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의 이름은 ‘부은(oide) 발(pus)’이라는 뜻을 가졌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맞힌 오이디푸스는 평생 보행 장애를 가진 남자였다. 장애학자 박정수는 오이디푸스가 평소 자신의 신체 장애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아침에는 다리가 넷, 점심에는 둘, 저녁에는 셋인 것이 무엇이냐’ 묻는 스핑크스의 질문에 ‘인간’이라 답할 수 있었다고 풀이한다.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그린비 펴냄)는 표면상 우아하지만 내용상 ‘막장’인 그리스 비극을 새롭게 읽는다. 장애인, 퀴어, 여성 등 비주류의 시선으로 ‘비극의 끝판왕’을 분석하는 작업이니,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 읽는 그리스 비극 해설서인 동시에 사회비평서인 셈. 배우자 몰래 아들을 낳아 기르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등 아침 드라마보다 더 충격적이고도 슬픈 인류의 원형질 이야기 속에서 혐오, 차별, 배제의 에피소드를 길어 올린다.
가장 중요한 건 굽이치며 연결된 이야기 속에 담긴 정치성을 찾아내면서 ‘지금, 여기’ 벌어지는 문제와 연결하는 것. 이를테면 박경석 전 노들야학 교장에게서 프로메테우스적 저항 의지와 운명애를 읽고, 진보적 장애운동 1세대 최옥란에게서 헤카베처럼 가부장체제에 분노를 폭발시킨 모성의 모습을 발견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장애인운동가를 신격화하자는 의도일 리가 없다. 저자는 인류사에서 가장 널리 읽히며 사랑받는 고전 비극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영웅의 무거운 운명과 투쟁을 장애인 개인의 삶과 연결하지 않는다. 장애는 개인의 고난이 아니라 타인과 만날 때 형성되는 사회적인 것이라는 얘기다. 어머니의 부서진 몸에서 태어나 ‘남자의 자궁’에 숨었다가 다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오늘날 트랜스젠더 여성의 모습과 비슷하다. 당시 디오니소스는 여성, 트랜스젠더, 장애인, 노인, 이방인, 노예 등 차별과 모욕에 시달리는 소수자의 신이었다. 디오니소스 신도들은 나와 남, 인간과 야생동물 아기의 경계까지 허물면서 전복적인 공동체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필록테테스 등 무거운 운명을 지닌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의 정치적이고도 급진적인 면모와 저항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지은이는 ‘수유+너머’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장판’에서 푸코 읽기>(2020년, 오월의봄 펴냄)를 썼다. 지금은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장애사 책을 번역하며 공부 중인데, 여기서 고대 그리스 장애 인식에 관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스 비극 입문서로도 택해볼 만한 책이다. 1만6800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설탕
윌버 보스마 지음, 조행복 옮김, 책과함께 펴냄, 3만5천원
설탕은 근대적 소비와 불평등의 산물이었다. 인류사 대부분 기간 인간은 정제 설탕 없이 살았다. 그러나 갑자기 상당수 문화권 음식에서 설탕이 중요해졌고 이제는 식생활에서 뺄 수 없는 조미료가 됐다. 설탕이 어떻게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고 정치적 문제를 만들며 질병과 생태학적 위기까지 낳게 됐는지 고찰한다.
프랑스를 만든 나날, 역사와 기억
권윤경 등 지음, 푸른역사 펴냄, 2만7900원
한국프랑스사학회 역사가들이 쓴 프랑스사. 이 책은 첫째 권으로 고대 갈리아 시대부터 18세기 절대왕정 시대까지의 주요 사건을 다룬다. 오랫동안 프랑스에선 30여 개 언어가 쓰이면서 절대다수 백성에게 프랑스어는 외국어나 다름없었고 잔 다르크에 대한 공식 기억은 한동안 자리잡지 못했다는 등 역사와 기억을 둘러싼 투쟁을 보여준다.
초월과 자기-초월
메롤드 웨스트폴 지음, 김동규 옮김, 갈무리 펴냄, 3만원
무언가를 넘어선다는 말, 세계 저편의 어떤 것을 가리키는 ‘초월’을 저자는 ‘우주론적 초월’이라 부른다. 인간과 세계 너머 있는 초월적인 것은 신이다. 저자는 인간이 신의 초월을 경험할 때 일종의 자기-초월, 주체의 탈중심화가 일어난다고 본다.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레비나스와 키르케고르까지 검토하며 타자-인간-신의 관계를 탐구한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
이나래 등 지음, 빨간소금 펴냄, 1만9천원
왜 여성의 산업재해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 일터의 여성 노동자는 왜 보이지 않는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19명의 여성 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표준 노동자는 곧 건장한 비장애 남성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장애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노동자, 산재 피해자 가족의 목소리를 통해 일터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소외되는지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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