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14일 오후 2시30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 3308호실. 비강캐뉼러(산소 공급장치)를 끼고 누운 선생의 눈은 자주 초점을 잃었다. 눈의 공막에는 황달기가 보였고, 몸을 쥐어짜서 내는 목소리는 거칠고 메말라 있었으며, 신장이 기능부전을 일으키는지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부은 종아리를 손으로 주무르며 “불편하진 않으신가요?” 물으니 선생은 그제야 활짝 웃으며 “좋죠 좋죠”라고 답했다.
홍 선생에게 전화가 온 건 4월9일 오전이었다. 선생은 “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나중을 위해서 미리 인터뷰를 좀 해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국립암센터에서 ‘더는 할 일이 없다. 통증 완화 치료밖에 안 남았다’는 최후 통보를 받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선생은 2023년 2월 암 진단을 받은 뒤 경기 고양 국립암센터와 녹색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다.
선생은 이날 2시간 정도 이뤄진 인터뷰 기간 내내 말하기를 힘겨워했다. 기력이 부쳐 세 차례 정도 인터뷰를 멈추기도 했다. 선생은 “별 이야기도 아닌데 이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오게 해서 송구스럽다”며 천천히 생각을 꺼냈다.
—몸 상태는 어떠신가요.
“저도 가늠하기가 어렵네요, 얼마나 남았는지. 보름에서 한 달 사이인 것 같아요. 완전 틀렸을 수도 있고. 누구도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4·10 총선 사전투표를 하셨다고요.
“21번(비례투표 노동당)을 꼭 찍었습니다. 지역구 투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안 했고.”
—20년 만에 원내에 독자적 진보정당이 한 석도 없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 힘을 얻어야 하는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예견됐던 일이고, 크게 실망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어차피 양당 구도가 굳건한 상황에서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 선택에 대해서 아쉽진 않아요.”
—한국 정치를 보는 마음은 어떠신가요?
“진보정치와 한국 민주시민의 간극, <한겨레>가 좀더 적극적으로 그 간극을 드러내면서도 줄여나갈 수 있길 바랐어요. 그게 <한겨레>에 계속 남아 있었던, 그리고 나왔던 가장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한순간에 이뤄진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인터뷰 도중 선생이 편집위원을 지냈던 격월간 잡지 <아웃사이더> 제17호(2004년 1월14일 발행)를 꺼내 선생이 쓴 머리글 ‘진보 정당 콤플렉스’ 일부를 읽어드렸다. 선생은 당시 이렇게 썼다. “한국 정치를 분석, 비판하는 사람 중에는 젊은 세대의 탈정치화 경향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진보 정당은 외면한다. 시민사회단체의 진보적 인사와 진보적 지식인 중에 진보 정당과 거리를 두는 이유를 기존 진보 정당과의 노선 차이를 드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진보 정당에는 거리를 두다가도 ‘개혁’에는 선뜻 동참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진보 정당 콤플렉스 때문인가, 아니면 그들의 진보는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한 진보이기 때문인가.”
—이 글을 쓰셨던 기억이 나시나요?
“그러게요.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운 지점인데, 이상이나 지향이 정치적 지형과 잘 만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중요한 결정 상황이 오면 바로 손을 빼거나 실망하는 그런 면도 없지 않죠. 민주시민이라고 하면 세 가지 성격이 같이 묶여져 있어야 해요. 주체성과 비판성, 연대성. 주체성은 자기가 이 사회의 주체, 이 사회를 움직여가는 본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비판성은 비판력을 갖게 되는 것이고, 연대성도. 그게 공화국에서 품어야 하는 민주시민의 성격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기존의 반민주 세력과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이 지쳐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에 그런 경향이 강화하고 있고, 소위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거기에 휩쓸려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점점 더 굴종하는 모습이 대세가 되다보니.”
—귀국 뒤에 오염된 자유의 개념을 찾는 것과 관련한 글을 많이 쓰셨어요.
“사람들이 고객화했지요. 고객화했다는 건 구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주체성, 비판성, 연대성은 찾을 이유가 없고, 나만 잘났다는 거죠. 내가 말하는 자유는 고결함을 추구하는 것이에요.”
선생은 2020년 쓴 저서 <결: 거칢에 대하여>(한겨레출판)에서 “나를 짓는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은 고결함을 지향한다. (중략) 그는 ‘회의하는 자아’다. 회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짓는 자유는 무의미하다. 고쳐 짓거나 새로 지을 게 없는, 이미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이 책에는 “자유는 외로움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문장도 나온다. 선생은 이어서 미안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2002년 귀국할 때 스스로 다짐한 게 있어요.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내가 이주노동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한국에 와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다는 것. 그랬는데 그 약속을 충실히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외국인보호소를 방문하는 시민모임) ‘마중’이라는 단체에 몸담았지만 성실히 임했나 하면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죠.”
—선생은 어떤 주의자라고 할 수 있나요?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다 맞죠. 세속적인 사회적 영혼을 담은 아나키스트에 아주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죠.”
—다시 <한겨레> 칼럼을 쓰신다면 어떤 글을 쓰시고 싶은가요?
“사람의 삶은 관계의 형성인데, 관계의 형성이 아니라 관계를 흐트러뜨리고 관계를 파괴하는 그런 것들이 더 심해졌어요. 관계성의 형성에 대해….”
—<한겨레> 독자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실까요?
“<한겨레> 독자는 민주시민인가 고객인가, 그 질문을 독자들이 스스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한겨레> 구성원도 마찬가지고. 고객이 되면 내 취향이나 의견이 조금만 비틀어져도 ‘절독’을 말하잖아요. 그건 고객화한 모습이에요. 민주시민이면 설령 나와 생각이 달라도 사회를 위해 올바른 건가 아닌가를 생각해볼 수 있죠. 학교와 학부모의 관계도 마찬가지지요. 최근에 일어난 사태도 그걸 말해줘요. 학교에서 민주시민 교육이 없어서 나타난 결과라고 봅니다. 정말 할 일이 많아요.”
겨우 인터뷰를 마친 선생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선생에게 “꼭 다시 뵙고 카페 벤야민(경기 고양시 선생 자택 근처 카페)도 가셔야지요”라고 하니 “맞아요 맞아요”라고 화답했다. 병실 문이 닫힐 때까지 선생은 후배 기자들에게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안영춘 기자 jona@hani.co.kr·이문영 한겨레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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