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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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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견 버니는 죽을 고비 넘겼지만, ‘버니들’은 괜찮을까

‘안락사 없는 보호소’ 신종 펫숍에서 구조된 47.68㎏ 대형견 버니
목격자·보호자·입양자의 선의로 만든 새로운 삶
등록 2023-07-07 23:03 수정 2023-11-02 14:56
지난 6월25일 제주도 예리씨의 자택에서 만난 버니. 서혜미 기자

지난 6월25일 제주도 예리씨의 자택에서 만난 버니. 서혜미 기자

진한 갈색 눈이 살짝 처진 개 ‘버니’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30㎝는 될 법한 꼬리를 설렁설렁 흔들었다. 사람에게 다가가 마치 껴안으려는 듯, 뒷다리로 일어서서 앞발을 사람 몸에 걸쳤다. 일어선 버니의 크기는 얼추 사람 키와 비슷했다. 체구가 작은 여성의 주먹만 한 앞발의 무게는 묵직했다. 2023년 6월 중순 동물병원에서 쟀던 몸무게는 47.68㎏이었다. 버니의 종은 초대형견으로 분류되는 그레이트피레네다.

“무슨 일을 겪어 영리하게 눈치를 보는지…”

“버니는 모든 사람에게 다 안아달라고 해요. 저한테 좀더 그러는 편이지만 어제도 집에 손님 8명이 왔는데 그분들한테 다 그랬어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너무 점잖다’ ‘너무 예쁘다’면서 머리와 엉덩이를 5시간 정도 만져주니까 정말 행복해하더라고요.”

6월25일 제주도 자택에서 만난 예리(42)씨가 말했다. 한 달여 전 버니를 입양한 예리씨는 버니가 가만히 있을 때면 몸통과 배의 피부발진 부위나 귀 안쪽을 소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피부발진은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버니를 치료하기 위해 쓴 약물의 부작용이라 추정한다. 약물이 아닌 다른 게 원인인 피부발진도 있다.

예리씨 가족은 버니를 차츰 알아가지만, 어떤 사실은 알 수 없는 채로 남겨둘 가능성이 크다. 버니의 생일도 나이도 모른다.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먹은 적이 있는지, 어쩌다 콧잔등에 긴 흉터가 남았는지도 알기 어렵다.

“버니는 눈치가 되게 빠른 편이에요. 히스토리가 없는 개였다면 그냥 ‘눈치가 빠르군’ 하고 넘어갔을 거예요. 하지만 이전에 어떤 고생을 했는지 모르니까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영리하게 눈치를 보는지 궁금하죠. 좀 짠할 때도 있어요.”

제주도에 오기 전 버니는 파양당하고 불법 위탁관리 업체에 맡겨졌다.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긴 구구절절한 과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고양이는 갇히고, 사체는 파묻히고
버니가 파양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신종 펫숍의 구조 당시 모습. 동물구조단체 리버스 유튜브 갈무리

버니가 파양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신종 펫숍의 구조 당시 모습. 동물구조단체 리버스 유튜브 갈무리

버니를 ‘장군이’라 부르던 주인은 2023년 1월 경기도 광주 곤지암읍에 있는 한 불법 동물위탁관리 업체에 버니를 맡겼다. 계약 서류에 장군이의 나이는 4살로 적혀 있었다. 이 업체는 동물 생산·판매·위탁관리 등 어떤 업종으로도 등록되지 않은 불법업체였다. 업체의 이름은 없고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명이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였다.

이 업체 운영자들은 사기 혐의로 수사받고, 동물 개체수가 늘어나는 등 돌볼 여력이 되지 않자 동물을 방치하고 잠적했다. ‘펫숍 주인이 버리고 간 동물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2023년 2월3일 현장에 간 동물구조단체 ‘리버스’는 사체를 포함해 방치된 동물 50마리를 발견했다. 단체는 구조 상황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유튜브를 보면 영업장 안팎은 동물의 배설물로 가득했다. 목줄에 묶인 벨지언말리누아 한 마리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방문을 열자 고양이가 최소 15마리 이상 갇혀 있었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일정 공간이 필요하다. 일부 사체는 뜯어먹힌 흔적이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개를 죽여서 묻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제보에 따라 근처 공터를 파보니 동물 사체가 10여 마리 더 나왔다.

불법업체는 ‘안락사 없는 동물보호소’라고 자사를 홍보했다. 입소 비용을 내면 보호자의 사정으로 파양할 수밖에 없는 반려동물, 구조자가 길에서 구조한 유기동물을 잘 보살피다 좋은 곳으로 입양을 보내겠다고 했다. 네이버 카페는 이미 없어져서 업체가 게시한 내용을 확인하긴 어렵다. 업체는 포털의 유기동물 카페에서 입양처를 찾는 구조자에게 먼저 연락해 ‘입소비만 내면 임시보호를 해주고, 좋은 가족까지 찾아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운영자 3명은 이런 식으로 반려동물 한 마리당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받았다. 일부 보호자에겐 아픈 반려동물 치료비가 필요하다며 수천만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도주 4개월이 지난 6월5일 경찰에 검거됐는데, 1명은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을 수사 중인 경찰 관계자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의 경우, 일부 사실을 인정했으나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버니에게 반려견 ‘설아’의 얼굴이 보였다

경기도 이천 마장면의 한 스키장비 대여점은 방치된 동물이 발견된 장소에서 직선거리로 약 14㎞ 떨어진 곳이다. 신종 펫숍 운영자는 이곳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그는 사장이 출근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개와 고양이 10마리를 대여점에 뒀다. 운영자들이 도주하면서 밥과 물을 제때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2023년 2월5일 오전, 스키장비를 빌리기 위해 여자친구와 이 대여점을 찾았던 김진수(34·가명)씨는 대여점 문밖에 묶인 버니를 봤다. 버니는 뒷다리로 일어서서 처음 보는 진수씨의 여자친구를 반겼다. 개의 이름을 묻자 가게 안에 있던 여성은 “모른다”고 간단하게 말한 뒤 덧붙였다. “여기서 일하던 직원이 동물들을 모두 버리고 갔어요. 다들 아마 사흘은 굶었을 거예요.”

개인 동물보호 활동가 ‘설구아빠’가 스키장비 대여점에서 구조할 당시의 버니. 유튜브 채널 <견생역전> 갈무리

개인 동물보호 활동가 ‘설구아빠’가 스키장비 대여점에서 구조할 당시의 버니. 유튜브 채널 <견생역전> 갈무리

그 말을 듣고 진수씨는 밥그릇을 살펴봤다. 사료와 물이 한 그릇 안에 담겨 얼어 있었다. 꽁꽁 얼어서 깨려고 해도 깨지지 않았다. 가게 안에 있던 여성은 자신도 일당에게 사기당한 피해자라고 했다. 진수씨와 여자친구는 스키 타기를 포기하고 인근 시내를 몇 차례 오가며 동물들이 먹을 간식 등을 사왔다. 진수씨는 “그 큰 애가 여자친구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많이 짠했다”고 했다. 가게 안에는 버니 외에 다른 개와 고양이들이 있었다.

진수씨는 이날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버니 영상을 올렸다. 댓글에 달린 대로 진수씨는 몇몇 동물보호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동물보호 활동 유튜브에 가서, 버니를 구해달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개인 동물보호 활동가인 ‘설구아빠’(34·활동명)의 유튜브 채널 <견생역전>에도 진수씨가 올린 영상 링크가 달렸다. 2월7일 밤, 현장을 찾아 두 눈으로 개를 직접 본 설구아빠는 당황스러웠다. 그레이트피레네로 보이는 개는 야생 늑대나 북극곰 같았다. 주로 대형견들을 키웠고 대형견 중심으로 임시보호를 해왔지만 이렇게까지 큰 초대형견은 처음이었다. 온몸에 시커멓게 먼지가 붙은 털이 북슬북슬한 대형견은 족히 50㎏은 돼 보였다. 버니에게선 반려견 ‘설아’의 얼굴이 보였다.

설아의 아빠는 그레이트피레네, 엄마는 스탠더드푸들이었다. 그는 반려견 ‘ 설구 ’ 와 설아를 키우면서 개를 대규모로 교배·번식시키는 ‘강아지 공장 ’ 등 동물 생산 · 판매업에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 2020년 말 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

설구아빠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보통의 “대형견들은 갈 데가 없어서”다. 지방자치단체의 보호소가 구조하면 보호기간이 지나 곧바로 안락사될 것이었다. 민간 보호소에 가도 소형견을 선호하는 국내에선 입양처를 찾기 어려워 보였다.

“너를 어떻게 해야 하냐, 내가….”

개는 덩치는 크지만 온순해 보이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잘 따랐다. 설구아빠는 차에 버니를 태워 곧바로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심장사상충 진단도구로 검사해보니 양성 표시가 진하게 나타났다. 버니를 진료한 수의사는 치아 상태로 보아 2살이 채 안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확보한 버니의 파양 서류에는 4살이라 쓰여 있었다. 나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치료비 수천만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예리씨도 2월5일 진수씨가 올린 영상을 봤다. 강아지 영상을 자주 보는 예리씨에게 유튜브 알고리듬은 북극곰 같은 개가 사람에게 안기는 영상을 추천했다. 순간적으로 “쟤 어떡하지?”라는 측은지심이 들었다. 같이 사는 남편과 남동생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걱정했다. 버니가 유기견 보호소에 가면 안락사 1순위임을 모르지 않았다. 다행히 이틀 뒤 설구아빠가 구조하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설구아빠는 버니의 국외 입양처를 찾는다고 했다.

예리씨는 현재 남편과 남동생, 반려견 ‘감자’ ‘마리’와 함께 제주에 살고 있다. 감자는 코커스패니얼로 10년 전 파양된 강아지를 동생이 데려왔다. 무게가 37~38kg인 올드잉글리시시프도그인 마리는 약 1년6개월 전, 태어난 지 두 달쯤 됐을 때 가정분양을 받아 데려왔다. 이미 두 반려견이 있었기에 예리씨는 미국에 사는 시부모에게 버니를 입양시키는 것을 고민했다.

소파 위에 있는 버니. 몸통에 피부 발진이 있다. 예리씨 제공.

소파 위에 있는 버니. 몸통에 피부 발진이 있다. 예리씨 제공.

입양처를 기다리는 사이, 구조한 지 일주일쯤 지난 2월13일 버니는 먹은 것을 전부 토했다. 혈뇨를 봤다. 심장사상충 감염 증상이었다. 심장사상충은 개나 고양이의 심장과 폐혈관에 기생하는 벌레다. 이 기생충의 유충을 가진 모기에 물리면 유충이 체내로 들어가고, 성충이 되면 혈관을 이동하다 폐동맥을 막는다. 중감염의 경우 치사율이 30~40% 수준으로 알려졌다. 의사는 버니가 언제 급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버니는 병원 입원을 반복했다. 퇴원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3월16일, 버니가 있는 방 안은 온통 피 칠갑이 돼 있었다. 버니의 몸통 앞쪽도 피투성이였다. 심장사상충 사체들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 폐동맥을 막아 혈압이 높아져 코피를 흘린 것이다. 급히 대학병원에 데려가 버니를 입원시켰다. 의사는 버니의 운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안 1m 목줄에 묶인 강아지보다 더 못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버니의 치료비로 약 2천만원을 지출했다.

설구아빠는 어쩌면 버니를 자신이 평생 키워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버니를 입양하겠다는 문의는 몇 건 있었다. 국외 입양도 연락이 왔지만 다시 취소 연락이 왔다. 맹견 농장을 한다는 이도 연락이 왔다. 이상한 입양 문의도 있었다. “내가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은 뒤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자유를 줬다”며 버니를 입양하고 싶다고 했다. 버니를 투견판에 보내거나 다시 버려질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보낼 순 없었다.

예리씨는 유튜브를 보면서 버니를 다른 나라로 입양 보내는 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버니가 장시간 비행을 버틸지도 불확실했다. 하지만 아픈 버니의 입양을 선뜻 결정할 순 없었다. 제주는 수도권과 비교하면 동물병원 접근성이 떨어졌다. 치료비로 수천만원이 들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었다.

강아지 담당 수의사도 잘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심장사상충 감염이 완치되더라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고, 평생 그 치료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활동을 제한해야 하고, 병원에 갈 일도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고민, 그리고 고민. 예리씨는 4월21일 설구아빠에게 입양신청서를 보냈다. 5월28일 버니를 제주도로 데려왔다.

사랑하는 마리를 만나고, 가족과 침대서 잔다
왼쪽부터 버니, 마리, 감자. 서혜미 기자

왼쪽부터 버니, 마리, 감자. 서혜미 기자

“쟤네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예요.”

버니와 마리가 아래위로 뒤엉킨 채 바닥에서 구르는 것을 보고 예리씨가 농담했다. 두 대형견은 뒷발로 일어서서 서로를 끌어안거나, 입을 벌려 상대방을 살짝 무는 시늉을 하는 등 쉼없이 놀고 있었다. 예리씨는 “마리가 앞발로 끌어안으니 처음엔 버니가 ‘뭐지?’ 이런 느낌인 것 같았다”며 “이제는 버니가 먼저 가서 장난도 치고 잘 놀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처음엔 예리씨를 졸졸 쫓아다니기만 하던 버니는 마리와 둘이 있기도 하고, 온 가족이 함께 자는 안방에 먼저 가 있기도 한다.

첫 2~3주는 버니의 상태가 나빠지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단순히 더워서 헥헥거리는 건지, 심장에 무리가 생겨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피부에 새로 발진이 생길 때마다 발을 동동 굴렀다. 남동생이 “빨리 연고를 발라주면 된다”고 말하며 예리씨를 진정시켰다.

호흡곤란 등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먹여야 하는 약은 주방 냉장고 옆에 붙여뒀다. 손 닿을 만한 거리에 두고 버니에게 바로 먹이기 위해서다. 예리씨는 “아직 이 약을 먹인 적은 없는데, 앞으로도 사용할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 근처 동물병원도 내비게이션 앱에 ‘즐겨찾기’ 해뒀다.

예리씨는 “이렇게 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들은 공원을 멋있게 함께 거니는 우아한 산책을 상상한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려면 우아하지 않은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네스(어깨와 가슴에 착용하는 줄)를 입히기 위해 씨름해야 하고, 배설물을 치우고, 주변 사람들의 눈총도 받는다”며 “자기 결정에 책임지려면 입양하기 전에 가장 최악의 상황을 떠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세 반려견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예리씨는 버니가 좀더 회복하면 바닷가에 다 함께 놀러 가고 싶다.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일들, 계곡에 가고 바다에 가고 오름에 한번 같이 가는 일이요. 더위를 워낙 많이 타는 종이니까 지금은 못하지만, 겨울에 눈이 오면 밖에서 같이 놀고 싶어요.”

예리씨는 버니를 입양하면서 안방 침대를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2m인 대형 침대로 바꿨다. 침대의 가장 끝자리에 버니가, 그 옆에 예리씨, 남편, 마리가 나란히 누워서 잔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감자는 그날그날 두 사람 중 한 명의 다리 사이에서 잔다.

제주=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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