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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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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얼굴도 불탔다

출구 찾지 못해 막다른 곳으로 달려간 희생자들
파견 불가 제조업체 아리셀 ‘불법파견’ 의혹 짙어
등록 2024-06-28 20:34 수정 2024-07-01 07:49
리튬 배터리 제조공장 화재 희생자 시신이 안치된 경기 화성 송산장례문화원 사무실에 2024년 6월25일 오후 안치 현황이 표시돼 있다. 김정효 기자

리튬 배터리 제조공장 화재 희생자 시신이 안치된 경기 화성 송산장례문화원 사무실에 2024년 6월25일 오후 안치 현황이 표시돼 있다. 김정효 기자


‘전곡산단 화재사건 故(고) 21번, 故 16번, 故 11번, 故 6번, 故 23번.’

2024년 6월25일, 경기도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노동자들이 안치된 화성 송산장례문화원 벽에 걸린 새하얀 게시판엔 망자의 이름 대신 번호가 써졌다. 불에 타고 연기에 그을린 노동자의 몸이 심하게 훼손돼 눈으로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번호는 주검이 발견된 순서에 따라 매겨졌다. 유가족들은 이름과 얼굴을 잃어버린 노동자들 사이에서 가족을 찾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황망해했다. 6월24일 오전 10시31분 화재가 발생한 뒤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연락이 끊긴 가족들은 23구의 주검이 나뉘어 안치된 다섯 곳의 영안실을 돌며 발을 동동 굴렀으나 “신원을 확인 중”이라는 당국의 짤막하고 건조한 대답만 들었다.

사망자 17명 중국동포

화재 등 주검이 훼손될 수 있는 참사에서 여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인상착의와 지문 분석, 치아 식별 등 통상적인 방법으로 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과 유전자(DNA) 분석 등의 작업을 거쳐야 해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런데 화성 참사에서는 한 가지 변수가 더 생겼다. 망자 가운데 이주노동자 17명(중국동포)이 포함된 것이다.

주민등록이 되지 않았고,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에도 없는 이주민들의 신원을 확인하자면 가족(부모 또는 형제)의 체세포를 받아 대조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중국에 있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가족들이 있어 정부는 6월27일 오후에야 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숨진 노동자 23명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1972년생, 52살이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50대 미만이었다. 희생자들은 모두 안산과 시흥에서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자리를 구해 통근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출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검수 작업을 위해 사무실 한편에 쌓아놓은 배터리에서 고열이 발생하면서 일어난 불과 연기에 목숨을 잃었다.

유가족들이 숨진 노동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애태우는 시간, 정부는 이들이 어떤 경로로 고용돼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지 확인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신원 확인이 유족에 대한 위로와 보상을 위한 작업이라면, 노동의 형태를 규명하는 일은 참사 책임자 처벌을 위한 절차다.

6월26일 지역사고수습본부가 꾸려진 화성시청에서 브리핑을 연 민길수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은 ‘하도급 노동자인지, 파견 노동자인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민 청장은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아리셀 대표가 적법도급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도급계약서는 없어 좀더 내용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며 “(파견사업주 혹은 하도급업체) 메이셀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는데 고용 관계가 직접도급 형태인지 파견이었는지 등 정확한 내용은 조사와 수사를 통해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메이셀이 온라인 구인 누리집에 올린 노동자 구인 글. 희생자 대부분이 인력 파견업체의 구인글을 통해 일자리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누리집 갈무리

메이셀이 온라인 구인 누리집에 올린 노동자 구인 글. 희생자 대부분이 인력 파견업체의 구인글을 통해 일자리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누리집 갈무리


사용자 의무 저버리고 ‘거짓말’ 의혹

민 청장의 브리핑이 있기 하루 전인 6월25일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과 모회사인 에스코넥의 대표이사를 겸하는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은 화재 현장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고용 형태가 정확히 어떻게 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파견이다. 도급이다”라고 대답해 혼란을 초래했다. 파견과 도급은 엄연히 다르다. 희생자들이 파견 노동자였다면 파견사업주(메이셀)와 고용계약 관계를 맺고 사용사업주(아리셀)의 지휘·명령을 받아 일했어야 하고, 하청 노동자였다면 하도급업체(메이셀)와 고용관계를 맺은 뒤 메이셀의 지휘·명령을 받아 일해야 한다. 이 경우 하도급업체(메이셀)는 도급업체(아리셀)와 도급계약을 맺어야 한다.

그런데 1차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은 파견이 불가능한 제조업종이다. 이에 기자들이 재차 “파견이 가능한가”라고 묻자 박 본부장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들의 업무지시를 누가 했나”라는 기자들의 추가 질문에 이들은 “파견업체에서 지시했다”고 답해 기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반면 메이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파견업체가 현장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휴대전화 문자로 통근버스 탑승 위치를 안내한 뒤, 아리셀에 도착하면 (아리셀) 관리자들이 인솔해서 일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결국 희생자들이 파견 노동자인지 하청 노동자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아리셀은 ‘위장도급업체’라고 주장하고 메이셀은 ‘파견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자들만 ‘불법 비정규직’으로 보호의 테두리 바깥에서 일해야했다. <한겨레21>의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아리셀과 메이셀은 각각 도급·하도급업체이거나 파견·사용사업주일 경우 가질 수 있는 이점만을 취하고, 의무는 저버리는 방식으로 ‘직접 고용’이라는 노동의 원칙을 형해화했다. 애초에 파견이 불가능한 제조업 공장에서 파견 형식으로 노동자를 받아서 일하다가, 당국의 단속이 심해지자 단속을 피할 목적으로 형식적으로만 도급 형태로 변형시켜 눈속임했을 가능성이 크다. 메이셀의 주소는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아리셀의 모회사(에스코넥)와 같았다.

이들이 이런 꼼수를 쓰는 건 오로지 ‘비용절감’ 때문이다. 아리셀이 노동자들에게 지휘·명령을 내려서 파견 형식으로 일했으면서도, 동시에 메이셀과 묵시적으로 도급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용사업주의 의무를 숨기기 위해서다. 파견 노동자는 노동 기간이 2년이 지나면 사용사업주(아리셀)가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하고, 산업안전의 책임도 사용사업주에게 있다. 하지만 도급 계약을 맺으면 아리셀에서 2년 넘게 일하더라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가 없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도 없다.

임금과 주휴수당, 퇴직금, 4대보험 가입 등의 의무는 메이셀(파견사업주)이 지게 되는데, 메이셀은 애초에 이러한 의무를 이행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국이 파악한 내용을 보면, 메이셀은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직업소개업 사업장으로 등록도 하지 않았다. 특히 2021년 7월부터 2024년 4월까지는 ‘한신다이아’라는 이름으로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해오다 2024년 5월 돌연 이름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파견업체의 전형적인 위장폐업 행태다. 한신다이아가 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고 밀린 4대보험료와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회사를 닫았다 새로 여는 것이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윈회 관계자들이 2024년 6월26일 오전 경기 화성시 아리셀 화재 현장 앞에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철저한 진상규명! 대책위 요구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윈회 관계자들이 2024년 6월26일 오전 경기 화성시 아리셀 화재 현장 앞에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철저한 진상규명! 대책위 요구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파견법 예외조항 파고드는 업체들

이런 형태의 노동권 침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화성보다 앞서 산업단지가 발생했던 시흥과 안산에선 이미 10년 전부터 제조업 공장에서 횡행하는 불법파견이 사회문제로 대두돼 대규모 조사까지 이뤄졌다. 민주노총 안산지부와 안산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안산비정규직센터)가 2016년 3월 발간한 ‘반월시화공단 불법파견 근절을 위한 활동백서’를 보면, 2014년 하반기 기준으로 전국 파견 노동자 13만2148명 가운데 안산 지역의 파견 노동자가 2만6410명(19.99%)으로 기초자치 단위 중 압도적으로 많았다. 파견사업체도 303곳으로, 전국 2468곳 가운데 12.28%를 차지했다.

인력파견업체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서 예외조항인 제5조 2항 ‘파견 대상 업무가 아닌 업무에도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경우 근로자파견사업을 할 수 있다’를 파고들었다. 2014년 하반기 기준 안산 지역 파견 노동자 2만6410명 중 2만5764명(97.55%)이 파견허용업무가 아닌 제조업 등에 일시·간헐적으로 파견된 노동자였다. 이러한 노동환경에서 노동자들은 아무런 예고 없이 퇴근길에 해고를 통보받기 일쑤였고, 파견업체가 폐업해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고발이 잇따르자, 노동 당국은 감시를 강화했다. 그러면서 고용 통계에서 파견 노동자의 수가 감소했고, 논란도 잠잠해지는 등 불법파견 노동이 줄어드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불법파견 노동 문제가 개선된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화성)과 다른 형태(위장 도급), 다른 사람(이주민)에게 전가된 것이었음이 이번 화성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로 확인됐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에 힘입어 시흥과 안산 지역의 지대(땅값)가 높아지고, 리튬 배터리 등 신산업이 발달하면서 산업단지가 화성 등지로 확장됐는데, 불법파견 노동도 진화하면서 뻗어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온라인 누리집을 보면 경기뿐만 아니라 충남 등 전국에서 배터리 공장 노동자를 구하는 구인광고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안산비정규직센터 문상흠 노무사는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불법파견 단속을 피하기 위해 공장주들이 실질적으로는 파견 형태이면서 도급 형태로 위장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를 쓰는데, 이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산업안전에 관한 사업주의 책임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며 “안산 지역에서 단속이 심해지면서 파견업체 수가 최근 반 가까이 줄었는데, 다른 지역으로 주소를 옮기거나 메이셀처럼 하도급 업체로 위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 노무사는 “이번 화성 참사를 계기로 아리셀과 같은 불법 파견 형태의 사내 하도급 노동이 얼마나 있는지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파견인지 하도급인지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지우는 현행 법제도를 바꿔 사업주가 증명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많이 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온라인 누리집에 배터리 공장 구인글이 올라와 있다. 누리집 갈무리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많이 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온라인 누리집에 배터리 공장 구인글이 올라와 있다. 누리집 갈무리


숨진 노동자 23명 중 여성이 15명

이처럼 불안정하고, 불안전하며, 취약한 일자리에는 사회적 약자인 이주민과 여성이 있었다. 아리셀에서 숨진 노동자 23명 가운데 여성은 15명이었고, 중국동포는 17명(남성 5명, 여성 12명)이었다. 상당수가 중국동포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에서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경력 단절에 시름하기 쉬운 30~40대 이주여성이 많았던 점을 보면, 노동 현장의 열악함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는지 알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숨진 노동자들은 사무실 입구에 쌓아둔 전지에서 발생한 불과 연기를 등지고 도망치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막다른 벽에 내몰려 목숨을 잃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하청업체 노동자가 작업할 때 도급업체에 안전보건과 관련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화재 발생에 따른 대피방법 훈련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의무 등을 부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노동자가 이런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았을 것 같진 않다.

이들의 죽음은 자본의 탐욕에 내몰린 노동권의 현실을 은유하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다.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영정 사진도 놓지 못한 화성시청 분향소에 희생자 유가족 외에 일반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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