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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계획 어딨나… ‘업자’가 지역 장악한 사건”

김용국 전 ‘영광 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집행위원장 인터뷰
“최소 25년 태양광만 가능… 지역 희생 전제 수도권 싼 전기 공급은 정당한가”
등록 2024-11-01 22:39 수정 2024-11-06 07:51
김용국 전 영광핵발전소 안전성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이 2024년 10월15일 오후 전남 영광군 한 카페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용국 전 영광핵발전소 안전성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이 2024년 10월15일 오후 전남 영광군 한 카페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소금과 전기의 싸움이라…, 그 관점도 맞죠. 그런데 난 그건 오히려 지엽적이라고 봐요. 아니, 지엽적이라기보단 그 역시 철저한 중앙의 시각이랄까. 이건 그냥 외지인이 들어와서 땅 사고 털어먹어버리고 지역엔 갈등만 남고 사람들은 분열되는 그런 사건들의 반복이에요. 그 업자들이 에너지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거침없었다. 개념적인 이야기를 하는데도 명쾌했고, 현장의 문제를 설명할 때는 전문적이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의 설명을 빌리자면, 김용국 전 ‘영광 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한국 반핵 운동의 산증인’이다. 청년 시절 가톨릭농민회에서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시작해 서울에서 진보정당 정책 보좌관을 지낸 시절을 빼면 지난 30여 년 동안 반핵 투쟁의 현장을 늘 지켰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국가적 차원에서 전력 문제를 어떻게 정책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만, 그럼에도 ‘영광에서, 영광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석하려는 ‘지역의 관점’을 놓지 않고 있다. “이 시골에 무슨 얘기를 듣겠다고 왔느냐”고 하면서도 그는 현시점 재생에너지 전환 문제의 모순에 대해 명확한 전망을 제시했다.

“국가도 군도 계획도 대안도 없었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반대하지 않으면서, 지역의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고 들었다. 에너지 전환 정책 추진 과정에 대해 총평을 한다면.

“정책이란 게 있습니까. 입만 열면 원전 수출 얘기만 하는 이 윤석열 정부에서. 이미 대규모 원전이 있는 전남 영광에 왜 또 재생에너지 단지를 만들어야 하는지 더불어민주당 정부 시절부터 정부는 늘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냥 업자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와서 지역을 장악해버린 거죠. 정부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지역과의 협의가 있었겠죠. 지역 조합이라든가 에너지 협동조합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참여와 이익 공유를 전제로 한 접근이 필요했죠.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게 없었습니다.”

—영광 지역 염전들이 태양광 단지가 된 것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처럼 들린다.

“염전을 둘러싼 거래는 모두 사인 간에 이뤄진 것입니다. 재산권이죠. 그 염주들이 맞다, 틀리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영광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것이죠. 그 염전들이 지속적인 산업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관광 사업으로 기능할 것인지, 또 다른 사업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인지 그 계획이 있었어야 했는데, 이미 영광군은 계획을 세울 수 없게 됐습니다. 업자들이 먼저 입지를 사버렸고, 앞으로 최소 25년 이상 영광은 태양광 패널을 바라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사이 죄다 태양광 단지가 되겠죠. 풍력 단지가 개발될 때도 마찬가지였고, 영광은 마스터플랜을 세워볼 겨를도 없이 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허가만 내준 꼴이죠. 그사이 정부라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계획이 나왔어야 하는데, 국가도 거기에 계획도 대안도 없었던 것이죠.”

사업자 배불리는 동안 주민들 ‘푼돈’ 놓고 갈등

—태양광 단지 규모가 엄청나던데, 그게 다 사인 간의 거래로만 조성됐다는 건가.

“영광군 입장에서 염전 부지 가격변동이 있을 때, 군의 주요 산업인 염업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대단위 토지수용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관이 개입하지 않은 사인 간 거래입니다. 염전 단지들의 경우 애초 주인들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 투자 이익을 기대한 사람들로 바뀌는 과정이 있었고, 그 이후 대규모 자본이 땅을 집중 매입하는 과정도 있었죠. 경관이나 이런 문제를 영광이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늦었고, 개입하려 했다고 해도 행정소송 같은 데 걸렸겠죠.”

—사인들의 입장에서 만약 ‘소금 농사’보다 ‘에너지 농사’에 더 많은 수익이 발생한다면 막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죠. 그런데 사업자의 이익이 지역의 관점에서 무슨 이익이 되는 거냐는 질문이 생략됐죠. 오히려 지역에선 그 이익 때문에 갈등이 발생합니다. 원전 사업의 예를 들면, 영광 핵폐기장 유치 반대 문제 이후 2000년부터 지금까지 지역 주민 간의 반목과 갈등이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도 정확히 같은 상황이죠. 사업 시행 동의 과정에서 반목이 생기고, 누군가 나의 권리를 제약한다고 갈등이 생기죠. 그 갈등과 반목 사이에서 사업자들이 천문학적 이익을 누리는 동안 지역 주민들은 푼돈 때문에 완전히 갈라섭니다.”

—그런 문제는 재생에너지 단지 개발뿐만 아니라 모든 개발 사업에 있는 것 아닌가.

“재생에너지는 좀 다르죠. 단순 개발이 아니라 영광 지역의 고유한 태양, 바람 그리고 염전 부지를 이용하는 것 아닙니까. 영광에 태양광 단지를 짓는 이유는 보통 태양광이 1일 평균 3.5시간 정도 발전을 할 수 있는데, 영광은 4.5시간을 생산한다고 해요. 바닷가 근처는 5.5시간 이상 생산 가능한 곳도 있습니다. 그 지역의 고유성에 기반한 이익을 지역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면 많은 것이 달라지죠. 천부적 사업 입지 조건을 가지고 영광군이 ‘이익공유제’ 방식으로 접근해 개발 비용의 절반을 영광군이 조달하고,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방식의 매칭펀드를 조성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행정 과정을 밟았다면 영광군과 주민 모두에게 굉장한 발전 기회가 있었겠죠. 지금 에너지 수당 이런 이야기가 있지만 원천적으론 그 발전 기회가 이미 박탈된 것입니다. 재생에너지 단지 도입 초기부터 이런 얘기들을 했습니다. 그땐 행정에 아예 그런 개념이 없었고, 법이라도 만들었어야 했는데 못했죠. 그 방치의 시간 속에서 전국에서 특히 땅값 싼 지역이 아주 무분별하게 재생에너지 단지로 개발된 겁니다. 이 부분은 특정 정부의 문제는 아닙니다. 모든 정부가 다 똑같았으니까요.”

힘없는 주민 희생시켜 사회적 비용 치른 셈

—영광 바닷가들을 둘러보니 소금과 전기의 싸움은 이미 소금의 패배로 결정된 것 같던데.

“그렇죠. 그걸 말릴 행정 권한도 지역의 힘도 없죠. 근본적 문제는 지역의 희생을 전제로 수도권이 저렴한 전기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수도권 사람들은 태양광을 지역의 경관 문제나 환경 문제로 볼 수 있겠는데, 그 관점을 충분히 존중하지만 그건 중요한 얘기를 사라지게 하는 왜곡이기도 합니다. 도시의 시선이죠. 그렇다면 그 경관을 지키기 위해 도시민들이 에너지 사용을 확 낮춰야 하는데 그럴 수 있습니까. 그 전환을 누가 얘기합니까? 삼성 반도체 공장 하나 돌리는 데 원전 1기가 필요합니다. 요새 주목받는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센터 한 곳을 돌리려면 5만㎾의 전기가 필요하죠. 한국 사람 평균 1명당 에너지 소비가 1만500㎾인데 영국은 5500㎾, 독일과 일본은 8천㎾입니다. 지금도 영광에서 생산하는 전력의 50%가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는데 그게 더 필요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사이 송전선들이 수많은 지역을 지나며 갈등과 피해를 만듭니다. 이게 문제의 본질입니다. 이 불균형은 민주주의의 문제이고, 지금 상황은 민주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 치러야 할 마땅한 비용을 소수의 지역 사람, 힘없고 돈 없는 자들의 희생으로 요구하는 꼴입니다. 이건 아예 한국 사회의 구조 같은 것이죠. 쉽지 않은 문제겠지만, 이런 논의들이 없었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소금과 전기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전남)=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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