등학생 사망사건 후속조치 위한 긴급 간담회’에서 내놓은 자료집을 보면 ‘향후 추진계획’은 이런 학부모들의 인식에 미치지 못한다. 교육부는 ‘하늘이법 등 법안 추진’ ‘늘봄학교 포함 학교 전반 안전 관리 강화’ ‘교원 맞춤형 심리검사도구 홈페이지 탑재 및 자가진단 활용’을 향후 추진계획으로 제시했다. 학부모들이 지적한 ‘교직사회 문화에 대한 실태조사’나 ‘불신 회복 방안’, 교사들이 지적한 ‘학교 관리자의 권한과 책임’ 및 ‘교육부의 시스템 재건’에 대한 내용은 없다.

게다가 근본적으로는 최소한 육아기 학부모들이라도 ‘아이와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노동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부터 아이가 저녁 8시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는 사회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당장 현장에서 바뀌는 것은?

교육부의 자원봉사자 등 인력을 활용한 ‘하교 시 직접인계’ 대책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교육부는 이번 사건이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돌봄교실을 나가 출입구 쪽 학교보안관실로 혼자 가는 짧은 거리 안에서 발생한 만큼, 이 공백을 막겠다는 접근을 내비쳤다. 그러나 현장에선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겠지만, 이게 대안인지는 의문이 든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인계하는 자원봉사자가 있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교사가 잠깐 일이 있어서 학생을 봐야 한다고 하는데 안 따라갈 학생이 있을까요?”(송대헌 전 전교조 교권국장)

“학교에서 실시간으로 계속 아이를 공백 없이 추적할 수 있으면 학부모야 좋겠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서울 동작구 초등생 학부모 남아무개씨)

“한 돌봄교실에 학생이 22명이에요. 과밀학교 같은 경우는 25명, 26명 보는 학교들도 있고요. 정규수업은 다 같이 시작해 다 같이 끝나지만 돌봄교실은 한명 한명 스케줄이 다 달라요. (방과후 수업을 특정 교실로 이동해서 듣고 돌봄교실로 다시 오기 때문에, ㄱ학생은 A교실로 이동하고, 동시에 ㄴ학생은 B교실로 이동하는데) 전담사가 공백 없이 아이들 전부를 본다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긴 합니다. 최대한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게 동선을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요.”(한재숙 교육공무직 대전지부 돌봄전담사분과장)

“우리는 아직 위에서 뭘 하라고 내려오진 않았고, 새학기 시작하면 바뀔 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 학교는 대로변에 있진 않아서 학원차량들이 오면 잠깐 세워두고 직접인계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대로변에 있는 학교들은 (학원차량을 세워둘 수 없어) 고민이 많을 거 같아요.”(서울 동작구 초등학교 보안관)

“(학생이 믿을 만한 지위에 있는) 내부인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인데, CCTV를 더 단다는 둥 대면인계를 꼭 하라는 둥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현장의 업무 강도만 강화시키는 꼴밖에 안 되는 그런 상황인 거죠.”(전국교육공무직본부 대전지부 이경래 조직국장)

생성형 인공지능(AI) ‘달리3’ 기반 코파일럿에 ‘교실에 남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그려달라’는 등의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AI) ‘달리3’ 기반 코파일럿에 ‘교실에 남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그려달라’는 등의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텅 빈 학교에 남아 있는 아이들 

유튜브나 포털사이트의 이번 사건 관련 뉴스들을 보면 ‘아이와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없는 노동환경’에 대해 지적한 댓글들도 많다. “늘봄실무사 뽑고 돈(예산)이 없는데 무슨 봉사자를 또 뽑아. 부모들 일찍 집에 가게 해야지” “부모가 집에 일찍 가야지 애를 오후 8시까지 학교에 있게 한다고?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왔나” 등의 발언이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 돌봄교사인 한재숙 교육공무직 대전지부 돌봄전담사분과장도 근본적으로는 노동시간 문제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학기 돌봄교실 신청서류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4명의 아이가 저녁 7시까지 있는다고 신청서가 왔어요. 생각해보세요. 아이가 아침 8시30분에 학교에 나와서 저녁 7시까지 교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 걸요. 일부 선생님들은 중간에 몸을 좀 움직일 수 있게 활동도 넣지만, 사실 요즘은 학교 안에서 안전이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다보니 아이가 다칠까봐 교실 안에 주로 있거든요. 미세먼지·부상·폭염·추위 등 학부모님들 의견이 다 다양해서 그냥 최대한 안전하게 교실 안에서 놀이하자는 기조로 가는데, 저녁까지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참 짠해요. 집에 가는 시간 엄청 좋아해요. 사회분위기 자체가 좀 방향이 변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교사들도 앞서 언급한 전교조 설문조사에서 “학교에만 집중돼 있는 돌봄의 역할을 사회로 분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텅 빈) 학교는 안전하지 않다. 늘봄이다 뭐다 학생들 체류 시간은 늘고” 등의 언급을 했다.

이에 반해 교육부는 맞벌이 가정의 일반적인 출퇴근 시간을 전제로 보다 현실적으로 돌봄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면서 돌봄이 학교의 역할로 이양된 상황인 건 분명하고, 지금에 와서 이를 분산시키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돌봄시설 이용을 강화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시설까지 이동해야 하는 등 위험성이 있다보니 돌봄을 학교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안전하고 효율적이란 인식이다.

맞벌이 가정 부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은 출산 직후와 더불어 초등학교 1~2학년 시기에 육아휴직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 시기 전체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순 없기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고려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사용하긴 쉽지 않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육아휴직 사용 이후 추가로 1년 동안 만 8살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 양육을 위해 사업주가 신청 노동자에게 주당 15시간 이상~35시간 미만으로 단축 근무를 하게 하는 제도다.

그런데 정부출연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2024년 9월 발간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성화 과제는?’ 보고서를 보면, 사업체 인사담당자조차 약 30%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모른다는 내용이 나온다. 면접조사에서 부모들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미사용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좀 많이 눈치가 보인다” “돈을 받음에도 일찍 가네라는 눈치를 받는 게 부담된다” “회사 자체가 그룹부터 보수적이어서 남자가 하면 (특히) 눈치 보인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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